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함기석 시모음 1 본문
1966년 충북 청주 출생
1992년 「작가세계」로 등단
1993년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8년 시집 『국어 선생은 달팽이』세계사
2002년 시집,『착란의 돌』 천년의시작
뷰티샵 낱말과일들
토마토
유기산과 비타민 A, C가 풍부해 여드름 많은 문장과 지성피부를 가진 문장에 좋다.
수박
이뇨작용을 하여 과잉된 자의식의 부기를 확실히 빼준다. 속껍질 간 것을 냉장심장에 넣었다가 팩으로 사용하면 문장에 윤기가 생긴다. 냉찜질이 필요한 시에 좋다.
레몬
산도가 높으므로 물 빛 소리를 10대 3대 1의 비율로 섞어 사용하면 좋다. 문장들은 잠자는 동안에도 피지를 분비한다. 피지를 없애려면 문장의 피부온도를 낮추어야 하는데 레몬즙이 효과만점이다.
자두
각종 과일산이 풍부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행간의 모공수축으로 인한 긴장유발 및 문장의 각질제거효과도 있다. 여백은 낱말들을 통해 문장의 피부수분밀도를 조절한다. 날씬한 시를 원하는 뚱뚱녀에게 좋다.
키위
피부미백효과에 좋은 비타민 C가 다량으로 들어 있어 시 안면부에 퍼진 기미나 주근깨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 탱탱한 볼 매끈한 코를 원한다면 스팀타월 냉타월 번갈아 3분씩.
오렌지
레몬보다 산도가 약해 몸 전체에 사용할 수 있다. 시의 엉덩이 가슴 성기 주변 등 어느 곳에나 사용 가능하다. 면역력이 약한 문장, 폐활량이 적은 문장의 코와 입 등 호흡기를 보호하는 데도 효과만점이다.
딸기
비타민 C와 젖산이 풍부해 문맥에 발랄한 봄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시 전체에 퍼진 악취제거 및 낱말들의 사유세포활성화효과도 있다. 씨는 버리지 말고 마침표로 사용하면 된다.
낯선 방문자
형사가 들어와 수갑을 채운다 당신을 살인죄로 체포하겠소 난 무죄요 도
대체 왜 이럽니까? 형사는 긴급체포영장을 내보이며 말한다 당신은 어제
밤 꿈속에서 한 여자를 살해했소 그 사체가 오늘 아침 강변에서 발견되었소
자신을 목격자라고 밝힌 한 아이가 나를 찾아왔소 저기 벤치에 앉아 있는
아이가 보이오? 저 벙어리 아이는 당신의 꿈속에서 왔다고 했소 자 경찰서
로 갑시다 가면서 살인동기나 들어봅시다 난 전혀 기억할 수 없는 꿈이오
그렇소 당신은 당신조차도 모르는 일을 저질렀던 것이오 그건 꿈이 아니었
는지도 모르는 일이오 이 피 묻은 칼과 현장사진들을 보시오 아닙니다 모두
가 조작된게 분명합니다 형사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창을 연다 도
시의 야경을 바라보며 말한다 나도 이 불결한 꿈이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
이오
애지, 2004 여름호 발표
너의 작은 숨소리가
흔든다 아주 작은 먼지 하나를
흔든다 먼지가 앉은 나비 날개를
흔든다 나비가 앉은 꽃잎을
흔든다 꽃이 잠자는 화분을
흔든다 화분이 놓인 탁자를
흔든다 바닥 아래 지하실을
흔든다 지하실 아래 대지를
흔든다 대지를 둘러싼 지구를
흔든다 지구를 둘러싼 허공을
흔든다 허공을 둘러싼 우주 전체를
제6회 박인환 문학상 수상작 작품집
산책
외롭고 고달플 때 나는 산책하지
언어를 입고
언어를 주머니에 넣고
나는 홀로 공원을 산책하지
언어는 나의 외투
언어는 나의 상처난 손이니까
공원엔 병들어 죽어가는 언어들이 있지
공원에서 언어는 울고 시들고 말라가지
언어는 새
언어는 꽃
언어는 텅 빈 벤치니까
공원에서 나는 암에 걸린 은행나무도 만나지
가난한 무지개
가출한 구름도 만나고
아파하며 울고 있는 우체통도 만나지
내가 쓸쓸히 공원을 방황할 때
우체통은 나에게 다가와
한 장의 엽서를 건네주지
엽서 속엔
하얗게 타버린 들판
하얗게 피 흘리는 하늘이 보이지
하얗게 얼어붙은 아이들이 보이고
하얗게 죽어 있는 새들의 시체도 보이지
내가 우울하게 엽서를 읽는 동안
우체통은 나의 귀에 대고 속삭이지
엽서는 너의 내면이야 시야 거울이야
외롭고 고달플 때 나는 산책하지
삶이 내 머리 위의 거대한 똥더어리로 느껴질 때
삶이 자꾸만 내 꿈을 배반하고 나를 조롱할 때
나는 쓸쓸히 공원을 산책하지
엽서를 찢어
조각조각 엽서를 찢어
내 눈물과 함께 허공에 뿌리며
나는 홀로 공원을 산책하지
즐거운 소풍
1행이 걸어간다 해바라기 꽃길 따라
2행이 걸어간다 시냇물따라
3행이 걸어간다 겅중겅중 걸어간다
4행이 걸어간다 악기들과 걸어간다
5행이 걸어간다 콧노래 부르며 걸어간다
6행이 걸어간다 발 달린 가을도 걸어간다
7행이 걸어간다 하늘을 와삭와삭 베어먹으며
8행이 걸어간다 사과나무 걸어간다
9행이 걸어간다 포도나무 걸어간다
하모니카 부는 참새
무더운 여름오후다
참새가 교무실 창가로 날아와 하모니카를 분다
유리창은 조용조용 물이 되어 흘러내리고
하모니카 속에서
아주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나온다
물고기들은 빛으로 짠 예쁜 남방을 입고
살랑살랑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교무실을 유영한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선생들 귓속으로 들어간다
선생들이 간지러워 웃는다
책상도 의자도 책들도 간질간질 웃으며
소리 없이 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선생들도 흘러내린다
처음 들어보는 이상하고 시원한 물소리에
복도들 지나던 땀에 젖은 아이들이
뒤꿈치를 들고 목을 길게 빼고 들여다본다
수학선생도 사회선생도 국사선생도 보이지 않고
교무실은 온통 수영장이다
리토피아, 2006년 가을호
하얀 새
추억은 하얀 깃털의 새
노인이 무덤에 앉아 저녁 지평선을 바라본다
노인의 눈에선 끝없이 주홍빛 노을이 흘러나오고
지평선 끝에서 하얀 깃털의 새가 날아온다
새는 가볍게 노인의 상처투성이 손등에 내려앉는다
노인은 본다. 새의 캄캄한 육체 속
흰 구름 떠가는 하늘
아래
형광등처럼 길게 누워 있는 바닷가 백사장
한 신부가 드레스를 펄럭이며 환하게 뛰어간다
하얗게 하얗게 물안개꽃을 피우며
뒤쫓아가는 청년의 웃음소리
노인은 일어나 잡풀의 무성한 무덤을 내려다본다
구더기가 기어다니는 썩은 관 속에
아내가 하얀 뼛조각으로 누워 웃고 있다
하얀 깃털의 새
날개를 퍼득이며 무덤가를 날아다니고
비석을 끌어안고 울음 우는 노인의 옆구리에선 불쑥
물에 젖은 여자의 발이 삐져나오고
노인이 걸어온 길들이 창자처럼 쏟아져나온다
고유한 방화범
밤마다 내 두개골을 싣고 밤하늘을 유영한다
나의 구두는 잠수함
밤마다 황산으로 뒤덮인 바다에 나를 내다버린다
구두는 나의 육체 나의 무덤인 언어
구두는 자신의 전생애를
구두라는 제 이름의 새장에 갇혀
병든 새처럼 고통스러워하며 상처받는다
사물의 이름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단단한 감옥
인간이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놓은 무서운 질서
무서운 폭력, 나는 밤마다
검은 복면을 쓴 방화범이 되어
그 감옥 지하실에 폭약을 설치하고 불을 지른다
내 육체 속에서 번식하는 내 아비의 우상들을 죽이고
발 아래 침묵하는 대지를 살해한다
시인은 제 피와 뼛가루가 묻은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교수대와 관을 만들어야 한다
치열하게 유희하듯 유희하듯
장미를 계속해서 장미라 불러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수백 마리 뱀들이 우글거리는 관(棺) 인 그것을
나는 간단히 시체라 부른다
이제, 장미는 빠알간 나의 시체
나는 밤마다 나의 시체에 불을 지른다
시인은 모두 방화범이 되어야 한다
썩어가는 제 언어와 정신에 불을 지르는
썩어가는 세계의 항문과 사타구니에 불을 지르는
고유한 방화범이 되어야 한다
국어선생은 달팽이, 세계사 86
편 지
현관문이 열린다
물고기 한 마리가 헤엄쳐 들어온다
등줄기가 빠알간 금붕어다
흰구름 입에 물고 내 머리 위로 지나간다
비늘에 맺힌 햇빛방울 하나가 내 눈으로 떨어진다
내 눈에서 아름다운 금잔화가 피어난다
나는 금붕어를 두 손에 받쳐들고 금붕어를 읽는다
금붕어가 자꾸만 파닥거리며 운다
그 아픈 울음소리가 손을 타고 내 가슴속으로 울려퍼진다
나는 가만히 금붕어 눈을 들여다본다
불타는 마을이 보인다
꽃과 나무들이 처참하게 타 죽은 놀이터가 보인다
내가 금붕어 몸 속의 그늘과 상처를 하나하나 읽는 동안
구름은 방안을 날아다니며 동요를 부르고
금붕어 입에선 모래알들이 걸어나온다
어린 게들이 담배를 피며 걸어나온다
나는 가만히 금붕어 입 속을 들여다본다
하얀 해변이 보인다
하얀 언덕 위에 하얀 병원이 보인다
하얀 링거병이 흔들리는 침대가 보인다
하얀 붕대를 온몸에 감고 소녀가 누워 있다
왼쪽 침대엔 실신한 바다가 누워 있고
오른쪽 침대엔 죽음이 누워 있다
나는 조용히 책상서랍을 연다
서랍 속으로 내 손등 위 푸른 핏줄 같은 강이 흐른다
강물 속 하늘에 금붕어를 넣어주고는 서랍을 닫는다
새장에서 새를 꺼낸다
새의 날개 가득 내 사랑과 소망의 시를 적는다
가슴에서 해와 달을 꺼내 새의 가슴에 넣어준다
허리에서 쏟아져나오는 밤별들을 새의 몸에 뿌려준다
창가로 간다
눈이 예쁜 금잔화 한 송이 부리에 물려주고는
힘껏 새를 창공으로 날려보낸다
현대문학 1999.2
석기함
저것이 상자인지 사체보관함인지
저것이 욕조인지 유골항아리인지
저것이 변기인지 우체통인지 난 모른다
새로 나온 고양이 전용 세탁기인지
새로 나온 신사용 거들인지 난 모른다어쨌든 누군가
난 석기함을 입는다 말하면 이것은 옷이 된다
난 석기함을 읽는다 말하면 이것은 책이 된다
난 석기함을 피운다 말하면 이것은 담배가 되고
난 석기함을 먹는다 말하면 이것은 음식이 된다
한 마리 붕어빵이 되고 맛있는 찹쌀호떡도 된다
어쨌든 누군가
난 석기함을 그린다 말하면 이것은 그림이 된다
난 석기함을 듣는다 말하면 이것은 음악이 되고
난 석기함을 기른다 말하면 이것은 애완동물이 된다
한 마리 개가 되고 고양이가 된다
당신이 석기함으로 입술을 칠하면 그것은 립스틱이 된다
당신이 석기함을 무덤에 세우면 그것은 묘비가 된다
당신이 석기함을 섹스 때 사용하면 피임기구가 되지만
당신이 석기함으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살인도구가 되고
당신이 석기함에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살인장소가 된다
석기함은 무엇인가?
당신이 거울을 통해 석기함을 만나면 그것은 당신이 되고
당신이 생의 종점에서 석기함을 만나면 그것은 죽음이 된다
과연 석기함은 무엇이고 어디 있는가?
그것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짐승인지
하나의 실체인지 유령인지 허깨비인지
하나의 혼돈인지 꿈인지 환각인지 난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석기함에게 발이 시려운 편지를 쓴다
석기함으로 맛있는 요리도 해먹고
석기함으로 맛있는 목욕도 한다
석기함에 누워 달콤한 꿈을 꾸기도 하고
석기함과 함께 놀이동산에도 간다
축구소년
소년의 주특기는 빠른 땅볼이다. 새를 기르던
소녀 앞에서 멋진 슛을 날리면 날릴수록
공은 늘 담장 위로 도망치며 소년을 배신했지만
소년의 꿈은 최고의 축구선수가 되는 거다 그래서
소년은 무엇이든 차버린다
소년은 책상을 찬다 책상은 발을 아파한다
소년은 국어책을 찬다 국어책은
교실 유리창을 깨고 겨드랑이에 떨어져 소년을 읽는다
소년은 시계를 찬다
시계는 손목에서 떨어져 소년의 내일을 아파한다
소년은 시계 속 불타오르던 지붕을 아파한다
하얗게 타들어가던 겨울 하늘을 아파한다
불기둥 사이 예쁘게 발광하던 소녀를 아파한다
소년은 구멍난 구두를 바지를 찬다 아니
바지가 구두가 소년을 차버리고 소년을 가둔다
소년은 힘껏 가난을 차버린다
가난은 골대에 정면으로 맞고 튀어나와
소년의 얼굴을 더 세게 때린다
코피를 닦으며 소년은 아빠를 차버린다
아빠는 포물선을 그리며 술병 속으로 똑 떨어진다
술병은 아빠를 아파한다 소년은 새벽마다
아빠의 늑골 사이에서 울려나오는 삽질소릴 아파한다
술병 속으로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연달아 들어가고
만취한 아빠는 비틀비틀 어두운 막장을 걸어나온다
운동장은 한 장의 낡은 지폐. 허리가 찢겨 있다
소년은 울먹이며 허공으로 제 머리를 차올린다
머리는 살짝 구름에 걸려 떨어지지 않는다
구름 뒤로 흰 부리의 새떼가 날아오르고
운동장으로 수천의 깃털들이 떨어진다.
눈내리는 겨울 저녁
머리 없는 소년이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목에 축구공을 붙이고 천막집으로 돌아가는
소년의 내부에 공의 내부보다 캄캄하게 휘어진
아빠의 금간 어깨뼈가 달그락 흔들린다
운동장만한 삽질소리가 반짝이며 날아다닌다
소녀를 닮은 3층집이 아파하며 커오른다
밤새도록 눈이 차오르는 겨울 하늘 아래
펄럭이는 지붕소릴 들으며 뒤척이는 소년
소년의 앙상한 등줄기를 밟고 캄캄한 머리 속으로
새떼들이 차례로 등불을 들고 걸어들어 간다
소년은 겨우 발가락 끝까지 환해지며 잠이 든다
앵두나무
총성이 울렸다
날개를 다친 한 마리 물새가
내 손바닥에 날아와 쓰러졌다
나팔꽃 언덕에 구덩이를 파고 새를 묻었다
내 사랑을 묻고 무너진 가슴을 묻었다
하얗게 하얗게 눈이 내렸다
봄이 되자 구덩이에서
아름다운 앵두나무가 돋아나왔다
가지마다 빠알간 구두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나는 가장 덜 익은
가장 상처가 많은 구두를 신고
쓸쓸히 언덕을 내려왔다
빈 배가 한 척 공중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앵두나무 가지 사이로 샘물이 밀려왔다
그 맑고 투명한 물에
아픈 발을 씻고 눈을 씻고
홀로 생의 검은 총구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바람이 불 때마다
활짝 핀 앵두 꽃잎들이 푸드득 푸드득
새소릴 내며 창공으로 날아올랐다
소풍가는 귀
주름진 하늘에 주름진 돌들이 박혀 있다 구름 사이로 바알간 금붕어
가 지나간다 흔들리는 수초 사이로 새들이 날아간다 빈센트가 웃는다
금붕어가 웃음소릴 물로 바위 뒤로 사라진다 햇빛이 방울방울 연못으
로 떨어진다
바람이 분다 연못이 흔들린다 연못 속에서 자꾸만 여자들이 웃음소리
가 들려온다 빈센트 빈센트가 우울해진다 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는다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바람이 분다 햇빛에 번쩍 면도칼이 빛
난다 물의 살꺼풀이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고요한 물 속 깊이 가라앉
는다 뚝 뚝 뚝 선혈이 낭자한 빈센트의 귀
빈센트가 운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빈센트가 운다 서쪽 하늘에서 빨
간 입술이 우수수 떨어진다 금붕어가 귀를 물고 구름 속으로 사라
진다 연못가엔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벤치, 죽음과 고독이 팔짱을 끼
고 나란히 앉아 있다
빈센트가 눕는다 눈물방울들이 주르르 주르르 하늘로 떨어진다 햇빛에
번쩍 피스톨이 빛나고 저 마지막 숨소리, 팔랑팔랑 날아가 앵두꽃 속
에 날개를 접는다 금붕어가 연못 위로 튀어올라 멈춘다 저 물의 감옥
저 빛 감옥을 나와 금붕어 한 마리 팔랑팔랑 허공으로 소풍을 떠난
다 허공의 눈꺼풀이 파르르 파르르 빈센트 빈센트가 영원히 잠든다
한 여자를 보았네
나는 보았네
나는 양파 속에서 잠자는 소녀를 보았네
나는 밤하늘을 떠가는 피아노를 보았네
나는 태양을 향해 헤엄쳐 오르는 돌고래 떼도 보았네
나는 얼음의 산정에 알을 낳는 히말라야 수탉들도 보았네
나는 노래하는 구두도 보았네
나는 보았네
손에 손을 잡고 춤추는 집들을 보았네
토슈즈를 신고 빙글빙글 춤추는 산들을 보았네
하얀 스카프를 휘날리며 달리는 바다도 보았네
나는 바다 위의 포도밭도 보았네
그 포도밭에서 구름을 따먹는 어린 기린들도 보았네
나는 보았네
영원히 돌 속에 갇혀 우는 새를 보았네
영원히 물 속에 떠돌며 우는 달을 보았네
나는 보았네
한 여자를 보았네
생이라는 이 거대한 사막의 한복판에서
아름답고 아름다운 한 여자를 보았네
이 모든 것을 보았다는 한 여자를 보았네
이 모든 것을 내게 말해준 한 여자를 보았네
그녀는 눈이 없었네
그녀는 입도 없었네
사람들이 모두 무섭다고 그녀를 피했지만
나는 사랑했네
몇번인가 내 품에서 앵두나무처럼 울던 여자
나의 고해소인 여자
내 눈보다도 내 입보다도 더 그녀를 사랑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