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2007 제8회 문학·선 상반기 신인 작품 공모 당선작 / 박영민 본문
2007 제8회 문학·선 상반기 신인 작품 공모 당선작
혀 깨물고 죽은 조개의 말 / 박영민
정박한 곳은 내 컴퓨터 책상 위. 비린 갯내가 어쩌다 예까지 휩쓸려왔을까. 말해봐, 어금니부터 앙다문 그녀 마음에 송곳 같은 의문 찔러놓고 다그쳤지요. 천만발 혀 가졌을지언정 모른다, 묵비권 행하는 이에게 더 조사할 것 남았다는 고문기술자처럼 그녀 아가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더니, 먼저 두 손발 들 지경으로 그녀는 끝끝내 거품만 물고 있더군요.
너희들 인간세상을 향해
보지도 열지도 않는 것은
내가 돌아가는 길 찾지 못해 출항 포기하는 일 아니라
당최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목숨 내린 것뿐이니
나의 주검에 함부로 닻 내리지 마라
나는 이 시대 포로가 아닌
진정 프로였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서: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
아르곤, 질소, 가스란 가스를 다 싣고 / 박영민
폭발하기 위해 달리는
자살특공대처럼 목숨 걸었다
저, 질주하는 1톤 트럭
언제 어디서나
싸디싸게 신속배달 준비 다 되었지만
기억해? 등 뒤에서 혼자 밀반출 되던 모멸감
네 전부인 자본의 대형 틀
한번에 날려버릴 수십 개 가스통들을
내가 나마저 배신하는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너는 쉽게 제거할 수 없는
의심만 자꾸 점검하겠지만
빵을 구워주고
초스피드 광 타이어며 엘리베이터가 되어
너를 가동 시켜주는, 그런 애정으로
확인되길 얼마나 바랬던가
단 한번 불멸을 꿈꾸는 나는
정들 세상이 없어
수백 통 위험물로 취급한지 오래다
스피커 빵빵한 트롯트 유행가 튼 채
열 받은 가스통 싣고
이 땡볕 세상,
오늘도 신바람으로 달리는 중이다
홍게 / 박영민
새벽 월미도 수산시장 한 구석
아이스박스 위 얼음덩이 사이로
널브러져 있는 홍게들
단단한 갑옷 입고 있다
살아 온 날들,
휘젓는 가위 손으로 뭉텅뭉텅 자르며
상처 같은 거품 연거푸 터트린다
비릿한 냄새며
시장 터 아우성까지
갑옷 위 새겨진 파도소리 象嵌
곧, 식탁 위 버려질
바다와 맞서온 딱딱한 외피
저 무슨 생애의 갑골문자인가
옆구리 / 박영민
한 권의 구세주를 옆구리에 끼고
제각기 새벽을 빠져나가는데
나는 팔짱 껴 부축해줄
사이비 신앙도 없이
긴 바지 밑단
주일 어둠을 싹 쓸어모으고 있는가
감람산 같은 습관의 골목집 들어서며
복종이란 첫 복음 음미해보는가
내 시작은 반잔이었지만
끝은 늘어선 빈 병들만큼이나
취해 사는 슬픔 창대하리라
신실한 불안을 제단에 바쳐보지만
나의 교주는 술이다
오늘도 터진 옆구리가 시려오는 신도는
지옥이라도 홀려 따라가리라 마셔댔지만
미로 같은 이 냉정한 골목의 아침만
너덜거리는 내 팔을
기어이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반주 없는 찬양으로 충만해지는 나는
늘 너의 주령으로
여기까지 인도되고 있는 게 아닌가
후라이꽃 / 박영민
개망초 피었습니다
달걀 익었습니다
아직 덜 핀 달걀 사이 천천히 걸어요
100% 순성 햇살방울로
톡! 몇 묶음 꽃봉오리 깨뜨려요
깊이 패인 오목가슴 후라이팬에
흰자가 노른자 테두리 두르며
둥글게만 퍼져요
그래, 다 익은 것 보다
이 정도만 익어 당신 도시락 밥 위
무릎 끓어 바쳐지고 싶은 소신공양
밥알로 뭉클하게 묻어날, 풀다만
내 노란 옷고름 열고
이제 막 반숙으로나
*어릴 적 개망초를 후라이꽃으로 불렀던 기억으로
전남 광주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7년 제 8회 문학·선 신인상 수상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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