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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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시모음

휘수 Hwisu 2007. 5. 3. 10:13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편운문학상」신인상 수상
   1997년 시와시학「젊은 시인상」수상
   1993년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1996년『버마재비 사랑』
   2000년『새에 대한 반성문』
   2002년『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2005년『목련꽃 브라자』
   2006년『어느 대나무의 고백』

  
목련 후기

 

목련꽃 지는 모습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말라
순백의 눈도 녹으면 질척거리는 것을
지는 모습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그대를 향한 사랑의 끝이
피는 꽃처럼 아름답기를 바라는가
지는 동백처럼
일순간에 져버리는 순교를 바라는가
아무래도 그렇게는 돌아서지 못 하겠다
구름에 달처럼은 가지 말라 청춘이여
돌아보라 사람아
없었으면 더욱 좋았을 기억의 비늘들이
타다 남은 편지처럼 날린대서
미친 사랑의 증거가 저리 남았대서
두려운가
사랑했으므로
사랑해버렸으므로
그대를 향해 뿜었던 분수 같은 열정이
피딱지처럼 엉켜서
상처로 기억되는 그런 사랑일지라도
낫지 않고 싶어라
이대로 한 열흘만이라도 더 앓고 싶어라

 

경배

 

누렇게 늙은 청둥호박을 땄다
줄기에서 떨어진 자리에
한동안 진물이 흐른다
다 늙도록 젖을 먹이다 떼어놓는
저도 결별이 아쉬웠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 시드는 호박 넌출은
호박의 탯줄인 셈인데
뉘 집 아들과 같은 호박을
안거나 머리에 이거나
두 팔로 안아 들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 그것이다
거실 한 쪽에 놓고 겨울을 나자니
우수 지날 무렵 호박 밑둥에 물이 고였다
물러져 무너지기 시작한 아, 거기
새끼 붕어 같은 한 됫박 호박씨가
욜랑욜랑 양수를 헤엄치듯 박혀있다
그러니 이것들을
왔던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지 아니할 수 있나
옛 호박 구덩이 자리에
군데군데 호박씨를 묻고 온 날
그런 나를 굽어다 보며 웃는 푸른 낮달에
합장하고서 하느님, 부를 뻔하였다

 

숙제와 폐타이어

 

숙제장 노트를 엎어놓은 듯한 슬레이트 지붕위에

폐타이어 몇 개 놓여있다

그렇지 삶은 숙제이지

저 작은 지붕 아래도 풀어야 할 문제는 잔뜩 쌓여서

때로는 새벽까지 불이 밝았다

그래서 지아비가 다시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지어미는 그보다 먼저 까만 비닐봉지에

두부를 사들고 들어가 찌개를 끓였을 것이다

그래 잘 풀었다고 선생님이

착한 아이 숙제장에 그려준 동그라미처럼

하느님이 동그라미 대신 폐타이어를 올려놓았을지도 모르지

가끔은 냄비가 뒹굴고

흐느낌 소리가 마당귀를 적셨으나

요란하게 풀 문제도 있긴 하는 거라

숙제를 잘 풀긴 하였던지

이번 태풍에도

지붕 끄떡없다 폐타이어 몇 개

저 수레 같은 집 한 채 끌고

이 밤도 어느 하늘 향하여 가려는지

창에 다시 환하게 불이 켜지고

거기에 응답하는

누구의 미소인가 하늘엔 눈썹달


<문학수첩> 2007년 봄

 

명편


서해 바닷가 채석강 암벽 한 구석에
종석♡진영 왔다 간다
비뚤비뚤 새겨져 있다


채석강 암벽이 만 권의 서책이라 할지라도
이 한 문장이면 족하다
옳다 누군가 눈이 참 밝구나


사내가 맥가이버칼 끝으로 글자를 새기는 동안
사내의 등을 기댄 그니의 두 눈엔 바다가 가득 넘쳐났으리라


왔다 갔다는 것
자명한 것이 이 밖에 더 있을까
한 생애 요약하면 이 한 문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새길만한 가치가 있다면
사랑했다는 것


설령 그것이 마지막 묘지명이라 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이미 그생애는 명편인 것이다

 

상처에 대하여

 

오래 전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핀다
오래 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


시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2006년 문학의전당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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