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2007년 [문학과 사회]신인상 당선작 / 최원준 본문
2007년 [문학과 사회]신인상 당선작 / 최원준
동전식별의 원리
투입된 동전은 검사기에서 금속 함유량에 따른 전류의 크기를 검사받는다 적절한 양의 금속을 함유하고 있지 않은 동전은 전류의 세기에서 차이가 나므로, 동전에 전류를 흘려 일정한 크기의 전류가 흐르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이 검사를 통과하면 자석과 광센서를 이용해 동전의 종류를 검사한다 동전은 자석의 양 극 사이를 통과하면서 속도가 느려지고, 발광 다이오드가 배열돼 있는 공간을 지나면서 광센서에 의해 크기와 지나가는 속도가 측정된다 만약 측정된 크기와 지나가는 속도가 어떤 종류의 동전과도 맞지 않는다면, 제거기를 통해 밖으로 내보내진다
-[전자식 동전 검사가의 원리]. 자판기에게 물음
적절한 양의 은행 잔고를 함유하고 있지 않은 그는
아파트 창문 열린 틈 사이를 통과하며
잠시 속도가 느려진다
이제까지 본 어떤 종류의 새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그를 발견한 유리창들
일제히 경악의 빛으로 반짝인다
커다랗게 동공에 확대되는
1104호 904호 604호 104호
공중의 투명한 제거기를 지나며 그는
몇 개의 나뭇가지를 부러뜨린다
반환된 동전이 그러하듯
짧고 격렬한 떨림 끝에 조용해지는 그
처음 발견한 푸른 제복의 말에 따르면
한쪽 테두리가 움푹 패어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기계, 2035
닫히던 문 사이로 팔이 끌려 들어간다 문은 팔목과 소매 사이의 공기를 부드럽게 밀어내며 오른팔을 움켜잡는다 거칠게 빼내려고 비틀자 열차 안쪽으로 단추가 떨어진다 그는 왼쪽을 차체에 대고 힘껏 몸을 당긴다 천천히 바퀴가 구르기 시작한다 그는 문의 힘을 당할 수 없다 비명을 지르며, 알에서 갓 깨어난 거북이처럼 검은 승강장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헤드라이트처럼 부릅뜬 눈과 펑크난 타이어처럼 일그러진 입, 움직임이 멎을때까지 문은 그를 놓치지 않는다
- 이상한 현장을 목격한 CCTV의 진술이었습니다 경찰은 청량리 방향으로 달아난 용의자 7238호 차량을 지명 수배하고 각 차량 기지를 중심으로 검문검색을 강화했습니다 /다음은 가정용 컴퓨터들의 파업 소식입니다 N195 취재로봇 나와 주세요
그녀는 미소를 바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며 그녀는 투명하게 포장된다 지하철역 가까운 테이크아웃 커피점으로 들어가 유니폼을 입고 초록 앞치마를 두른다 유통기한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미소를 얼굴에 바르며 라테 모카 카푸치노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작은 포장들을 건넨다
눈에 익은 포장이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리며 마주친 적이 있었던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다 재빨리 그녀는 미소를 얼굴에 바른다 비슷한 포장이 너무 많아, 입구까지 흘러나온 내용물을 안으로 담으며 그녀는 익숙한 동작으로 작은 포장을 건넨다
커다란 포장이 그녀에게 돈을 주고 작은 포장을 집는다 가끔 까다로운 포장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대체로 포장들은 온순하다 포장의 생명은 내용물을 드러내지 않는 데 있는 것이다
통조림
1
통조림을 따다 손을 베었다
베인 틈으로 피가 나온다
매끈하고 반짝이는 속에
저렇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니
반쯤 휘러진 채로 멈춘 통조림 뚜껑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피 한 방울 남지 않은 살을 속에 담은 채
밀봉된 시간을 견뎌왔을 참치
견디며 점점 얇고 날카로워진 이빨
슬몃 감춰두는 법도 배웠을 것이다
2
내가 그의 뚜껑을 따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통조림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뚜껑을 열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엄지와 검지 사이 길이 4mm의
상처가 되었다
내가 그의 뚜껑을 열어준 것처럼
나의 이 들끓는 殺意에 알맞은
누가 먼저 나를 쳐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상처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빨간줄이 되고 싶다
- 김춘수 다시 부르기, 「자해공갈단」전문
1979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2007년『문학과사회』로 등단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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