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2006 제 8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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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제 8회 동서커피문학상 시부문 당선작들

휘수 Hwisu 2006. 11. 14. 18:40

 금상

 

주전리 바다 / 정명옥

 

어이, 오늘 바다가 참 가벼워
남편은 낚싯줄 휘리리리 던져 손잡이를 걸어놓고
내게 바다를 통째 들고 있으라는 거야
네 알았어요 바다가 참 가볍네요
쉿 조용히 해 야광찌는 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초인종이야
햇살 쓴 물방울들만 입질을 하고
이윽고 들고있던 바다가 기울이자
옥수수만한 고기들을 쏟아낸다
오래 전 팔아먹은 결혼반지도 함께 딸려 나오고
어이, 바다를 놓아버려 고함친다
파도는 뜨개질하듯 손놀림하고
얼른 바다의 뚜껑을 닫는다
별을 품은 칠성어들의 가장 배고픈 시간은 말이야
새벽 안개가 몰려올 때지
그때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나는 바다를 들었다 두둘겨보다가 이글거리며
누워서 보는 바다는 스테인리스 주전자 같고
불룩한 속 두우둥둥
주전자 안으로 흥건히 고여드는 핏물
서쪽 어디에선가 비명내지르며 거둬간다
어이, 이봐 낚싯줄이 암초에 걸렸나봐 어서 좀 풀어줘
대뜸 주전자 안을 뛰어들자
낚싯바늘에 내 아가미가 걸려든다

 

은상

 

어머니의 바다 / 김후자

 

어머니의 옷에서는 늘 어물전 냄새가 났다
다리 서너 개를 숨기고 다니는 몸빼바지는 고무장화 속에 갇혀
시퍼런 바다 안을 헤집고 다녔다
거뭇거뭇 해질녘이면 살아서 펄떡이는 비린내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어머니를 피해 다녔다
모로 누워있는 어머니는 생선을 닮았다
속은 다 내주고 텅 비어버린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의 곱고 보드라운 살만 골라내 맛있게도 먹었다
젓갈골목 어시장엔 퉁퉁 부은 빨간손의 어머니가 있다
울긋불긋 앞치마주머니 가득
불록한 희망을 구겨넣으며
일년이 가도 풀리지 않는 머리에 펑퍼짐한 몸
지나가는 사람 발길 잡아채는 입심 좋은 울진댁이 있다
둥근 나무도마 위에 듬성듬성 바다를 토막치며
한평생 간기에 젖어있는 섬
아직도 푸릇푸릇 살아나는 연탄 옆에 끼고
종이컵 가득 출렁이는 갈색바다
훌훌거리며 몸을 녹이는
제 몸이 바다가 되어버린 어머니가 있다

 

은상

 

배꽃 종착역 / 안성은

 

배꽃에서는

가지마다 쪽쪽 키스 소리가 난다

퍼런 찬바람은 아직

환승도 못한채,

지하철 2호선에서 빙빙 맴도는데

달의 입김을 닮은 배꽃

토라진 입술을 삐죽 내밀 뿐이다

배꽃은

갑자기 퉁, 하고 제 얼굴을 드러낸다

나무 아래서 놀던 꼬마들

깜짝 놀라 배를 뒤집고 넘어지고

노란 열매도 어느새 둥굴어져

퉁, 하고 몸을 놓아버리고

퉁, 하고 땅으로 구르는 소리

소리, 소리들

 

소리가 모여

퉁퉁퉁, 하고 겨울이 쏟아지고

또 퉁, 하고

배꽃 닮은 아이들 피어나겠지

 

엄마가 사고 싶다던

쿠쿠 밥솥에도 배 꽃잎이 한가득이다

 

동상

 

어머니의 주전자 / 권덕필

 

물이 끓기 시작하면 빼앵 소리나는

두 되 들이 주전자가 있다

제대로 소리나게 하려면 뚜껑을 꼭 닫아야 한다

어제 그 주전잘 또 태워먹었다

되가웃 물이 졸아붙도록

아무 기척 없는 주전자

뚜껑을 절대 닫지 않는 어머니

 

그토록 졸아들도록

어머니에게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머니 속을 설설 끓이던

뜨거운 생이 휘돌아 나갈 때 까지

어머니는 단지

작은 뚜껑 하나 열어 놓음으로 견뎠으리라

부글부글 끓어 넘쳐

연탄불 다 꺼져도 좋았으련만

이글거리는 콧김 피식거려도 좋았으련만

끓어넘치기 직전 멈춰야 했던 어머니,

멈춘 자리가 웅덩이처럼 움푹 패여 있다

 

주전자 뚜껑이 열려있고

방문이 열려있고

삐그덕 대문이 열려있다

그리로 어머니 조금씩 증발하고 있다

열린 부엌문 사이로 쇠 단내가 난다

벌겋게,

소리없이.

쇠의 생이 졸아붙고 있다

 

동상

 

가을이 오는 숲 / 김순희

 

바람 한 광주리 머리에 이고

엉덩이 살랑대며 오는 너는

너무 헤프다

 

너에게로 가면

길이 있다고 손짓하지만 정작

너 또한 그 길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을까

한 번쯤 먼 길을 돌다가

무연히 발걸음 놓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네가 풀어놓은 바람에 물결이 일고

버스럭대는 나뭇잎

신열에 들뜬 듯 운다

나도 그 옆에서 한참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제야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문을 열고

푸른 입술과 붉은 손등에 입을 맞춘다

 

동상

 

물결을 밀치는 바다소리 / 송정예

 

오후의 시간 등짐 지고 음량 볼륨 최대

봉고차 확성기 재생음 굵게 소금 쳐진 목소리 밀어낸다

확성기 타고 뿌려지는 그녀의 사투리

귓속에서 자꾸만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박음질하듯 문장 사이를 듬성듬성 따라가 본다

분명 노련한 녹음으로

비린내가 풍기는 동해안 어디쯤일까?

항아리에 건더기 없이 곰삭은 멸치

깊숙이 휘저어 시작한 녹음테이프

아마도 시간이 그녀를 많이 끌고 다니느라

멸치의 은빛 비늘이 겹겹이 밀리고

입맛을 다시면 착 달라붙지 않게

담쟁이 넝쿨이 흡착판을 못 붙인 듯

경상도 토박이 말투로 늘어진 군살이 많다

그녀가 마구 흔들며 헤엄치는 음표

대문마저 등 지고 꼭 닫혀 있는 문을 열수가 없다고

경계의 영역만 기웃거리며 허공에 외친다

발에 채이듯 부산하지도 않게

일말의 변명조차 필요없는 삽살개만 으르렁 거리고

축축하게 공친 반나절을 하소연할 문밖에 서있다

멸어치, 담의소, 멸어치

저 오래된 듯 팽팽한 바다

오선의 마지막에 붙는 도돌이표가 몰려나와

이 골목 저 골목 잠시 부유물이 되어

얼룩진 파도로 뒤척거린다

배차시간 같은 간격이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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