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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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우리 집 野生草 / 윤행원

휘수 Hwisu 2006. 1. 8. 13:14
 

우리 집 野生草 / 윤행원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구, 스테인리스강판의 벽과 세멘트 바닥 사이 조금 벌어진 틈 사이에 언제부터인지 이름 모를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키는 10cm정도로 작고, 가느다란 몸통에 십 원짜리 동전 반 크기의 잎사귀가 다닥다닥 불어 있다. 혼자서 앙증스런 자태로 늠름하게 외로이 버티며 살고 있다. 주위엔 잡초마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오지(?)에서 고고(孤高)하게 살고 있다. 지붕 안쪽에 있어 비도 직접 맞지 못하고 햇살은 하루 삽 십분 정도 들락 말락 하는 계단입구 모서리에 수분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는 척박한 장소에 풀씨가 언제 날라 왔는지 외로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몇 년 만에 찾아 왔다는 매서운 추위에도 끄떡하지 않고 태연하게 버티고 있는 게 하도 가상하고 어쩌면 숭고하기도 해서 가끔가다 이 조그만 나무한테 인사를 걸기도 한다. 野生草의 生命力이 그렇게도 억세단 말인가...! 한 생명력의 끈질긴 강인(强忍)함에 늘상 감탄하고 만다. 지난여름엔, 한동안 잊다가도 문득 생각이 나서 가 보면 여전히 파랗게 生命力을 자랑하고 있어서 일부러 수돗물을 한 컵쯤 주위에 쏟아 붇기도 했다. 그러다 한동안 잊어먹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도, 따로 수분을 공급받지 않았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생생하게 버티고 있는 게 고마워서 옆에 앉아 이파리의 먼지를 정성들여 씻어 주기도 했다. 그나마 추운 겨울엔 이나 마저 망서러진다. 잎사귀에 앉은 먼지덮개가 이렇게 추운 겨울엔 나무한테는 혹시 보온역할 이라도 될까 해서 감히 손도 못 대고 그 저 안쓰럽게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외로운 이 식물을 볼 때마다 신기한 생각이 든다. 상록수(常綠樹)를 발견한지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조금도 더 자라지 않고 그때나 지금이나 키와 부피가 같다는 사실이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더 자라거나 옆으로 가지를 뻗을라치면 문을 여닫을 때마다 다 칠 것 같다. 이 식물은 그걸 알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신통하고 영리한가! '식물의 신비생활'이라고 하는 책엔, 식물도 우리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는 것이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학 끝에 시들어 버린다는 말이 생각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식물도 영혼이 있다고 한 적이 있지만, 현대의 어느 식물학자는 식물도 학대를 하면 격렬한 반발을 하고 친절하게 대하면 고마워서 진지한 敬意를 표한다고 한다. 단순히 살아 숨 쉴 뿐만 아니라 상호교감도 나눌 수 있는 혼과 개성을 부여받은 창조물이란 것이다. 나는 가끔 이 식물을 볼 때마다 사랑스런 마음으로 조그만 잎사귀를 살짝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물을 붓고 몸을 씻어 주면서 "너를 사랑 한다 예쁜 놈아! 부디 건강하게 자라다오." 하면서 혼자 말처럼 나무와 정다운 대화를 하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나 싱싱하고 맵시 좋은 예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는 이 나무 한 그루 한 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어떤 역경에서도 한번 받은 생명은 이어 가야 한다는 것, 기왕 사는 거라면 의젓하고 품위 있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웃과 주위에 맑은 즐거움을 준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 물론 자기 혼자만의 독한 마음으로 사는 것은 아니겠지. 한 알의 생명체가 움트고 성장 발육하기 위해선 어쩌면 온 우주가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시원한 공기가 흐르고... 그러나 직접 혜택은 충분히 받지 못할망정 틈새 세멘 바닥 밑에선 어느 정도 수분도 공급받을 것이고 온갖 자양분도 흡수 할 것이다 그리고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선 가느다란 뿌리줄기는 엄청 힘쓸 것이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볼 순 없지만 이 나무의 연약한 뿌리가지는 아주 더 많이 발달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조건이 나쁠수록 강인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온실에서 자란 식물은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눈이 많이 와서 덮개라도 부서지고 나면 얼어서 말라죽거나 시들어 버리는 걸 본다. 그러나 이 연약해 보이는 나무 한 그루는 어떤 악천후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버티는걸 보라! 비록 조그마한 나무이지만 위대한 조물주의 가호(嘉護)도 받았을 것이다. 일단 태어난 생명,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도 반드시 꿋꿋하게 살아야 할 의무라도 있는 양 묵묵히 버티면서 자기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며 사는 모습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생명의 외경(畏敬)에 새삼 숙연해 지는 마음이다.

 
출처 : 블로그 > 거울 | 글쓴이 : 거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