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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꼭지 장례식 / 최일걸

휘수 Hwisu 2008. 8. 14. 10:15
수도꼭지 장례식 /  최일걸


그 가족을 세상과 연결지어주는 건 수도꼭지였다

지하 셋방, 전기와 가스와 전화는 끊긴 지 오래,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쉼 없이 쏟아지는 수돗물뿐,

만약에 집주인이 공사를 강행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좀 더 오래 수도꼭지를 통해

세상을 엿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찰이 눅눅한 어둠을 걷어내자

전깃줄로 서로를 꽁꽁 묶은 일가족 시신이 드러났다

죽어서도 헤어지지 말자

30대 가장과 어린 아들딸은

전깃줄로 허리를 질끈 묶으며 그렇게 다짐했지만

아들딸의 죽음의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을 엄마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대체 그들은 수돗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며칠이나 버티다가 위험수위를 넘은 걸까

그들의 머리맡에 나뒹구는 종이컵 세 개,

그 안에 담겨 있던 최후의 만찬은 바닥을 드러냈는데

경찰은 과학수사로 쥐어짜내려 하고,

카메라로 일가족을 채집했다

처음 찍어보는 가족사진,

그래도 수돗물은 콸콸 쏟아져 나와

마지막 가는 길에 단비로 내렸을 것이다

집주인이 투덜거리며 수도꼭지를 잠그자

수도꼭지를 들락날락하던 일가족은 이내 잠잠해지고

장례식은 막을 내렸다

지나치게 몸 낮추고 살아온 탓에

한 번도 슬픔을 꺼내 말려본 적 없는 그들은

노트 5장 분량의 유서 행간을 용케 빠져나와

신문 하단에 일단기사로 말라붙었다

 

<두레문학 > 2008. 8호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1997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06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2006 <전남일보> 신춘문예 희곡 가작 입선

2008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8 춘천인형극제 대본공모 가작 입선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