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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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1. 7. 00:47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

1915년 전북 고창군 부안면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壁)>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전주 전시연합대학 강사 겸 전주고등학교 교사, 예술원 회원,

문학분과위원장, 동국대 명예교수, 한국문인협회장,

범세계한국예술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

2000년 12월 24일 별세

저서로는 1941년 첫 시집 <화사집> 을 시작으로

시집 <귀촉도> <서정주 시선>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서으로 가는 달처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노래> <팔할이 바람> <산시> <늙은 떠돌이의 시> 등

 

무등(無等)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襤褸)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山)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午後)의 때가 오거든,
내외(內外)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현대 공론>, 1954.8

 

춘향(春香)의 말·1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벼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시집 <서정주 시선>, 1956

 

화사(花蛇)

 

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시인부락> 2호, 1936.12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시집「동천」1968년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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