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마경덕시모음 본문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5년 시집 <신발論 > 문학의전당
울음주머니
1
지붕에서 쥐가 운다. 덩어리로 뭉친 울음이 끅끅 목에 걸린
다. 간밤에 취객이 토해놓은 밥알을 밥주머니에 잔뜩 처넣은
날개 달린 쥐. 허기진 주둥이로 제 그림자를 쪼아 먹는다. 뭉기
적 뭉기적 처마 끝으로 걸어가 잘린 발목을 들여다보고, 멀거
니 황사 낀 하늘을 바라보고, 생각난 듯 토해놓은 울음을 다시
집어먹는다. 오래 전 시궁쥐로 변한 비둘기 한 마리. 한 홉의
영혼에서 슬픔이 샌다.
2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아귀, 옥탑방 노망난 할망구가 고함을
지른다. 퍽퍽 주먹으로 가슴을 친다. 평생 많은 눈물을 흘린 짜
디짠 소금주머니, 쪼글쪼글 들러붙은 울음주머니가 끅끅, 마른
눈물을 흘린다. 뻣뻣하게 쇠어버린 슬픔이 몸 밖으로 빠지지
않는다.
바께뜨
먹음직한 빵이었네, 자고 나면 가슴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네, 열다섯 되던 해
늦은 밤길에서 엄마는 말했지
"니 나이 때는 기름져서 바라만 봐도 군침이 돌지."
골목에서 휘파람을 불어대던 사내들, 모두
식성이 좋았네, 그 중 배고픈 사내 하나
통째로 나를 집어 삼켰네
나 한때 뜯어먹고 싶은
갓구운 빵이었네
물컹한 크림이 들어있는
예쁜 빵을 셋 낳고,
김 빠진 딱딱한 빵
씹을수록 구수한 때는 지나갔네
부딪히면 퍽퍽 소리가 나네
멀뚱멀뚱 쳐다보네
언제부턴가 덤덤한 빵을
나이프로 쓱쓱 썰고 있네
잼과 버터를 듬뿍 얹은
마른 빵끼리 투덜대네
대체 왜? 왜 이리 맛없어?
칙, 칙, 압력솥
추가 움직인다. 소리가 뜨겁다
달리는 기차처럼 숨이 가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더는 참을 수 없는 듯,
추를 마구 흔든다. 지금 당장 말리지 않으면
머리를 들이받고 자폭할 기세다
저 맹렬한 힘은 무엇인가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신음이 고여 있는가
슬픔이 몸을 찢고 나온다
집 한 채를 끌고 소리가 달린다
밤기차를 타고 야반도주하는 여자처럼
속이 탄다. 부글부글
골목이 고양이를
키운다
막다른 집에서 시작된 골목이 동네를 돌아다녀요. 막다른 집에서 걸어 나와 구불구불 기어간 골목의 등이 보여요. 집과 집 사이로
용케 피해 다니며 골목은 종일 고양이와 놀아요. 지붕에서 옥상으로 아찔한 난간으로 휙휙 고양이를 던지며 하루를 보내요. 즐거워라,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 골목끼리 고양이를 주고받으며 놀아요.
또 던지려나 봐요. 수채 구멍에 쥐새끼를 풀고 수백 톤의 어둠을 골목에 부려요. 냉장고 음식을 봉투에 싸서 집 앞에 내놓아요.
봉투를 찢고 악취를 끄집어내고 죽은 쥐를 뒤꼍에 던져요. 불안한 눈 의심 많은 귀를 못된 고양이 얼굴에 달고 있어요. 벽을 디밀고 "뛰어 넘어!
골목을 벗어나면 죽을 줄 알아!" 으름장도 쳐요. 막다른 집 골목이 벽을 타고 올라가요. 다시 골목이 시작돼요. 휘익, 고양이가
날아와요.
가방, 혹은 여자
그녀는 무엇이든 가방에 넣는 버릇이 있다. 도장 찍힌 이혼
서류, 금간 거울, 부릅뜬 남자의 눈알, 뒤축 닳은
신발. 십 년
전에 가출한 아들마저 꼬깃꼬깃 가방에 구겨 넣는다. 언젠가
는 시어머니가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와 해거름까지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녀의 취미는 접시 던지기, 지난 봄, 던지기에 열
중한 나머지 벽을 향해 몸을 날린 적도
있었다. 틈만 나면 잔
소리를 향해, 바람난 남자의 뻔뻔한 면상을 향해 신나게 접시
를 날린다. 쨍그랑 와장창!
그녀의 일과는 깨진 접시 주워 담기. 뻑뻑한 지퍼를 열고 방
금 깨뜨린 접시를 가방에 담는다. 맨손으로
접시조각을 밀어
넣는 그녀는 허술한 쓰레기봉투를 믿지 않는다. 적금통장도
자식도 불안하다. 오직 가방만
믿는다. 오만가지 잡다한 생각
으로 터질 듯 빵빵한 가방, 열리지 않는 저 여자.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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