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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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우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1. 6. 12:03

1951년 대전 출생

1967년 중학 졸업을 최종학력으로 학업을 끝냈으며,

그 뒤 공장과 공사장에서 일을 하였다. 보일러 설치공으로 생업을 삼았으며,

1988년 수몰된 고향으로 이주하여 버섯막사를 짓고,

버섯 재배와 보일러 설치공을 병행하였다.

1991년 첫 시집「저 석양」을 펴냈으며, 보일러 설치공에서 운전공으로 전환하였다.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두 번째 시집「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세 번째 시집「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가 있다.

  

화염경배

 

보일러 새벽 가동 중 화염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처럼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부전자전

 

 일찍이 성욕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시도 때도 없

이 쳐들고 올라와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꼬집어 죽여줘

야 했다

 

 나이 쉰 되며 비로소 피가 맑아졌다 속으로 휴우, 한

숨 쉬며 안도한다 이젠 여자를 무심히 볼 수 있게된 거

다 그런데

 

 열두살 된 아이, 제 고추가  너무 자주 빳빳해져 고민

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짓던 밤, 나는 꼼짝없이 한 방 꽝

맞아버렸다

 

 아내는 십년농사 헛농사라며 방바닥을 친다  신부님

되라고, 눈 비 뚫고 업고 걸려 읍내 성당에 다녔는데 그

래서야 어떻게 그 먼 길 가겠느냐며

 

 그러더니 어느새 깔깔대며 부전자전, 하고 외치는 것

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


 이 주머니칼은 국경을 넘어왔다 나는 금 천 원의 주머니칼을 몇 번 펴고 접으며 낮은 추녀 끝 연통이 흰 연기 퐁퐁 내뿜는 낯선 거리로 넘어갔다 말채찍마냥 쌩쌩한 북서풍 안고 무악재 너머 개성 평양 신의주 지나 바다 같은 강 건너 연탄난로 벌겋게 단 작업장까지 갔다 창백한 형광등 아래 프레스는 풍풍딱 연마기는 쌩쌩 숫돌카터 연달아 샛노란 산화철꽃 피워올리는 거기, 누군가 싸구려 주머니칼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게 꼭 자기라는 듯 마스크로 반쯤 가린 완강한 얼굴들 사이에 잠깐 머물렀다 나는 이이들이 꾸는 꿈을 안다 낯선 이방의 말로 꿈꾸더라도 안다 나도 아주 오래 모국어로 같은 꿈을 꾸어냈기 때문이다 깊은 숨 내뿜듯 산화철 묵직한 휘장 쳐들고 나오자 문득 일구칠공년대 대림산업 양식기 공장이 있던 대전 성남동이다 성문 밖 텅 빈 지붕에 땅에 북서풍에 실려온 눈 지금 무차별로 쌓인다 나는 그 위에 발자국 도장 찍어본다 메이드 인 차이나

 

가뭄


멧비둘기 밤꿀냄새 진동하는 숲 쪽으로 날아간다
두 갈퀴발 왕개구리 꽉 움켜쥐고 날개 펄럭펄럭
가라앉다 솟구치다 안간힘 써 날아간다
감자밭머리 먼지 풀석대며 괭이질하던 사내
꽥꽥대는 왕개구리와 눈 딱 마주쳐
괜히 딴 데 둘러볼 만큼 가까이 날아간다

 

멧비둘기 악착같이 가야하는 저 숲 어디쯤
이제 막 껍질 깨고 나온 어린 새기 두엇 있겠다 

 

빵집

                       
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
큰 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
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
우리 집 빵 사가세요
아빠 엄마 웃게요, 라고 쓰여진 걸
붉은 신호등에 멈춰 선 버스 속에서 읽었다 그래서
그 빵집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과
집 걱정하는 아이가 함께 있는 걸 알았다

 

나는 자세를 반듯이 고쳐 앉았다
못 만나봤지만, 삐뚤빼뚤하지만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아이를 떠올리며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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