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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용인 수지 느티나무 도서관 / 휘수] .폭염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가끔 소나기가 쏟아지지만 더위를 가시게 할 정도는 아니다. 오늘도 더위를 피해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려고 했다. 그러다 도서관으로 마음을 바꿨다. 왜냐하면 분위기 좋은 도서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곳, '느티나무 도서관'은 외관부터 아름답다. 덩쿨 식물들이 외벽을 잠식하고 있어 무언가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다. 내부는 나무 가구들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창마다 덩쿨 식물이 보이고, 도서관 3층에는 카페 겸 식당도 있다. 잔잔한 피아노 음악이 흐른다. 3층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구매한 후 2층으로 내려와 작업 중이다. 아이, 좋아라. 이 도서관에 입장하자 마자 안내테이블 사서를 찾아 사인된 나의 시집 두 권을 기증했다. 이제 ..

옛 노래방 애창곡은 이승철의 '비애'라는 곡이었다. 과격한 샤우팅으로 시작되는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고요하게 점진적으로 올라가는 클라이맥스라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멜로디가 자연스럽게 우수에 차 있어서 좋아했던 것. 나도 아주 오래전에, 붉게 물든 노을 속에서 한 웅큼의 눈물을 날린 적이 있었다. 비애, 우수에 찬 단어다. 프랑스 영화, '남과 여'가 생각나게 하고, 쟈크 프레베르의 '아침 식사'라는 시를 생각나게 한다. 잘 살고 있을까. 너의 비애가 궁금하다. 너의 비애는 어떤 풍경일까. My favorite song in the old karaoke room was Lee Seung-chul's 'Sadness'. I think I liked the song because it was n..

[아무래도 Maybe / 휘수] . 아무래도 나는 지난 풍경을 다시 보아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너를 다시 만나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푸른 문자를 다시 써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골똘함의 무게를 줄여야겠다. 아무래도 나는 시작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Maybe I should look at the past landscape again. Maybe I should see you again. Maybe I should rewrite the blue letters. Maybe I should lighten the weight of mind. Maybe I should restart a start. (20230301 삼일절 수 01:11) #영화항거를기억하며 #시화나래공원갈매기 #휘수시인 #PoetHwisu #Kor..

내 집 앞 발코니 풍경이다. 이 집에서 거주한 지가 어느새 17년이 되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던 날을 기억한다. 동 입구에 왔을 때 진한 솔향기가 났었다. 그리고 발코니에 서서 산이 바라보이는 풍광을 바라볼 때 행복했었다. 그것으로 다른 문제들이 다 사라졌다. 발코니 한 켠에서는 아이와 나이가 같은 은행나무 5그루가 자란다. 자란다고 표현하기가 미안한 것이 토분에 은행나무 10그루를 심었는데 그중에서 살아남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는 자라지 않고 서로 해치지 않고 공존하려 애쓰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발코니 창을 통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아낌없이 받고 있다. 비가 내리거나 눈이 내리면 절경이 따로 없다. 이 풍경의 파노라마 때문에 이사 가지 못한다.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가 생기면서 이곳..

[나는 주변인이다 / 휘수] 서점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문학 코너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한숨을 쉬며 철학 코너로 가곤 한다. 그리고 철학책을 집어 들고 더 오랜 시간을 보내다 한두 권 구매로 이어진다. 이러한 패턴은 부러 만든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거의 무의식적인 패턴이다. 뒤돌아 나오는 길에 사람들의 발길이 제일 많은 베스트셀러 코너를 본다. 사람들의 잦은 손길 때문에 책장이 들려 있는 책들 몇 개에 나의 손길을 얹어본다. 다시 놓는다. 다른 것을 펼쳐본다. 다시 놓는다. 이렇게 몇 번 반복하다 서점을 나온다. '젊거나 청소년 층은 이미 종이책을 읽지 않는 세대이며, 종이책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주제로 학동들과 토론한 적이 있었다. 며칠 전에는 짧은 소통에 익숙한 세대..

[흐릿하고 이상한 순간 / 휘수] 잠을 자다 일어나면, 흐릿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때가 아침인가 했는데 늦은 저녁이었거나, 밤인가 했는데 여전히 햇살 찬란한 이른 오후이었거나. 상황을 이해하느라 잠시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잠을 잔 시간이 짧았거나 너무 길었다는 것을 깨닫곤 했다. 물 한잔을 들고 발코니 창을 열었다. 새롭게 깨달은 상황 속으로 정신 차리고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귀고 가끔 나뭇잎이 낙하하기도 했다. '세상은 평화로운 것인가, 이렇게 고요하고 잔잔하게 이상하다니.' 그런 때는 나와 세상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서로에게 상관없는 관계 같았다. 나는 외따로이 이 발코니에서 찬물을 마시는 중이었고, 세상은 너 따위가 어디에 있든 어떤 기분이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