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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업힌 날 / 고정욱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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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업힌 날 / 고정욱(소설가.아동문학가)
어머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날 업고 1학년 15반에 들어섰을 때,
학생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있던 담임선생님과 학생들은
모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우, 우리 아들이 몸이 불편해서......"
숨 가쁜 어머니의 말에 당황한 선생님은 나를 황급히 맨앞자리에 앉게 했다.
-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장애로 인해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어야만 했다.
지금은 사라진 질병, 소아마비.
- 그 바이러스가 내 몸을 공격한 것은 돌 무렵이었다.
- 걷진 못해도 제법 다리에 힘을 줄 수 있던 내가 어느 날 열병을 심하게 앓았다.
- 다음날 아침, 어머니가 내 몸통을 잡고 세워보니 발에 힘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 황급히 달려간 병원에서는 급성회백수염,
- 소위 어린이들이 잘 걸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소아마비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으로 어머니는 나를 업고 전국 방방곡곡,
-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녔다.
- 몸에 좋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구해 먹이며
- 어머니는 내 몸을 고쳐보려 애썼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 결국 그때부터 나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다.
- 혼자 힘으로 서지도 못하고,
-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해 까딱하면 사람 구실 못할 위기에 빠진 장애인,
-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주위에서는 그런 나를 갖다 버리라고 했단다.
- 먹고살기가 그만치 어렵던 시절,
- 나 같은 장애아는 외국으로 입양을 가거나
- 수용시설에 팽개쳐져 짐승처럼 사는 경우가 많았다.
- 어머니는 자식을 내다버릴 거면 차라리 같이 죽겠다는 각오로 나를 키웠다.
- 그것이 아슬아슬하게 넘긴 나의 첫 번째 위기였다.
두 번째 위기는 학교를 입학할 때 왔다.
- 혼자서는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내가 학교를 다닌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 가정 형편이 좋은 집은 나 같은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학교에 입학시켰다.
- 일반학교에서 철없는 아이들로부터 놀림과 차별,
- 따돌림의 대상이 되는 것을 부모들이 못 견디기 때문이다.
- 그러나 우리집은 그럴 정도로 부유하지 않았다.
- 결국 나의 선택은 일반학교를 다니느냐 마느냐였다.
-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을 매일 업어서 다니겠노라고 결심하셨고,
- 나는 동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 그 뒤 어머니는 아침에 업어서 학교에 데려다놓은 뒤 학교가 파할 무렵,
- 학교에 와서 날 업고 집에 왔다.
- 그러다 고학년이 되어 도시락을 싸가게 되자
- 나에게 찬밥을 먹일 수 없다며 직접 밥을 해서 점심 때 한 번 더 오셨다.
하루에 세 번을 아들을 위해 걸음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다른 아이들이 찬 도시락을 먹느라 목이 메는 것을 보고는
다음날부터 커다란 주전자에 보리차를 끓여 들고 오셨다.
- 아이들의 양은 도시락 뚜껑에 어머니는 일일이 보리차를 따라주었다.
- 오로지 장애가 있는 아들이 아이들과 잘 어울리며 공부하고
- 커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집에서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을 했다.
- 다행히 중학교부터는 내가 발목을 짚고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 그건 오래도록 이어진 피나는 훈련의 결과였다.
- 마침내 어머니의 무거운 짐인 내가 스스로 어머니의 등에서 내려온 거였다.
- 중학교에서는 1층에 교실을 배정받아 별 어려움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날 입학식을 마치자,
- 모든 학생에게 배정받은 반으로 들어가 담임선생님의 지시를 따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 운동장은 순식간에 비워졌다.
- 규율이 바짝 든 신입생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각자의 반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 내 손에 쥐어진 배정표는 1학년 15반, 4층 꼭대기 교실이었다.
어머니는 이미 덩치가 커진 나에게 아무 망설임 없이 등을 댔다.
- 어머니의 등에 업힌 나는 손으로 목발 드는 일밖에 할 게 없었다.
- 이미 조용해진 교사 계단을 어머니는 한 칸씩 힘겹게 올라갔다.
- 울컥 내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 '왜 하필 나는 장애인이 되어서 이렇게 어머니를 고생시키나.'
- '이런 고통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나.'
- 대상을 알지 못할 분노가 내 어린 뇌리에 가득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당신의 벗어버릴 수 없는 숙명처럼
- 나를 업고 2층, 3층, 4층을 차례로 올랐다.
- 어머니의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 그저 주어지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어렴풋한 각오였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종례가 끝나자 다가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 교실에서 공부하는 건 무리네요.
- 내일은 아래층 교실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다음날 나는 1학년 3반으로 배정이 바뀌었다.
- 2층에 있는 반이었다.
나 대신 한 아이가 15반으로 가방을 싸서 올라갔다.
- 그 후 나는 계단 오르는 법을 익혀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를 다녔다.
- 그 덕에 내 손바닥은 목발을 짚느라 온통 굳은 살이 박였지만
- 어머니의 등에 다시 업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기만 했다.
흔히 사람들은 불편한 턱과 계단 앞에서
- 장애인을 업어주거나 들고 나는 것이 가장 간단한,
- 그러면서 인간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한 해결책이라 생각한다.
-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 적절한 편의시설만 갖춰진다면 장애인 대부분은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장애인이 원하는 바다.
- 남의 도움을 매일 받으며
- "미안하다" "고맙다"를 입에 달고 다니며 살고 싶은 사람은
-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나는 독립적인 장애인으로,
- 남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내 가족을 부양하는 자유로운 한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다.
- 이것은 모두 강인함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 나에게 보여준 어머니의 희생과 노력 덕분이다.
아, 빠뜨린 게 있다. 나는 그런 어머니 덕에 초.중.고 12년 내내 개근
상을 받았다.
-어머니, 내 안에 당신이 있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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