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김나영 시모음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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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시모음 1

휘수 Hwisu 2006. 11. 13. 10:32

경북 영천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1998년 <예술세계>로 등단

시집 <왼손의 쓸모 >2006년 천년의시작

 

오후 3시에서 4시 사이에 멈춰있는 어떤 겨울 풍경


 저 바퀴는 굴러가는 시간보다 멈춰있는 시간이 더 길다. 해와 함께 출근해서 해와 함께 퇴근하는 남자의 하루가 바퀴 위에 멈춰 있다. 뻥튀기 아저씨,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고, 아무나 불러주는 그의 오래된 이름이다. 저 트럭은 이 동네 길목을 지키는 고소하고 정겨운 겨울 풍경이다. 아니다, 그의 가업(家業)이다. 한 봉지의 군것질이 겨울 내내 남자의 생계를 붙들고 있다. 오후 3시 30분, 남자의 나이도 이 시간쯤에 멈춰 있는 듯 하다. 마침표처럼 앉아있는 남자의 머리칼이 검고 푸르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모자챙을 내리 누른다. 부풀어 오른 옥수수, 쌀, 보리, 콩 등을 담은 봉지가 장식처럼 매달려 있다. 저 뻥튀기들을 몽땅 다 팔면 남자의 주머니보다 마음이 더 빨리 부풀어 오를 것 만 같다. 남자가 뻥튀기 기계를 돌린다. 하루에도 수 백 번도 넘게 기계를 돌리는 남자가 가끔은 쌀알 대신 그의 한나절을 집어넣고, 사카린 대신 지루한 시간을 슬쩍 집어넣고 돌린다. 환하게 쏟아져 나오는 튀밥들 중 서너 개가 도로로 뛰어 든다. 그 튀밥보다 더 멀리 더 빨리 튀고 싶었을 남자. 자기 생도 고소한 냄새를 팡 터트리고 싶었을, 세상의 단맛이 되어 어디로든 스며들고 싶었을 남자의 하루가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다. 뻥 뻥 소리가 날 때마다 고개를 돌리는 건 어린 눈망울들 뿐,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의 생(生)이 푹 눌러 쓴 모자 밑으로 삐죽 드러나 있다. 아직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칼이다.

 

홍합


   새포르족족 꼭다불시고 있는 저 입은 싸게 싸게 벌어지는 입이 아니제, 지 엄니와 엄니의 엄니가 그란 것 같치름 이 말, 저 말, 다리 아랫 말 멕힌 숨통 뚫어주는 비싼 입이제, 저 입에서 따순 밥이 나오고 등록금이 나오고, 꼬순 지름이 잘잘 흘러 나오잖여, 그려도 화력 좋은 놈이 밑구녕에 불 확 싸질러뿔면, 단번에 벌어자빠져부리는, 겁나게 화끈한 년이지라, 참말로 징한 년이지라, 남덜 속은 맨날 풀어싸면서 저 속은 은제 푸나 했는디, 당최 고쟁인 얻다 내뻔질러 부리고, 속곳 밖으로 삐죽허니 나온 저- 으메, 내사 미처 불겠구만 잉, 옴마 시방 봉께로 저 년 몸뚱어리가 다 거시기랑께로, 쩍쩍 벌어지는, 으메 근디 내 거시기가 우째 요로코롬 꼴리는 것인겨, 대낮에도 오줌발 쭉쭉 내꼴리게하는 저 심 땀시, 집집마다 자식농사 배추밭농사 꼬숩게 꾸려오는 것 아니것어 하믄, 움마 저걸 어쩔쓰까나, 설설 끓는 저 속을 은제 다 푼다냐, 저, 저 국물이, 오메, 국물이- 아따 아지매 여적 뭐한다요, 다 식어뿔겠네 참말로, 싸게 싸게 한 보시기 더 퍼 주드라고 잉,

 

계간<리토피아>(2005년 여름호) 

 

검독수리 

 
독수리가 미동도 않고 앉아 있다.

저 새는 철장 안으로 거처를 옮겨왔을 때부터

자신이 조류(鳥類)임을 조금씩 포기하게 되었을까.

잔뜩 파묻어 놓은 양쪽 날개에

하늘을 팽팽하게 제압하던 전투태세라고는 없다.

날개가 있다는 걸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희끗희끗한 깃털은 색 바랜 단벌 신사복 같다.

누우런 부리가 아까부터 물고 있는 것은 철장 안으로 흐르는 게으른 공기이다.

뭉뚱해진 발톱이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딱딱한 바위 덩어리이다, 아니다

사육사가 던져주는 한 덩어리의 닭고기다.

나는 아이의 눈을 쳐다보며 저 새가 하늘의 제왕이라고 

저 새가 한 번 날면 아기도 단번에 낚아 채 간다고 연신

설명해 주어도

아이의 눈은 그걸 믿지 못하는 눈치이다.

저 새는 자기 이름이 독수리라고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철장 안으로 살며시 부는 바람조차 강한 저항으로 느끼는지

바람이 불 때마다 두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전설 속의 저 새.


열린 감옥

 

지구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經典은 나를 비껴 지나갔다.

 


파래서 너무 파래서 확 갈기고 싶은 하늘 아래

 


나는 치명적으로 젊고 건강하다.

 

시와사상 (2001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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