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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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규 시모음

휘수 Hwisu 2006. 9. 28. 00:53

1960년 충북 영동

청주대 국문과를 졸업

1989년 「한국문학」에 '꽃들에 대하여' 외 1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집,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집으로 가는 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총무국장, 열림원 기획위원,

실천문학 기획실장 등을 역임

현재 대전대, 명지대 강사로 활동

 

배밭에서

 

배의 향기는 아버지의 땀 냄새다

무엇을 뜨겁게 쏟아부었는지

입술로부터 아주 작은 희망이 부풀려진다

산등성이 비알진 밭뙈기

배나무 속으로 흐르던

짐승의 뜨거운 눈시울

가지마다 시절에 찌든 잎 비끄러매고 있다

일흔 가까운

빈 수레 같은 생이

누런 봉지 안에서

그믐달보다 더 시린

달빛을 꺼내고 있다

 

감을 매달며

 

어머니 툇마루에 걸터앉아
감 깎는다
족히 열접 넘어 보이는 감들
어머니 손끝에서 껍질 벗겨진다
나는 잘 깎인, 둥그런
감들 싸리 꼬챙이 꿰어 처마 끝에 매단다
시커먼 그을음뿐인
내 몸도 실은, 속살마저
가을볕으로 포개지는
연한 건시乾枾가 되고 싶다
헌 푸대자루에 담긴
저물대로 저문 어머니의 뼈같이
상강霜降 무렵, 허공 중에 매달리고 싶다

 

장작 패는 남자

 

장작을 패며 겨울 난다
저 잘린 굵고 흰 장딴지 나무토막
허리 꺾인 사십 중반의 생인지도 모를
나무 빠갠다
허연 살 드러나도록 잘게 부순다
도끼날에
어둑어둑
찢겨 날아간 생
장작 패며 겨울을 난다
빠개진 장작 갈피 기웃기웃 들여보면서

 

아버지의 겨울

 

밤은 깊었는데도 아버지의 방엔 불빛이 환하다

 

헐렁하게 개어진 카시미론 이불 같은
일흔의 아버지
아랫목에서 타래노끈을 짤막하게 끊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무릎 관절을 다독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놀림
칼끝처럼 예리하다

 

눈꺼풀 가늘게 열리는
아침이면
진눈깨비 치는 강을 건너
산비알 인삼밭으로 나아가리라

 

거친 바람에 삐걱이는 지주목
미치광이 춤을 추는 차광막
틈새를 비집고 뼈와 살이 되는,

 

끝내는 땅을 지키는
아버지의 무서운 일독
어둠 깊으면
그 자리
봄빛 가득 살아오려는가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주면서

 

 밤마다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준다. 나는 오늘 밤에도 또 헐벗은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준다. 날씨가 급격히 추워지면서 겨울나무 밑둥엔 살기가 감돌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처럼 부질없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밤마다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준다. 나는 이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주면서 내 하는 작업이 더없이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가혹하게 겨울나무 밑둥에 물 주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하리라. 밤마다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주는 나와 그 작업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하는 나에 대하여, 또 사람들은 말하리라. 밤마다 겨울나무 밑둥에 물을 주는 나와 그 작업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하는 나에 대하여, 무언가 소리 없는 비정한 분노의 싹이 곧 움틀 것이라고

 

날망집 감나무

 

날망집에는 늙은 감나무 한 그루 있다

 

새들이 내려앉을
삭은 나뭇가지 하나 달고 있지 않는,
하늘과 땅 사이
오직 마른 외마디 기둥으로 서 있다

 

아침이면 새들이 우짖는
탱자나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텃밭을 일구다가
저녁이면 어둔 그림자만 이끌고
집으로 들어서는 노인

 

어느새 그 나무 내 속에 들어와 있는가
탱자나무 울타리 떼지어 사는 새들
날망집 감나무 비껴
또 다른 허공으로 날아간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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