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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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일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1. 29. 17:47

1965년 생

서울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졸업

1990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
전 영화기획자, 전 초등교원
현 문학세계사 기획이사

시집 < 붉은 기호등>제3의 詩  1994년 문학세계사

 

묶인 배

 

어디로든 가고 싶었을 게다

천 번 만 번은 출렁거렸을 것이다

 

부두의 갈매기들도 멀리 날지 못하고

하염없이

썩은 내 나는

포구만 맴도는

 

봄날

 

(가여워라)

 

묶인 배

 

붉게 녹슨 눈을 깜박이며

끼익- 익-

목 쉰 노래만 부른다

 

어디로든 가고 싶어

천 번 만 번은 출렁거렸을

묶인 배의 빈 그물처럼

 

(사랑은, 꿈은, 혁명은, 세상은)

 

비린 흔적만 가득하다

 

滿船이다

  

꽃싸움


달빛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
당신을 안고 붉은 밤을 건너면,
곱디곱다는 화전花田엘 갈 수 있나요?


화전花田엘 가면
노랗고 파란 꽃그늘 아래 누워
지독히도 달콤한 암내 맡으며
능청스레 꽃싸움할 수 있겠지요?

당신은 새벽별보다 찬란하게 웃고
나는 밤새 문신文身 그려 넣으며
환장할
노래를 부를 테지요


화전花田이면 어떻고, 화전火田이면 어때요
아침가리 지나 곰배령이면 어떻고,
별꽃 피는 만항재면 또 어때요

잃을 것 뺏을 것도 없는 빈들에 가서
꽃집 지어 벌 나비 들게 하고
수줍은 미소에도 찰랑거리는 도라지꽃처럼
속살속살 지저귀며
하루만, 하루만 살아요, 네?  

 

아바나의 피아니스트

 

오래 전에 나는 아바나 해변의 재즈 피아니스트였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같은
유명한 악단의 멤버는 아니었지만
가끔, 취한 체게바라가 찾아와 클럽의 연주를 듣고 가기도 했었지
바다가 보이는 작고 낡은 바에선 언제나 음악이 끊이질 않았다네

 

석양을 칵테일 잔에 담아 마시던 이국 아가씨의 뺨이 발그레 물들 때
잘 기른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다가가
이마에 입맞춤해 주기도 했었지 아바나에선
그렇게 사랑을 시작한다네

 

기분이 나면 맘보나 차차차를
제국의 거리에, 살구꽃 냄새 나는 불온한
유인물을 뿌리고 돌아온 새벽에는
슬픈 살사를 두드렸다네 오래된 건반이 부숴지도록

 

그럴 때면 샛노란 양철 지붕 위로
푸른 달빛이었는지, 굵은 빗줄기였는지
혁명이었는지, 고백이었는지
폭포처럼 방언처럼 쏟아져 내렸었고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깊고 아픈 꿈을 꾸기 시작했었지

 

아득히 그리운 그곳
아바나에선 모두가 시인이라네
시거든 대마초든 달디단 담배를 물고 아무 곡조나 흥얼거리지

아무도 무언가를 적지 않지만
인생을 조금 아는 사람들의 눈에선
당신 닮은 수련꽃이 몇 번이나 피고 졌다네


예전의 나는 아바나 해변의 재즈 피아니스트였네
산타루치아 해변이나 이태원의 숨은 뒷골목에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차차차.

 

선물

 

음악은 파가니니

별빛 같은 속눈썹, 짤랑이는 귀걸이

고요히고요히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컵

하얀 카라 한 다발

 

내 오른쪽 어깨

당신께 줄 수 있는 건

가을 공원에서의 샌드위치 도시락

손잡고 함께 보는 영화 한 편

 

말없이 걷는 덕수궁 뒷길

속삭임, 당신이 젤 좋다는 거짓말 같은 속삭임

널 위한 사랑노래

그리고 보르헤스의 꿈들과

 

아득히 먼 곳으로 혼자 떠나는 여행

당신께 드리고 싶은 건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낡은 레코드판처럼 쓸쓸히 흐느끼는 울음

 

음악은 파가니니

별빛 같은 속눈썹, 짤랑이는 귀걸이

고요히고요히 마시는 차가운 맥주 한 컵

하얀 카라 한 다발 
                                                                     

 우드스탁을 떠나며

-고백컨대, 신촌의 절반은 내 것이었다

 

철없던 계절의 뒷골목아, 안녕

뒤돌아보지 않으마

 

(3번테이블,볼셰비키앉아맥주를마신다)

 

안녕, 쓸쓸히 머리 푼 가로수야 마른 잎들아

나는 너를 떠난다

색바랜 청동의 영웅도, 자욱한 최루탄 연기 같은 추억도

이젠 게워내련다 돌아보지 않으련다

 

(늦게떠나는바캉스처럼기대도낭만도담지않고이것저것아무거나배낭에구겨넣고서간다)

(에릭사티도,에곤쉴레도이젠없다이곳엔)

 

푸른 피 가득한 거리를 지나

냄새나는 추억을 밟고

폭설이 퍼붓기 전에 처마의 고드름 심장에 쳐박히기 전에

 

간다, 황급히 도망가련다

 

(깊게패인옷을입은클라라의하얀가슴위엔반달이뜬다)

(숨이막힌다흩날리는꽃잎꽃잎꽃이파리들...)

 

세월이 조롱할지라도, 이제 난 꿈을 꾸련다

 

(지미핸드릭스의기타가부서진다)

(거리엔보르헤르트,비틀대며걷는다)

 

누르고 참았던 슬픈 기억처럼

울컥,

태양이 솟는다, 찬란한 비애여!


건배!



페르세우스,헤르클레스, 세페우스,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별들이 사는 마을의 이름이라지

 

무한하고 무수한 별들의 마을 중에서

태양 없이는 제 스스로 빛을 발하지도 못하는

별이 되지도 못한 지구라는 행성 속에서,

5개의 큰 바다와 6개의 큰 땅

그 중에서 가장 쓸쓸한 대륙의 귀퉁이에서,

 

젖은 볏단처럼 내 팔에 기대어 잠든

티끌 같은 당신을 바라보며

페르세우스,헤르클레스,세페우스,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암호 같은 이름들을 불러본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득한 곳에서 환한 빛을 발하는

페르세우스,헤르클레스, 세페우스,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미안하다 말하지 않아도

활짝 꽃 피워주는

페르세우스,헤르클레스,세페우스,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당신의 그렁그렁 단잠 든 소리에

그렁그렁 내 눈에 별 뜬다 별 진다

 

페르세우스,헤르클레스,세페우스,페가수스, 카시오페이아......

당신이 존재하는 마을의 이름이라지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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