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배선옥 시모음 본문
1997년 시문학 등단
인천 문인협회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시문학회 회원
시집, 회떠 주는 여자(시문학사 2004)
회떠 주는 여자
바다와 사람들
그 사이에 여자는 있다
날마다 횟감을 흥정하는 소란 속에
선승처럼 고즈넉이 앉아
오늘도 칼질을 한다
손을 뻗으면 무엇이든 집을 수 있는
반경 오십센티의 작업장
파랗게 날을 세운 칼을 집으면
이제 보이는 것은 모두
無
쓸데없는 감상은 손만 다치게 한다
한순간 명줄을 끊어주는 것도 자비
배를 가르고
미처 소화되지 못한 세상을 흩어내
깊숙이 묻힌 진심을 들어내면
곧 또하나의 역작이
접시에 담겨지리니
빈 집
추적이는 빗속으로
짐이랄 것도 없는
몇 개의 짐보따리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것을
이제는 혼자 남겨진 집이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참 오랜 세월이었을런지도 모르겠다
나잇살을 먹은 허리가 치수를 늘리듯
그 사이 집에도
방이 한 개 두 개 늘어나
제법 식솔을 거느린 가장의 테가 났었는데
빈 집이 또 한 채 늘었다.
사거리에서
보고싶어요 라고
수첩 한 켠에 흘겨 썼다가
펜으로 덧칠해 지워버려
구멍이 날 듯 나달나달해진
마음 속으로
낯선 눈빛 하나 자꾸만 발을 디민다
팔짱을 여미며 밀어내지만
검불처럼 쉽사리 떨궈지지도 않는
내가 끝없이 당신에게 몰입해 갈 때
어쩜 그도 나와 똑같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서로 비껴가는 시선에
마음이 아리다가도
여기는 비보호 좌회전 건널목
나는 당신을 향해
직진만 할 수 있는데
내 앞길을 막으며 들어서겠다는 그를
이번엔 피할 수 없을 것같아
차라리 눈을 꼭 감아버리면
어쩌지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꽃잎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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