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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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숙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1. 1. 12:14

전남 순천 출생

2003년 <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삼길포에 가다 
 

스산한 가을 바다에 왔네

세찬 바람은 부두에 닿기 전.

거친 물살로 밀려오네

철퍽, 모래톱에 앉아

달려드는 바다를 보네

드문드문 바다에 떠있는

새우잡이 배들에게

내 눈물을 고루 적재 시켰네

마른 생선 대가리처럼

부서부석 물기 마른 눈언저리가

따가워지기 시작했네

서편 해는 빠르게 지고

포구에 한참을 그렇게 쪼그려 앉아

남아 있는 生을 물 위에 띄웠네

흘러,

흘러 어느 곳에 닿을지

묻지 않고  해를 보냈네

어느새 내 등은 휘고

먼 불빛, 어선의 그물에 걸린 새우도

등이 굽고 있을 것이네

저 멀리 초생달

달빛도 얼레빗처럼 휘었네

  

홍어


지푸라기에 한 꾸러미
홍어를 매단 아버지 등이
풍덕천 오일장 달무리 앉은
겨울 그루터기처럼 수척하였다
굵은 땀방울에 살 삭는 냄새가 났다
팔 남매를 둔 무릎 아래
새끼줄 얽힌 한 시절은
홍어를 썩히는데 다 지났을까

 

홍어 안주 탁주 한 잔에
진양조 육자배기 배어나고
니들도 더 살어 봐
빠진 이 사이사이
배알이 톡톡 터지는 소리
얼큰한 초저녁 술잔 위에
떠오르는 황토빛 그림자 너머
막막강산에 젖어오는 헛기침 소리
 

저녁으로의 산책


저녁은 너무 일찍 찾아들었다
길나선 달빛보다 먼저 옷 갈아입고
야생의 영혼들 마른 옷깃 흔드니
갱년기 앓던 민들레의 봄꿈이
홀씨처럼 피어난다
남몰래 아픈 이들,
저녁은 길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나무에서 나무로
얼었던 내 혈관을 타고 흘러
말랐던 감각의 관다발을 흔든다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안개바람 속
도둑고양이 한 마리 쓰레기 뒤적이고
전선 없는 전봇대에 바람이 매달린다
늦은 귀가를 서두르는 자동차의 행렬
꼬리가 길다
나는 나로부터 너무 멀리 왔다 

 

토르소의 노래

 

26-1번 버스가 마장역을 지날 때
그의 어깨에 펄럭이는 긴소매
온몸에 구릿빛 바람을 발라놓고
문득 천 년의 흙덩이를 거슬러 오른
침묵하는 토르소를 본다

 

그의 바구니에 지폐 몇 장과 흩어진 동전들
세상 속으로 손 내미는
내 양심은 도망치고 있었다
당신,잘려나간 왼쪽 팔은
어느 언덕에 묻었는가

 

깊은 강을 헤엄치듯 천천히
횡단보도 건너
북적이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선
그의 꿈이 파란 신호에 머뭇거릴 때

 

밑그림부터 잘못된 드로잉
거친 호흡을 몰아 우리는
나란히 신호를 건넜다


천년 어둠에 잠든 토르소는

언제쯤 깨어 미켈란젤로를 노래할까


전선 위의 새가 황혼 속으로 사라질 때
청계천 고가 아래 잘려진 허벅지가
달궈진 아스팔트를 문질렀다                                                

 

4월의 장례식

 

검은 색 레인코트 깃을 세운
장례식장의 울음소리가 봄비를 타고
집으로 따라 들었다

흩어진 신발들 사이로
치아가 고른 영정 사진이 웃고 있다
산 자는 그네들끼리 어깨를 맞대
음식 주위로 몰려들고
목없는 흰 국화는 허적 허적
건너편 육교를 넘어 간다

긴- 연도 소리가
내 귀를 훑고 지날 때
이미 죽은 자의 울음소리와
죽을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어둠은 소리를 죽이지 못하고
결코 나도 잠재우지 못한다

 

빈방에 소리만 가득하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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