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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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모음 2

휘수 Hwisu 2007. 4. 17. 11:33

1962년 충북 중원
1988년 《세계의 문학》 시 「성선설」등을 발표하며  등단
1989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시집, 『우울씨의 일일』, 『자본주의의 약속』,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이레)


금호동의 봄


똥차가 오니 골목에
생기가 확, 돕니다
비닐봉지에 담겨
골목길 올라왔던 갖가지 먹을 것들의 냄새가
시공을 초월 한통속이 되어 하산길 오르니


마냥 무료하던 길에
냄새의 끝, 구린내 가득하여


대파 단을 든 아줌마가 코를 움켜쥐고 뜁니다
숨 참은 아이가 숨차게 달려 내려갑니다
부르르 몸 떨며 식사중인 똥차의 긴 호스 입 터질까
조심, 목욕하고 올라오던 처녀가 전봇대와 몸 부딪쳐
비눗갑 줍느라 허둥대는
살내음


라일락꽃에 걸쳐있던 코들도 우르르 쏟아지고 말아

 
횡단보도 앞에서


손에 튀김닭을 들고 서 있었다
머리도 발가락도 없는 닭고기 냄새가
팔을 타고 올라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겉옷에 달린 단추 몇 개 풀며
닭튀김을 내밀고 싶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지
차량들의 불빛 행렬이 끊기지 않았다
그렇게 사십세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사글셋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 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카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 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에서 자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 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자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자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 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마흔 번째 봄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꽃 지는 봄산처럼

 

꽃 진 봄산처럼

 

나도 누구 가슴

 

한 번 울렁여 보았으면


버드나무

                             

버드나무는 붉은 태양과 푸른 하늘 향해
산 生을, 가지를 뻗어 올리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 희망을 두고
살아간다는 허망함에
反가지를 치렁치렁 당당히 내린다
버드나무는 향일성 세계의 이단아다


버드나무는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
세파에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근육에 힘빼고 목소리 낮춘 부드러운 힘으로
버드나무는 자신을 사랑한다
사색의 가지 늘어뜨려 자신의 몸을 더듬기도 한다
나는 정말 존재하는가


그러나 버드나무는
가시로 온몸을 무장하는 가시나무처럼
광신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흙으로 다시 돌아갈 육신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았자 무엇하나
정말 나는 흙이 아닌 나로 존재하는가
버드나무는 삶의 회의주의자다


버드나무는 무엇이 그립는지
지난 세월 살았던 기억 속으로
가지를 차르르 늘어뜨려
살아온 공간을 반추하며
흙이었던 시절, 육신의 고향을 향해
이른봄 버들개지를 피운다
버드나무는 지독한 향수병자다

 

출처, 간이역에이는시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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