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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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 황인철

휘수 Hwisu 2006. 6. 4. 09:25

나는 잠을 설쳤다.
옆집 사내가 술에 취해 밤마다 아내를 두들겨 팼다.
사내는 오전 7시에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어디론가 갔다가 어두운 저녁에 돌아오곤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그에 관한 전부이다.
그의 아내가 몹시 서글프게 울던 날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더이상 나비처럼 날개를 접고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담배연기만을 창밖으로 내뿜고서는 날개를 펴고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하늘만 쳐다보았다.
그는 실업자다.
지난 겨울 어느날 그는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여름이 되어서 외투만 달랑 등기속달로 부쳐왔다.
이제 그녀도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흐느낌에 여전히 잠을 설치고 있다.

 

불안으로부터 외로움은 시작한다.
우리가 미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2년 후에 컴퓨터 부품을 새것으로 바꾸어주겠다는 광고가 자주 나온다. 미래를 담보로 제시한 어음이다. 그 어음이 부도나지 않는다고 100% 보장할 수는 없는 일 ...우리의 미래는 부도날 수 있다. 2년후에 우리의 아무것도 바꾸어 줄 수 없는 불안.

불안은 사람의 시간을 병들게 한다.
그 시간에 속한 모든 타인에게도 전염된다. 짜증스럽고 자주 다투고 그러다보니 서로에게서 멀어진다. 비밀을 만들고 다 아는 일을 감추기도 하면서 외로워질 수도 있고, 그 외로움으로 인해 미래가 더욱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런 이유에서 외로움은 매우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이다.
희망의 상실, 그 근원의 부재 탓이다.
때로는 그로인해 누가 죽기도 한다.

외로운 사람은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불안한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기 바쁘다. 아무도 없는 길고 어두운 복도를 무서움을 느끼면서 걸어가 자신의 문을 조심스럽게 따고 숨어버린다. 집을 나설 때는 문이 잠겼는지 열 번도 더 확인을 한다. 그는 수없이 많은 자물쇠로 세상을 잠궈버린다. 불안이 그에게서 사라지지 않는 한 그는 영원히 외롭게 살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냉장고를 열어보아라 혹시 그곳에 당신이 잊어먹고 있던 희망이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가장 먼저 할 일은 냉장고의 희망을 검사하는 일이고 두번째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라.
내 희망은 2년 정도 유효하다고
그래서 죽지 않았다고
미안하다고...

 

출처, 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