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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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1. 11. 12:57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인문대 불어불문학 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7년 겨울 <정든 유곽에서>외 1편으로 <문학과 지성> 등단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1980년 문학과지성사)

        남해금산 (1986년 문학과지성사)

        그 여름의 끝 (1990년)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1993년)

        아 입이 없는 것들 (2003년 문학과지성사)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자국 (2003년 열림원)

 

파리

 

 초가을 한낮에 소파 위에서 파리 두 마리 교미한다 처음엔 쌕쌕거리며
서로 눈치를 보다가 급기야 올라타서는 할딱거리며 몸 구르는 파리들의
대낮 정사, 이따금 하느작거리는 날개는 얕은 신음소리를 대신하고 털
보숭이 다리의 꼼지락거림은 쾌락의 가는 경련 같은 것일 테지만 아무리
뜯어보아도 표정 없는 정사, 언제라도 손뼉쳐 쫓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 작은 뿌리에서 좁은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긴 생명의 운하 앞에
아득히 눈이 부시고 만다

 

아, 그걸 점심 값이라고

 

                  어떤 영혼들은

                  푸른 별들을 갖고 있다

    -페테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어떤 영혼들은...」

 

 어떤 순결한 영혼은 먹지처럼 묻어난다. 가령 오늘 점심에는 사천 원 짜리 추어탕을 먹고 천 원짜리 거슬러 오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까박까박 조는 남루의 할머니에게 '이것 가지고 점심 사 드세요' 억지로 받게 했더니, 횡단보도 다 건너가는데 '미안시루와서 이거 안받을랩니다' 기어코 돌려 주셨다. 아, 그걸 점심값이라고 내놓은 내가 그제서야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할머니는 섭섭다거나 언짢은 기색은 아니었다. 어릴 때 먹지를 가지고 놀 때처럼, 내 손이 참 더러워 보였다.


어머니 1

   
  가건물 신축 공사장 한편에 쌓인 각목더미에서 자기 상체보다 긴 장도리로 각목에 붙은 못을 빼는 여인은 남성, 여성 구분으로서의 여인이다 시커멓게 탄 광대뼈와 퍼질러 앉은 엉덩이는 언제 처녀였을까 싶으쟎다 아직 바랜 핏자국이 수국(水菊)꽃 더미로 피어 오르는 오월, 나는 스무 해 전 고향 뒤산의 키 큰 소나무 너머, 구름 너머로 차올라가는 그녀를 다시 본다 내가 그네를 높이 차올려 그녀를 따라잡으려 하면 그녀는 벌써 풀밭 위에 내려앉고 아직도 점심 시간이 멀어 힘겹게 힘겹게 장도리로 못을 빼는 여인,

 

   어머니,
  촛불과 안개꽃 사이로 올라오는 온갖 하소연을 한쪽 귀로 흘리시면서, 오늘도 화장지 행상에 지   친 아들의 손발의, 가슴에 깊이 박힌 못을 뽑으시는 어머니……

 

 

이렇게 발 뻗으면 닿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늘 거기 계시니까요
한번 발 뻗어보고 다시는 안 그러리라 마음먹습니다
당신이 놀라실 테니까요
그러나 내가 발 뻗어보지 않으면 당신은 또 얼마나 서운해하실까요
하루에도 볓 번씩 발 뻗어보려다 그만두곤 합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나방이 한 마리 벽에 붙어 힘을 못쓰네 방바닥으로 머리를 향하고 수직으로 붙어 숨떨어지기를 기다리네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갔다 온 사이 벽에 나방이가 없네 그 몸뚱이 데불고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텐데 벽에도 방바닥에도 나방이는 없네 아직 죽음은 수직으로 오지 않았네 잘 살펴보면 벽과 책꽂이 사이 어두운 구석에서 제 몸집만큼 작고 노란 가루가 묻은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은 슬프지 않아라, 슬프지 않아라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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