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제10회 구상ㆍ솟대문학상 당선작 / 손병걸 본문
제10회 구상ㆍ솟대문학상 당선작
손병걸 시인
1967년 강원 동해 태생
2003년 솟대문학 3회추천 완료
2004년 대한민국장애인 문학상,
동아일보
백병원 주최 투병문학상,
안문희 문학상,
청민문학상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가작당선
어둠이 환하다
직접 보거나 만져 보며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살아왔다.
눈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겪을 때도
쉬지 않고 눈을 움켜잡았고
시력을 완전히 잃어 버리던 그날까지도
두 눈동자를 굴려 보며
결코, 욕심을 놓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눈은 자꾸 함몰되어
검은 눈동자가 허옇게 흉해지고 있지만
이즈음에서 나는 꼭 확인하지 않아도
믿어
버리는 여유를 배웠다.
앞으로 걸으며 뒤를 보아야 하는
그 걸음은 얼마나 불안한가
돌이켜 보면 나의 생은 얼마나 많은
확인을
강요당하며 살아왔었는가
보일 듯 말듯 그때가 답답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쉽게 믿어 버리며 산다는 것에
나의 어둠이
환하다.
하모니카
산다는 것이
들숨 날숨 몰아쉬며
숨이 넘어가도록 땀을 쏟는 일이겠지
매우 길게 조금 짧게
매우 높게 조금 낮게
빨랐다 느렸다 쉴새없는 저 곡조는
휘몰아치는 바람 탓에
온몸이
부르르 떨리는 소리겠지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눈물도
때론 환한 웃음 짓는 것도
숭덩숭덩 뚫린 몸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래 파이고 뚫리지 않고서야
어찌 애달픈 곡조가 흘러나오겠어
그래 바람 찾지 않는 계곡에
어찌 아름다운 노래가 있겠어
도 하 미 하 솔 하 시 하
도 하 하 하 파 미 레 하
아무렴 살아있으니 멈출 수는 없는 노래지
푸른 신호등
햇살 좋은 오후,
오랜만에 나서는 외출이다.
그날도 지하철 역 앞 버스 정류장
보도블록에서 봄볕이 튕겨 오르고
까만 눈동자들 와글와글 대고 있었다.
그 순간, 건너편 신호등에
빨간 눈이 감기고 파란 눈이 끔벅일 때
일제히 사람들 아스팔트로 뛰어들었지만
흰 지팡이를
든 하얀 눈동자의 아저씨는
낡은 전봇대처럼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사람들 감전이라도 될 듯
주뼛주뼛 빙 돌아 멀어져 가고
나는 멈춰선 채 파란 눈짓을 몇 번 더 보았지만
끝내 그
아저씨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그 후 십수 년이 지나
내 손에도 흰 지팡이가 들려 있고
우뚝 선 내 몸을 빙 돌아
사람들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가고
내 심장에는 낡은 전봇대 하나 박힌 채
시도 때도 없이 파란 눈이 끔벅이고 있다.
시소
봄볕이 쏟아지는 오후
놀이터 한쪽 시소를 향해
아장아장 아이들이 모이고 있다.
시소에 탄 아이들
솟구쳐 오를 때마다
별을 따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나는
늘, 불안하게 기우뚱거리는
어른들의 세상을 생각했다.
까르르 까르르 놀던 아이들
어느새 제각기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슬며시 걸음을 옮겨
시소 한쪽에 걸터앉았는데
시소는 무리한 꿈을 품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힘을 포기하며
또 하나의 별을 건지는
아름다운 승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겨울모기
젖먹던 힘까지 쏟아부은 듯
힘껏 귓불을 찌르는 모기 한 마리
문득, 비행소리가 불안하다
그래도 어디 한번
해보자는 듯
옳게 꽂히지도 않는 촉수로
금시 또 내 귓불 주위를 앵앵거리는데
오늘도 꼬박 밤샐 것만 같은
어이구,
저 징그러운 철야근무
그래, 넌들 어딜
오체투지로도 어쩌지 못하는
연명(延命)이야 하고 싶겠느냐
쫓기고 쫓겨 다니며
생과 사의 계절을 잃어왔던 건
비단, 너 뿐만은 아니다
산동네 오르는 캄캄한 골목엔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 끊이지
않고
허기 채울 숨 한번 들이켜는 것도
잔뜩 휜 허리를 펴고서야 제 맛일진대
이 육중한 엄동설한에 어디
따뜻한 밥상
한번 펴 본 때가 있었더냐
아나,
이 피폐한 몸뚱어리라도 뜯어 먹고
기어이 우리 함께 꽃향기 가득한
저 들판으로
가자꾸나
낙하의 힘
모든 물질들은 때가 되면 떨어지고
떨어지는 그 힘으로 우리는 일어난다
그때도 그랬다, 천수답 소작농으로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쌀독 탓에
수백 미터 갱 속, 아버지의 곡괭이질과
시래기
곶감 담은 대야이고 눈길을 헤치던 어머니의 힘으로
우리 남매는 교복을 입고 푸르른 칠판을 바라보며
김이 오르는 밥상 앞에 앉아왔다
어느덧, 딸내미 책가방도 무거워가는데
떨어지고 떨어지는 허기진 살림 탓에
아내는 새벽부터 출근을 서두르고 나는
채
익숙지 않은 흰 지팡이를 펴고
늘, 시큰둥한 면접관을 만나러 간다
떨어지는 힘으로 제자리를 잡는 일이
어디 우리네 살아가는 일뿐일까
이를 악물고 비바람을 견뎌온
꽃봉오리가 펼친 꽃잎이
떨어지는 힘으로
덜 여문 열매가 익어가고 땅은 또 씨앗을 품듯
떨어진 이파리가 겨울나무의 발목을 덮어주며
기꺼이 썩어주는
열기로 봄은 돌아오는 것
보라, 떨어지는 별들의 힘으로
못내 구천을 떠돌던 가난한 영혼들이
하늘에 내어준 빈자리에 자리를 잡듯
그 순간,
별똥에 소원을 비는 것도
다들 낙하의 힘을 믿고 있는 탓이다
단풍나무
그래, 끝을 알고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싱거운 일인가
끝내 온몸이 벌게진 채
한 잎 두 잎 살점을 내려놓는
단풍나무, 너는 온전히 가을이다
한때는 무모하리만큼
꽁꽁 언 세상을 향해
연초록 입술을 삐쭉거리던
해맑은 모습도 있었다
한때는 격렬히 달궈진
세상을 식혀볼 거라고
푸른 꿈을 실어 나부끼던
시퍼런 청춘도 있었다
어차피 산다는 것이
다 내려놓기 위한 발버둥처럼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뻔한 길이라고들 말하지만
오늘 아침 세상에
흩어놓는
너의 아찔한 피비린내가 없었다면
저 바람도 따라오지 않았으리니
비로소, 나도 기쁘게 가을이다
제10회 구상ㆍ솟대문학상 심사평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는 시
왜 시를 쓰고 읽는가? 제10회 ‘구상ㆍ솟대문학상’ 심사에 임하면서 우리는 다시금 글을 쓰는 의미, 시를 쓰는 참뜻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몸이 아프고 불편하며 그렇기에 마음 또한 그늘 깊은 장애우 시인들에 있어서랴.
한마디로 시를 쓰는 일이란 자신이 처한 온갖 좌절과 상처를 딛고 일어섬으로써 정신의 구원을 얻으려는 안간힘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해
특히 장애우들에게 있어 글쓰기, 시쓰기란 스스로의 존재증명이자 자아실현이고, 동시에 자기극복이면서 자기구원의 길이라는 뜻이다.
엄격한
예심을 거쳐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김문택의 '억새꽃' 외, 홍진기의 '겨우살이' 외, 김정배의 '그때 동백꽃 지고 난 후로는', 홍성원의
'가을과 CD' 박광순의 '달님' 외, 그리고 손병걸의 '낙하의 힘' 외 등이었다. 이 작품들은 나름대로의 개성과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다시
꼼꼼히 살펴보는 작업을 필요로 하였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우리는 김문택의 "억새꽃'과 '아이들의 도서관' '산방산을 오르며', 그리고 손병걸의 "하모니카' '어둠이
환하다' '낙하의 힘' '단풍나무' '겨울 모기' 등을 대상작으로 가려낼 수 있었고, 다시 심사숙고를 거듭하였다. 전자는 시적 사유와 통찰력이
깊고 표현력 또한 상당 수준에 이르러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후자는 정신력의 깊이와 형상력의 우수성이 돋보이는 풍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상작은 단 한 사람의 작품을 뽑을 수밖에 없는 것, 그래서 다시 논의 끝에 손병걸의 ?낙하의 힘? 외를 수상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슬픔을 기쁨과 힘으로, 절망을 희망과 용기로, 어둠을 빛으로 바꾸려는 치열한 정신의 격투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언어를 몰아가는 구성력의 탄력과 표현의 심도를 함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낙하의 힘>이나
<어둠이 환하다>라는 시편의 경우에 슬픔 속에서 힘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일구어내려는 치열한 정신의 격투가 그에 걸맞는 역설의
표현법으로 형상화됐다는 것은 예사로운 솜씨가 아닌 것으로 판단되었고, 그러기에 또한 앞으로의 가능성도 유의할만한 것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신인상의 경우에는 이상규의 '목욕탕에서' '풍선' 외, 김무련의 '정한수' '숨쉬는 클라리넷' 등이 최종 대상으로 남았다. 이상규의
작품들은 운명의 형식을 날카로이 꿰뚫어보는 가운데 그에 대한 극복의지가 잘 형상화돼 있다는 점에서, 김무련의 작품들은 전통서정을 익숙한 표현으로
마무리해내는 솜씨가 특징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신인상인 만큼 숙련도보다는 신선도가 더 바람직한 것으로 판단되어 이상규씨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살아생전 시와 삶에 있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던 구상 시인의 생명사랑ㆍ인간사랑ㆍ문학사랑의 높은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분의 성금으로 제정된 ‘구상ㆍ솟대문학상’이 장애우 문인들에게 지팡이가 되고 등불이 돼 줄 것을 확신하며 수상자들께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회 유안진(시인ㆍ서울대교수ㆍ심사위원장)
방귀희(작가ㆍ장애인문인협회회장)
김재홍(문학평론가ㆍ경희대국문과교수)
*제 10회 구상문학상 선정 작품
환한 어둠을 만나다
김수우/시인
형형한 눈빛. 이것이 손병걸시인에게서 읽어낸 첫 이미지였다. 시각장애인인 그에게서 반짝이는 눈빛을 느낀 건 먼저 만난 그의 시편들
때문일까. 그러나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의 영혼이 가진 맑고 강한 의지를 이해하면서, 어떤 이보다 형형한 마음의 눈빛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굳이 랭보의 견자(見者)시론이 아니더라도 시인은 세상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자다. 보이는 유한한 장면 바로 뒷면에 펼쳐진, 보이지
않는 무한의 세계. 그곳은 근원이자 본질의 세계이며, 또한 육감과 직관, 계시의 세계이다. 시인은 사물의 이면에 있는, 보이는 것 속에 무수한
겹으로 겹쳐진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삶의 진실을 끄집어낸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복과 자유, 평화와 지혜, 사랑과 만족. 그러나 그런 것들이 어디 눈에 보이는 것들인가.
결국은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 유대 비밀의 지혜서인『카발라』에서도 현실은 오감이 인지하는 1%의 세계와
오감으로 인지할 수 없는 99%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 무한함 속에서 현실을 창출해내며 새로운 꿈을 꾸는 그의 시선이 어찌
형형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시각을 잃으면서 촉각, 후각, 청각이 또 다른 시선을 끌어내는 힘을 깨달았다는 그는 스스로 이를 진정한 눈이라 믿는다.
온몸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 온몸이 하나의 눈빛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어둠은 보이는 어둠이다. 환한 어둠인 것이다. 짧은 만남에
나는 너무나도 쉽게 그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또 앞으로도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는 그냥, 젊고 잘 웃는, 매력적인 시인일
뿐이었다. 벙글었던 꽃잎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봄날, 진정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에 봄꽃이 더 화사한 하루였다.
그는 삶은 신뢰한다. 그래서 당당하고 자신이 있다. 그래서 그는 좋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걸까. 삶이 진보할수록 삶의 본질적인 지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질 것을 그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 시대 삶의 본질적인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종교가 있지만 종교는 집단적이고 맹목적이다. 그러나 시는 맹목적이 아니다.
그는 시란 결국 삶의 본질적인 지혜에 대한 관심이라 여긴다. 어떤 시대가 오더라고, 어떤 정신적 변화가 오더라도 시는 생의 지혜의
논리로 굳어갈 것으로 확신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긍정하기 어려운 육체적인 한계, 시대적으로는 21세기라는 불확정 불연속의 부조리한 현실, 그
속에서 손병걸시인은 시의 미래와 그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낙관은 어디서 올까. 시가 안 읽히는 시류 속에서도,
시는 목숨처럼 쓰여지고 사회의 가장 민감한 더듬이로 작용할 거라는 기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많은 시인들이 시집이 전혀 안 팔리는 시대에
대하여 불평하고 불안해하는 현실이 아닌가. 조급함보다는 좀더 거시적인 안목을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그의 말 속에서 나는 손시인의 삶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자신감은 인간과 모든 존재에 대한 애정, 시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이 분명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쉽게 믿어버리며 산다는 것에/ 나의 어둠이 환하다” (「어둠이 환하다」에서)
“그래 패이고 뚫리지 않고서야/ 어찌 애달픈 곡조가 흘러나오겠어/ 그래 바람 찾지 않는 계곡에/ 어찌 아름다운 노래가 있겠어 //(중략) / 아무렴 살아있으니 멈출 수는 없는 노래지” (「하모니카」에서)
“자신의 힘을 포기하며/ 또 하나의 별을 건지는/ 아름다운 승천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소」에서)
위에서 보이듯, 그의 시편들엔 삶을 포용하려는 자세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건 절망을 통과한 자만이 획득하고 부를 수 있는 노래이리라. 자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생의 시비(是非)를 뛰어넘는 것. 끊임없이 되묻고 되묻는 시적 사유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절망을 향해 희망을 틔우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고통스런 현실 가운데서도 연민을 길어올리고, 이 봄에 긍정이라는 푸른 잎을 틔우는 중이리라. 하여 그에게 시는 구도 그 자체이다. 생의 지혜를 찾아가는 시를 추구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힘이 어디에 있을까하는 질문에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자연!. 자연 그대로가 인간을 가장 아름답게 한다고 그는 자신한다. 모든 존재는 ‘그저’, ‘그냥’, ‘스스로 그러한’ 상태가 아름답다. 시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짓지 않고 기법에 매달리지 않고 그냥 그대로, 써내려갈 수 있어야 참된 감동과 힘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스러운 사색, 자연스러운 행동이 삶을 가장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에너지라고 믿는 것이다.
그의 자연주의는 자라온 환경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강원도 대관령이 고향인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슴 속에 담고 있다.
가난으로 얼룩진 유년 시절이지만 고향은 그가 시를 쓸 수 있는 서정의 원천이며, 그의 내면을 이루고 있는 세계 전부이다. 가장 펄펄한 나이인
서른에 눈을 잃어버린 그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시력을 잃은 지금, 고향은 모든 그리움을 형상화할 수 있는 시적 세계로 데려가는 기차이다. 그
힘으로 이년 동안 천 편의 습작을 통해 시의 거울을 닦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수한 고통으로 엮인, 앞으로도 조금은 버거울 세상을
그는 아름답게 이해한다.
모든 물질들은 때가 되면 떨어지고/ 떨어지는 그 힘으로 우리는 일어난다// (중략) // 보라, 떨어지는 별들의 힘으로/ 못내 구천을 떠돌던 가난한 영혼들이/ 하늘에 내어준 빈자리에 자리를 잡듯/ 그순간, 별똥에 소원을 비는 것도/ 다들 낙하의 힘을 믿고 있는 탓이다 (「낙하의 힘」에서)
그랬다. 그는 낙하의 힘을 믿는다. 낙하는 뭇 존재가 가진 자연의 현상이다. 그 낙하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 세상을 세워가는 것 또한 모든 존재의 자연현상이다. 무수한 낙하를 경험한 그는 또한 무수한 일어섬을 경험한다. 그 경험을 통해 그는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으리라. 고통과 상실은 새로운 세계를 여는 또 하나의 문이 될 수 있음을 그는 이해했던 것이다. 그의 시편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긍정의 세계는 그가 세상을 품으려는 마음의 온도를 보여준다. 그의 시편들에는 사람과 세계에 대한 따뜻한 연민으로 가득하다.
짧은 詩歷이지만 그의 시가 이루고 있는 경지는 결코 낮지 않다. 상처받고 소외당하는 것 이상으로 그는 자신을 시에게 치열하게
내던졌던 것이다. 그가 제10회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 어찌 우연이며, 행운에 그친다고 할 것인가. 그가 시를 붙들 수밖에
없었던 아픔과 그 뜨거운 시의 정신이 그에게 보상하는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문학은 삶을 보상한다고 믿는다. 거기 진정성, 곧 올곧은 열정과
성실이 있다면 말이다.
그는 시를 쓴답시면서 이상을 가장한 현실주의자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 그는 현실 속에서 이상을 직시하고자 한다. 시를 살아내는
시인이고자 하는 것이다. 투박한 시의 힘, 시의 투박한 힘을 그는 믿는다. 장애가 문학의 무기가 될 수 없음을 그는 인지하고 있었다. 시를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해야 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한 고뇌가 그의 언어와 사유를 개인적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고,
스스로에게 문학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면서 타자에게 떨림을 주는 시세계를 연 것이리라. 그가 꾸는 소박한 꿈이라면 장애인들과 제대로 된, 본격적인
문학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는 것, 이제 그는 시각적 이미지에 매달리지 않고 소리의 세계에 깊이 추구해 보는 것 등이었다.
여러
면에서 현실적인 시력을 잃어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일상이 고단하고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대신 그가 詩라는 시력을 획득했다는 건 분명
그의 생에서 손해는 아니지 않을까. 그만큼 마음의 눈빛은 누구보다 반짝이고, 그가 걸어야할 세계는 광활해졌으니 말이다. 앞으로 그가 도달할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다. - 취재 김수우 시인
출처,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