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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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You Can Count On Me

휘수 Hwisu 2006. 3. 1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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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캔 카운트 온 미 (You Can Count on Me))


화해하고 엇갈리고 또한 사랑하고 상처받는...


 

 

이렇다할 스타도 등장하지 않는 저예산 영화면서도 극적인 반전이나 과격한 스타일이나 거창한 주제로 그 조악한 조건을 커버하려 하지도 않고, 아무런 과장 없이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오랜만에 재회한 남매의 일상을 묘사하는데 그치는데도 보고 나서 오랫동안 쉽게 잊혀지지 않을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는 영화가 여기에 있습니다. 도대체 무야심, 무개성(어쩌면 의도?)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이 소박하기 짝이 없는 소품이 우리의 시선과 마음을 이토록 사로잡는 이유는 바로 '진정성의 힘'일 겁니다.

 

영화는 부모님의 교통사고 소식을 통보받는 남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곤 곧장 20년이 흘러있습니다. 누나는 동네 은행에 다니면서 8살짜리 아들을 홀로 꿋꿋하게 키우는 엄마가 되어있고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던 동생의 방문을 기다리며 들떠 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동생은 임신한 여자친구 문제로 돈을 꿔달라 하고 그동안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도 털어놓습니다. 물론 실망이 컸지만 누나는 동생이 좀 더 머물기를 원하고 동생은 그러기로 합니다.

 

‘바른생활’ 모범생인 누나와는 달리 늘 제멋대로이고 파격적인 동생은 자신의 방식대로 조카를 데리고 내기당구를 치고 술집에 가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삼촌노릇을 해보려합니다. 누나는 질색이지만 아이는 단조로운 삶에서 벗어나 금기의 자유를 만끽하는게 신날뿐입니다. 생부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조카의 소망을 들어주려는 시도는 그러나 아이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기고 누나는 더 이상 동생의 분방함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보냅니다.

 

브로드웨이 연극계의 빼어난 연출가이면서 <에널라이즈 디스>를 비롯한 몇몇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케네스 로너갠은 첫 영화 연출작인 <유 캔 카운트 온 미>의 각본과 감독을 맡으면서 일상생활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정교하고 짜임새 있는 대사와 확고한 캐릭터 구축과 내러티브의 밋밋함을 효과적으로 구출해주는 소박한 유머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제 2의 우디앨런’이라는 열광적인 찬사를 이끌어냅니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그 유명한 마틴 스코세지입니다)

 

영화에서 감독은 뚱한 얼굴로 이 남매의 인생 상담을 수행하는 사제로 등장하는데요, 어수룩하고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고 또 어쩔 수 없이 지적인 느낌이 드는 그의 얼굴이 주는 이미지는 바로 이 영화의 분위기와 일치하지요. 감독은 상투적인 슬픔이나 작위적인 심각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사건과 진실한 대화만으로도 서로 화해하고 엇갈리고 또한 사랑하고 상처받는 그 불가해한 가족관계에 대한 애처러운 만화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우리가 심신이 지치고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르고 기대고 싶은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소홀하게 되고 가슴 깊은 한켠에 밀어둘 수밖에 없는 상처와 아픔의 이름이 바로 가족이라고 그는 말하고 싶은 걸까요.

 

이 영화에서 우리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어린 시절 불의의 사고로 고아가 된 남매가 남달리 서로를 의지한 채 살아왔으면서도 너무나 다른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으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해서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겁니다. 나날의 질서와 위대한 인습의 신봉자인 누나는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사고나 치는 자기 파괴적인 동생이 미덥지 못하고 못마땅합니다. 그러나 안정을 희구하는 누나도 오랫동안 열망해왔던 남자친구의 청혼 앞에서 쭈뼛거리다가 쫒아버리고는 늘 티격태격 싸워대던 직장 상사와 전격적이고 충동적인 불륜을 저지릅니다.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막상 사랑이 다가오면 자신이 누릴 몫이 아닌 양 내치고 마는 이 남매의 똑같은 모습은 어린 시절 겪어내야 했던 그 트라우마(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 때문일까요. 그들은 지속적인 관계를 당최 견디지 못해합니다. 우연한 과거의 사건이 인간의 운명에 건널 수 없는 강을 흐르게 하는 것일까요. 꼭 그렇게 인과론적인 설명으로 한 인간의 행동양태나 심리를 분석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마지막 장면. 사랑하는 동생을 다시 떠나보내야하는 누나는 참았던 울음을 웁니다. 동생은 머잖아 다시 볼 수 있으리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누나를 위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요. 그렇게 반복해서 강조하는게 실은 다시 못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라는 걸.


그러나 감독은 삶을 가슴으로 알고 있는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리얼리티와 낙관적인 에너지로 떠나는 자나 남는 자를 다 따스한 시선으로 감싸 안으며 가족이란 건 세상 모두가 버려도 끝까지 날 지지해 줄 수 있으리라 믿는 내 편이며, 다른 삶과 세상을 향해 불쑥불쑥 비어져 나오는 역마살을 잠재워 현재의 삶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질긴 인연의 끈이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남매가 서로를 바라보는 그 애틋한 눈빛은 그들이 비록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삶에 몹시 지쳤을 때 기댈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서로를 영원히 소중하게 간직하리라고 믿게 만드네요.


덧붙여서


1. 이 영화는 2000년 선댄스 영화제의 그랑프리와 각본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미국내의 온갖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던 21세기 초엽의 대발견이었습니다.

 

2. 이 남매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은 기대할 수 있는 최상의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동생역의 마크 루팔로는 ‘제2의 말론 브란도’로 불리우기도 하는 브로드웨이 연극판을 사로잡은 명배우라지요. 어눌한 말투, 삶을 체념한 듯이 삐뚫어진 삶의 궤도를 일부러인 듯이 선택해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 이면에는 떠돌이 방랑인생의 고독한 그림자가 온통 짙게 뿜어져 나오지요. 그는 그해 몬트리올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거머쥡니다. <라이드 위드 데블>과 <라스트 캐슬>에서도 그의 모습을 즐길 수 있는데요, 언제나 비슷한 모습입니다. 해서 원래 그 자신의 실제모습도 그렇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3. 아무 기대 없이 선택한 영화가 뜻밖에 너무 괜찮을 때는 예기치 않은 보석을 얻은 느낌이죠. 이 보석의 옥의 티라면 가끔 공중마이크가 눈에 띈다는 것. 하지만 그 정도는 이 영화의 숱한 미덕으로 충분히, 기꺼이 용서해줄 수 있답니다.

 

 




출처 : 숨어 있기 좋은 방
글쓴이 : tango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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