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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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문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0. 27. 14:39

1966년 전북 장수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4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마른 풀잎의 노래>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시집 <바람의 서쪽>, <산벚나무의 저녁>

 

내 복통에 문병 가다

 

그가 통증을 알려왔네
그의 문병을 갔지
그는 아프고,
그의 곁에 앉아 있었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친구가
그의 이마를 짚으며 혀를 찼네
그 친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친구는 조용히 일어나 돌아갔네
그는 앓고 있었네
아무 걱정도 없이 앓고 있었네
그를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의 친구들이었네
그와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네
통증은 그의 몫이고
불안과 걱정은 그의 몫이 아니었네
친구들은 모두 돌아갔네
그는 아프고, 그의 곁에서 바라보았네
그 또한 통증을 두고
돌아갔네
통증도 돌아갔네

 
서정리 이모

 

  이모가 전화하실 때는 곧 수화기 밖으로 뻗어나올 것 같은,  야이, 머시마야-----그 느닷없는, 경상도 사투리 넌출과 전라도 사투리 넌출이 한 밭둑을 타고 넘는다. 그만 가슴에서 지리산 줄기 하나가 꿈틀 일어서는 것이다. 뱀사골에서 오미자 덩굴을 헤치다가, 한치 앞 나뭇가지에 또아리 튼 까치독사와 딱! 눈이 마주쳐버린 그 얘기를 하실 땐, 거 참, 어떻게 살아야 이모 같은 장단이 익을까. 딸 여섯에 아들 하나인 우리 이모, 이모부 생일날 딸년들 몫으로 떡 한말 쪄놨다가 썩을 년들 한년도 코빼기 안비치면 광주리 째 야영중학교 앞에 들고 가서 나오는 놈마다 한놈씩 이눔아, 왜 그리 어깨가 처졌냐?  이거 한 덩어리 묵고 가그라, 이 세상 새끼들이 다 내 새끼마냥 짠해서 아나, 너도 한 쪼가리 묵고 가그라! 뱀사골 오미자 맛이 시고 달고 쓰고 짜고 맵고 넓은 우리 이모 성깔만할까. 집앞 수렁논, 독정골 바우밭, 동구 감자밭, 갯봇들, 그 큰 논밭 다 거두고도 펄펄 힘이 남아 남원 전주 이리 서울 딸년들, 동기간들 보따리 보따리 싸 보내고, 바쁠 때는 백년손님이고 뭣이고 줄줄이 불러들여 논밭으로 내몰고. 이모가 보내 주신 고들빼기, 취나물,  태양고추,  애호박,  팔뚝만한 우엉은 제각각 우리 이모 성깔 한가지. 어떻게 살아야 우리 이모 같이 한세상 불콰할 수 있을까,  올커니!  이모 생각만 하면 내 마음 서정리 들판 보름달밤 되는데, 내일 새벽기차로 이모 오신다는데,

 

하여간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라 어떨진 모르겠는데, 하여간
청어(靑魚)라는 물고기가 있다는데, 하여간
그게 횟감으로는 참 끝내준다는데, 하여간
그놈 성질이 하도 급한 나머지
배 위로 올라오자마자 목숨을 탁 놓아버리는 바람에
그 착 감기는 살맛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인데, 하여간
어느 코쟁이 나라의 좀 똘망똘망한 어부가
어찌하면 이걸 산 채로 도시에 가져가서 팔아먹을 수가 있을까
밤낮으로 짱돌을 굴리다가
아하, 그렇지!
그럴싸한 수를 한가지 냈다는 것인데, 하여간
큼지막한 어항을 하나 만들어설라무네
거기 바다메기를 두어 마리 풀어놓고는
청어란 놈을 잡아 올리는 족족
어항에 집어넣어서는
득달같이 도시로 내달았다는 것인데, 하여간
청어란 놈은 바다메기한테 잡아먹힐까봐
어항 속에서 뺑뺑이를 도느라고
미처 죽을 새가 없다는 것인데, 하여간
(그 어항은 얼마만 할까
서울만할까,
우리 동네 등대횟집 수족관만할까, 하여간)
잡아먹히는 놈은 잡아먹히고
헐레벌떡,
살아남은 놈은 또 살아남아서
남의 생살 깨나 밝히는 혀들을 착착 감고 도는
값비싼 횟감이 되었다는 것인데, 하여간
오늘 아침에도 나는 지은 죄도 없이
버스에서 내려 허둥지둥 택시를 갈아타고 직장으로 내빼는 것인데, 하여간


破戒


 호박을 훔쳤다. 두 덩이를 따서 한 덩이는 형근이 형네, 한 덩이는 우리가 실어왔다.
 봄에 씨뿌릴 때 한 번 보고는 그 주인을 영 본 적이 없다. 둔덕에 심은 호박 덩굴이 밭을 서른평은 덮었다. 그래서 밭 한 가운데 있는 형근이 형네와 우리 주말 농장 문턱까지 쳐들어 왔다. 우리 두럭에서 빤히 넘어다보이는 그 덤불 속에 덩그런 호박 두 덩이가 누런 엉덩이를 까고 볕을 쬐고 있었다.

 그 다음 주말 본가에 가서 어머니와 형수한테 혼났다. 왜 남의 호박을 따냐? 고추 심을 때 보고는 주인을 한번도 못 봤다니까. 명아주가 청려장(靑藜仗)을 만들어도 된다니까. 그래도 남의 걸 왜 훔치냐?
 나는 계를 어겼다.
 그런데요 부처님, 그걸 신발장 위에 올려 놨더니 덩그라니 썩 보기가 좋은데 어떡하지요? 그 자리에 다시 갖다 놓을까요? 집사람이 나중에 그걸로 호박죽을 쑨다는데. 곧 대림동으로 이사를 가신다는 1001호 할머니랑, 집사람이 아무리 인사를 해도 내외를 하는지 도무지 받지 않는다는 1003호 아저씨네 아주머니랑 나눠 먹으면 안될까요? 앞으로 다시 안 그럴게요.

공고: 고양시 화정동 은빛 마을과 찬새미 어름 국사봉갈비 지나 화정골 유황오리옆 주말농장 둔덕에 호박을 심으신 분은 연락 주세요. 사례 하겠습니다. (연락처 damsan@hananet.net)

 
산벚나무의 저녁

 

 민박 표지도 없는 외딴집. 아들은 저 아래 터널 뚫는 공사장에서 죽고, 며늘아기는 보상금을 들고 집을 나갔다 한다. 산채나물에 숭늉까지 잘 얻어먹고, 삐그덕거리는 널빤지 밑이 휑한 뒷간을 걱정하며 화장지를 가지러 간다. 삽짝 없는 돌담 한켠 산벚꽃이 환하다. 손주놈이 뽀르르 나와 마당 가운데서 엉덩이를 깐다. 득달같이 달려온 누렁이가, 땅에 떨어질세라 가래똥을 널름널름 받아 먹는다. 누렁이는 다시 산벚나무 우듬지를 향해 들린 똥꼬를 찰지게 핥는다. 손주놈이 마루로 올라서자 내게로 달려온 녀석이 앞가슴으로 뛰어오른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꼴을 까르르 웃던 손주놈이 내려와 녀석의 목덜미를 쓴다. 녀석은 꼬리를 상모같이 흔들며 긴 혓바닥으로 손주놈의 턱을 바투 핥는다. 저물어가는 골짜기 산벚꽃이 희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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