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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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모음

휘수 Hwisu 2006. 9. 29. 00:34

1959년 충북 제천 출생 

인천에서 성장
198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뿌리 깊은 별들을 위하여' 외

9편이 당선

동국대학교 국문과 졸업
시집 <삼천리호 자전거>(1988), <미미의 집>(1990),

<황천반점>(1994) 사랑을 놓치다
21세기 전망 동인

 

 어떤 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의견

 

 종이로 만든 관(棺)이 나온다지요.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죽은 친구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봐서 아는데요, 목관은 생각보다 무겁더군요. 값을 물어봐서 아는데요, 보기보다 비싸더군요. 종이로 만들면 가벼워서 좋을 것입니다. 가난한 상주들에게 좋을 것입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지질(紙質)인데요. 제발, 종이컵이나 라면용기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만들어 주세요. 태우면 곱게곱게 하늘로 오르고, 묻으면 고분고분 흙이 되게요. 물에 지면 꽃잎 같고, 바람에 날리면 눈송이 같게요. 적어도 이 '사람의 그릇'만은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게요.                                       

가는 봄

- 청산옥에서 8

 

조금 더 보고 싶은 대목인데,

화면이 바뀝니다. 아예 꺼집니다

주인의 짓입니다

객실 어디선가 툴툴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주 잠시!

조금만 더 바라보았으면 싶은 얼굴들인데,

봄꽃은 너무 빨리들 집니다

梅花년이 좀 앙탈을 부리는 듯했으나

이내 꽁무니를 보였습니다

外燈마저 나가고

결국, 꽃도 아닌 나만 남았습니다

 

함께 젖다 

 

공양간 앞 나무백일홍과,
우산도 없이 심검당 섬돌을 내려서는
여남은 명의 비구니들과,
언제 끝날꼬 중창불사
기왓장들과,
거기 쓰인 희끗한 이름들과
석재들과 그 틈에 돋아나는
이끼들과,
삐죽삐죽 이마빡을 내미는
잡풀꽃들과,

 

목숨들과
목숨도 아닌 것들과.

 

 소 
-청산옥에서 6

 

  언젠가 한번은, 놀 비낀 뚝방길에 쇠비름 따위 풀이 되겠습니다.
언제가 한번은, 그대의 작둣날에 썰리는 수수깡이 되겠습니다. 언
젠가 한번은 겨울날의 쇠죽이 되어 끓겠습니다. 언젠가 한번은, 그
대 모습 그대로의 생애를 살겠습니다.


 

 꽃 피울려고 온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에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트럭 하나 달려오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꽃 뒤에 가 숨는다. 흠짓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 가는 짐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매요, 알라 뱄지요?"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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