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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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시모음

휘수 Hwisu 2006. 8. 26. 20:41

     1943년 경남 산청 출생.  아호 하정
    진주고, 동국대 국문과, 동아대 대학원 수료
    (문학박사,한국 가톨릭 시 연구)
    1965년<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부 당선
    경상대학교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경남일보> 논설위원 
    경남펜클럽회장,  지역문학인회 좌장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공동주간
    시집 < 연기 및 일기>, < 풍경보>, < 산에 가서>,
    <사랑제> < 사랑제 이후> < 화계리>,< 소문리를 지나며>
    <중산리 요즘> <기침이 난다> <바다 한 시간 쯤> 등
    공보부 신인예술상(1966), 경남도문화상(1974),

    조연현문학상(1995)을 수상

 

봄이 바람으로 와서 

 

봄이 바람으로 와서
온갖 곳 들여다보고 참견하고 손으로 탁 탁
건드려 본다
판자나 슬레트 같은 것은 만만하다 못해 발길질이나
박치기로, 붙어 있는 자리
뻐드렁니 어긋져 오르게 한다

 

봄이 바람으로 와서
살아 있는 것들 가슴에 쥐불 같은 걸 놓고 다닌다
타오르는 것이 재미이거나 태극기 펄럭이는 것쯤으로 본다
볼 뿐만 아니라 타는 데마다 부채로 부쳐 주며
처녀를 젖몽오리 같은 데 흐르는 그리움에
섞여 들어가, 잠시 잠시 타는 소리로 엎드려 지낸다

 

봄이 바람으로 와서
내게는 부끄러운 추억 같은 것 연애편지 같은 것
다 흘러가버린 소리 불러다 새로 청청 읽어 준다
글 읽는 소리에 추억이 청춘으로 살아나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추억이 봄풀로 돋아나고
봄풀은 쥐불처럼 논두렁으로 밭두렁으로 헤매고
번지는 것일까

 

막막 아지랑이에 붙들려 쏘다니는 것일까

 

만灣

 

나 떼어놓고
순천만이 갈대를 치고
뻘이 뻘을 치고
시베리아 흑두루미를 부르고
청동오리 연으로 띄우고
개을 개을 무슨 소리 같은 것 치고
나 떼어놓고
순천만이 제 엉덩이짝 흔들어
뻘물 찰름이는
뻘물에 오장육부 들여 놓는 들여 놓다가
잘 잡힌 갈대밭 한 이십 리
하오의 햇살로 어루다가
갈대 어금니빨 빼내어 먼 바다 던지다가
헹구다가
나 떼어놓고
도로 제 자리 가져다 끼우다가
말다가

 

자다가 흐느끼는,

 

남문산역에서

 

그는 기차로 오지 않을 것이다

 

기차는 그의 숨소리
그와 같이 하던 일들의 머리카락 같은 걸
객실의 빈자리에
실어 갖고 올지 모른다

 

역촌은 떠나가고 떠나오는 사람들 찍은
앨범과 같지만
그의 사진은 아직 그 어느 귀퉁이에도 자리 잡지 않았다

 

길 가는 중이거나 표지판 앞 머뭇거리고 있는 중에
기차는 빈 채로, 다음 역에서 갈려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일 뿐
우리가 전성일 때 들렀던 근처의 외진
식당은 불안한 성업이다

 

그는 기차로 오지 않을 것이다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택배에 부쳐지거나
승용차 트렁크 안
우리가 잘 먹던 국수 면날, 면날 같은 미련으로
재워져 있을 것

 

기차는 갈촌에서 닳은 신발소리 내고
닳지 않는 기억은
입석 같은 표로도 그 기차에 올라
틀립없이
이리로 오고 있으리라

 

노인밥 
 -청락원에 가서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다
서너 가지 반찬에 게된장국
잘 단련된 내 입에도 숟가락으로 들어와

 

제 밭뙈기 이랑인 양 스며드는구나

 

노인은 입으로부터 오는가
식탁을 사이하고 한끼 에우는 노인들
표정이 등걸에 핀 매화 같다

 

은퇴와 소외와 정년의 그늘
어깨에서 내려놓은 자리 거기, 맞춤 같은 바겐세일 같은
무위의 안락 하나씩 얹어 놓고
서너 가지 반찬에 게된장국이 성찬이다

 

노인들 속에 끼여서 노인밥을 먹는다
정년 한 사람처럼
하루의 스케줄 따로 없는 사람처럼

기다려라 노인시설 군데군데 짚어 다니는 사람처럼
어디에나 있는 같은 모양 숟가락 들고
오늘
생애의 물레질, 밥 한끼 에운다 

 

포도와의 전쟁

 

포도송이는 탱크다
쟁반에 담긴 채 거실 복판으로 유유히 들어온
진보라색 군가를 부르는 탱크다

 

거실 윗목이 적군에 이미 떨어지고
복판으로 금세 밀리어 밀리어 드는
알알이 군가를 부르는 탱크다

 

아 식구들은 포도의 우군友軍이다
눈짓으로 군호를 보내면 기꺼이 소멸로 답해 주는
이슬람교도들의 아름다운 자폭, 자폭의 테러

 

시시각각 군가 소리 가까워지고
혀 끝에 와 닿는 자폭의 감미로운 돌진
이대로 밀리면 단감,
담감에 밀리면 과일 과일들 종대로 밀고 오리라

 

당糖이여 탱크여
밀고 오지 말아라 내 미소를 주리라
미소로 만든 순금의 반지, 순금의 목걸이

채워주리라

 

당糖이여 포도여
그대들 우군에게도 내 미소를 주리라 촌지寸志를
주리라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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