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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시인의 말] 나는 글쟁이다. 나의 태생은 열악하였고 오래도록 밝지 않았다.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에는 어긋나고 싶어서, 스스로 보기에 흡족하도록 어긋나고 싶어서 글을 썼다. 그 후로는 어긋나지 않으려 글을 썼다. 막다른 골목길을 돌아 나온 발걸음, 그 어디에도 발자국이 남지 않기를 바랐다. 다 보지 않았지만 다 본 듯, 다 겪지 않았지만 다 겪은 듯, 다 울지 않았지만 다 운 듯 이토록 시시하고 외로운, 애틋한 생. 나는 엄마가 그리운 엄마다. 아비가 그리워 마음이 흔들리는 엄마다. 글이 아니었다면 시가 아니었다면, 나는 안으로 어긋나서 펑, 벌써 터졌을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시집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나는 좋다. 2018년 가을, 휘수 [A poet's remark] I'm a writer. My ..

『휘수시집, 중에서 2018년 9월 19일 출간 시, '부침개가 익어가는 오후' 와 문지성 깔깔마녀님의 시 감상글』 [부침개가 익어가는 오후 / 휘수] 엎드렸다 돌아누우면 애틋한 그림자가 얼굴에 스며든다 소금물에 절여지는 배추가 몸을 돌린다 비빔밥이 고추장을 뒤섞으며 본색을 드러낸다 이들이 색이 진해지고 있는 것은 뒤척임 때문이다 마음이 자주 뒤적일 때 가을처럼 깊어지기도 한다 잠자리에 누운 꿈도 뒤척댄다 그래야 어둠이 고르게 뭉치고 아침이 가벼워지듯이 뒤척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김치가 맛있어지고 비빔밥이 감칠맛 나고 그늘 속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난 것은 뒤집고 뒤섞이고 뒤척인 덕분이다 삶의 위태로운 외다리를 건널 때 오그라들고 굳어지는 모든 것은 뒤척이지 못했던 것들이다 노릇하게 익어가는 부침개..

『휘수시집 중에서 시, '우아優雅에게' 와 독자 감상글 』 . [우아優雅에게 / 휘수] . 세상이 밥그릇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힘없는 밑줄 그을 때도 너를 닮고 싶었다 일용할 식기의 달그락거리는 얕은 깊이 부끄럽지 않은 척 가리면서도 너를 흠모했다 향기로운 문장이 다른 펜촉으로 스며들 때도 끝내 너를 지워버리지 못했다 아무리 더뎌도 너를 포기하지 않으면 맑은 진실이 내 안의 우주에서 흥얼거리듯 그릇 스스로 비워지고 깊어져 나눌 만한 노래 담을 줄 알았다 어떤 아침을 즐겁게 일구고 많은 밤을 뿌듯하게 씻어낼 줄 알았다 덤으로 괜찮은 녀석 하나 내 쪽으로 풍덩 빠질 것으로 알았다 . 기억하니 이 모든 것을, 우아 . [시, '우아優雅에게' 감상글 / 정경] . 시, ‘우아優雅에게’ '우아'라는 단어가 ..
『휘수 시모음 2 휘수시집 중에서 2018년 9월 19일 출간』 사내와 구두 - 고흐의 구두 허공에서 몸을 떨며 빗금으로 치우치는 균형이 맞지 않아 위태롭게 무슨, 생각 많아 저기 허물어진다 사계절이 모두 가을인, 사내와 사내의 구두 수평을 원했으나 뒤통수까지 책임지기엔 버거웠나, 한쪽으로 모여있는 밥그릇 다섯의 무게 더러 시커먼 흙이 안주를 권하는 막소주 집 쥔장처럼 찰지게 붙어있고 마음과 달리 거절해야 하는데 사람을 거절하는 것 같아 애틋하여 콩콩, 구두를 구르기도 하는 사내 뒤에도 한때 푸른 배경이 있어 출렁거렸을 파도 계절마다 푸르렀을 나무 맑은술 위에 어른거릴 만도 한데 계산이 끝나면 야무지게 변하는 쥔장은 밥그릇 다섯의 가장임을 일깨우듯 등을 두드리고 묵직해진 몸과 무겁게 닳은 구두가 한 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