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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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을 가르쳐 준 여동생 / 김승옥

휘수 Hwisu 2006. 1. 5. 18:45
 

사랑을 가르쳐 준 여동생 / 김승옥 내게는 동생 둘이 있다. 둘 다 남자인데사실은 지금 살아 있는 그 둘 밑으로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그 애는 네 살 때 죽었다. 그 애가 죽을 때 내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혜경이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마자 태어난, 말하자면 유복자였다. 그 애가 태어날 때는 여순 사건이 진압되고 있을 무렵인데 우리는 순천의 우리집에서 광양이라는 곳에 있는 친척집으로 피난을 가 있었다. 그 친척집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 친척집은 딸부잣집인데 비록 남의 아이이긴 하지만 어머니께서 아들을 낳기를 바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딸이 나오니까 퍽 섭섭해하였지만 우리 식구는 무척 기뻐하였다. 아들만 셋이니까 이번엔 딸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도 이번엔 딸이 나오기를 기대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나 그 딸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만일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아무개라 부르고 딸을 낳으면 혜경이라고 부르라는 당부는 잊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아이를 혜경이라고 부르게 됐다. 마당 위로 총알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가고 여기저기서 총살이 행해지고 있는 판국에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난 그 아이를 우리 식구들은 유난히 예뻐했다. 특히 나는 그 애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 애를 사랑했다. 내가 그 애를 거의 독차지하여 업고 다녔다. 그 애의 오줌똥도 내가 걸레로 닦아내곤 하였다. 그 애는 걸음마도 하게 되었고 말도 하게 되었다. 그 애가 젖을 떼던 날을 잊지 못하겠다. 그 무렵 우리 집안의 식량 사정은 형편없어서 어머니의 가슴에서는 젖이 잘 나오지 않았다. 잘 나오지 않는 젖을 그 애가 빨아대니까 어머니의 젖꼭지는 헐어버릴 지경이어서 어머니는 그 애가 젖을 달라고 다가오면 무서움조차 느낄 정도였던 모양이다. 마침 젖을 떼도 괜찮을 때가 되었으므로 어머니는 뒤꼍에 자라고 있는 풀의 줄기를 꺾어서 그 꺾인 부분에서 나온 뜨물 같은 즙액을 젖꼭지에 발랐다. 그 즙액은 아주 쓴 맛을 내기 때문에 혜경이는 입을 엄마의 젖꼭지에 대자마자 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어댔다. 결국 이젠 엄마의 젖을 얻어먹을 수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애는 신경질을 내며 울어댔다. 그 애의 안타까움이 나에게도 그대로 전해져서 나도 같이 울었다. 그 애는 밥 먹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 애가 죽을 때까지 먹은 것은 어른들도 먹기 싫어하는 깡보리밥이다. 6.25 가 날 무렵엔 우리는 여수에서 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바느질 품삯 일을 하여 우리는 살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하시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그 애를 항상 밖에 데리가 나가 놀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땅에 발을 대는 것을 그 애는 어떻게나 싫어하는지 나는 구슬치기를 할 때도 그 애를 업고 있어야 했다. 이제 겨우 말을 배우고 있는 아이가 마루를 오르내리 때 혹시라도 땅에 맨발이 닿으면 걸레에 발바닥을 한참 동안이나 문질러대고 있곤 했다. 6.25 때 우리는 남해라는 섬으로 피난을 갔다. 거기서 우리는 배급받은 감자가루를 끓여먹고 살았다. 그 애가 죽은 것은 6.25도 끝나서 다시 여수로 나왔다가 거기서 순천으로 옮긴 후였는데 경기가 나서-나는 '경기'라는 병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지금도 모른다. 아마 열이 심했을 때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것인 듯하다고만 생각한다- 죽었다. 그 애가 죽던 날 밤을 잊지 못하겠다. 그 때 어머니는 그 지방 사람들이 '아랫녘'이라고 부르는 꽤 먼 해안 지방으로 무명과 바꿔오기 위해서 감을 몇 광주리 가지고 가시고 집에 안 계셨다. 혜경이는 죽던 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울고 있었다. 우리들은 으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는 것이려니만 생각하고, "엄마 곧 온다."고만 달랬다. 사실 그 다음 날 어머니는 돌아오시기로 돼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면서부터 그 애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울어댔다. 그 때 집에는 두메산골에서만 평생을 살아오신 할머니와 나와 동생들밖에 없었다. 너무 그 애가 울어대니까 할머니는 신경질이 나셨던지 밖으로 내쫓아버리라고 하셨다. 나는 그 애를 업고 캄캄한 밖으로 나와서 둥개둥개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말로 그 애를 달래기도 하였지만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밤이 되면서부터 우는 울음소리는 마치 신음소리 같았다. 밤이 깊었을 때 그 애는 까무라쳤다. 그제야 할머니는 그 애가 병이 든 거라는 걸 깨달으셨던지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시더니 한참만에 어떤 노파를 데리고 왔다. 노파는 혜경이가 경기가 난 거라고 하면서 마늘과 바늘을 가져오게 하더니 바늘로 혜경이의 손가락 끝을 콕콕 찔러 피를 내고 마늘로 혜경의 뒤통수를 비벼대는 것이었다. 그 애는 그럴 때마다 파드득파드득 경련했다. 나는 엉엉 울었다. 새벽 3시경에 그 애는 죽었다. 나는 할머니와 그 노파에게 달려들었다. 내가 진실로 누구를 사랑해 본 것은 그 애뿐이었다. 지금은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그 애를 생각하기만 하면 눈물이 난다. 그 애는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나에게 일깨워 준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내게 권유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 애가 나에게 가르쳐 준 사랑,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즉 내게는 사랑이란 연민을 뜻하는 것이다.

 
출처 : 블로그 > 거울 | 글쓴이 : 거울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