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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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생은 모으는 것 / 장경철

휘수 Hwisu 2006. 1. 8. 13:13
 

인생은 모으는 것 / 장경철 (서울여대) 산책하는 것은 내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시간을 내어 학교를 걷고 묵상하는 가운데 많은 유익을 얻는다. 운동에는 약간의 유익이 있고 경건 연습에는 많은 유익이 있다고 하였으니 산책에는 최고의 유익이 있다. 묵상 가운데 산책하는 것은 운동과 경건을 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나는 나의 동굴로부터 벗어난다. 산책을 하기 전에 내 인생은 나의 세계 속에 갇혀 있다. 구실에서 나는 내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내게 찾아오는 학생을 만난다. 나의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의 업무에 몰입되어 있다. 모든 것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내 일이 장벽에 부딪힐 때 모든 우주는 어둠 속에 갇힌다. 연구실 문을 나서서 자연 가운데 비취는 빛의 세계에 들어설 때 나는 나의 동굴에서 벗어난다. 이 세상에는 나외에도 많은 존재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 일 속에서 빠져나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주의 합창 속에 들어간다. 산책할 때 보통 서울여대의 한샘길을 거친다. 한샘길 우편에는 은행나무가 열병을 하듯이 서 있으며, 중간에 모여 있는 모과나무 세 그루도 독특한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산책은 학교의 한복판에 위치한 삼각숲을 거치게 된다. 울여대 삼각숲은 내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며, 내 생각의 공장이다. 삼각숲을 거니는 가운데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생산된다. 지난 해 봄에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삼각숲을 걷고 있었다. 그때 축제 준비를 하던 동아리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탈춤 연습을 하던 학생들을 보자 문득 마음속에 의문이 일었다 . '야, 멋지게 춤을 추는구나. 그런데 춤을 추는 것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춤을 출 뿐만 아니라 노래도 불렀는데, 첫 번째 의문은 그 뒤에 꼬리를 물고 다른 물음으로 이어졌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난 해 봄에는 학교의 생활관 건물이 완공되기 전이었다. 삼각숲 옆에서 건축되는 생활관 건물을 보니, 또다른 물음이 일어났다.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책없이 일어난 의문들은 멈출 줄 몰랐다. 무용, 음악, 건축에 관한 물음은 미술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또 무엇일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집을 짓고, 그림을 그리는 창조적 활동에 대한 물음은 공통분모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예술적이며 창의적인 행동 속에 공통적인 무엇일까? 그저 물음만을 붙들고 걷고 있을 즈음에, 어떤 단어가 머릿 속을 섬광과 같이 스쳤다. '아, 그렇지. 모두가 모으는 것이구나.' 순간적으로 스쳐간 생각을 차근히 펼쳐보니, 모든 활동의 핵심은 모으는 것이었다. 춤을 추는 것은 리듬에 따라서 동작을 모으는 것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화음을 따라서 소리를 모으는 것이었다. 집을 짓는 것은 설계를 따라서 재료를 모으는 것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은 구도를 따라서 이미지를 모으는 것이었다.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가 모으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인생의 모든 계획과 사건이 인생과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흐름 속에 모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이 내 속에서 강하게 일어났다. 인생의 경험도 말씀의 흐름 속에서 모아지지 않으면 파편에 불과하다. 인생의 재능도 은혜의 흐름 속에서 모아지지 않으면 조각에 불과하다. 믿음이란 창조의 시간부터 종말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도도히 흐르는 하나님의 흐름 속에 나의 삶을 모으는 것이다. 인생을 하나님의 흐름 속에 맡길 때 우리는 시간의 단절을 넘어서서 영원의 흐름 속에 참여하게 된다. 영원의 흐름 속에 참여할 때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창세기의 첫 날을 회복하게 되며, 기쁨의 심정으로 계시록의 마지막 날을 앞당겨 맞이하게 된다. 오늘 하루도 이 설레임과 기쁨이 모든 사람들의 삶 가운데 넘쳐 흐를 수 있으면 좋겠다.

 
출처 : 블로그 > 거울 | 글쓴이 : 거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