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김영남 시모음 1 본문
1957년 전남 장흥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 예술대학원 졸업
199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정동진역> 당선
시집 <정동진역> <모슬포 사랑> <푸른 밤의 여로>
소설가 이청준, 화가 김선두와 함께 고향을 소재로
한 시, 소설 화집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
중앙대학교 기획조정실에 근무
앵두가 뒹굴면
잎 뒤 숨어있는 사연들
일러바칠 곳 없는 동네
우물 가 집 뒤란의 누나 방에
굴러다니는 피임약이여, 그걸
영양제로 주워 먹고 건강한 오늘날이여!
언덕에 복송꽃 피니
수남 아재는 염소 끌고
경자 누나는 바구니 흔들고
완이 당숙은 남도 창 한 가락을 뽑고
좋겠네 들길은
모두 일 나간 집 대문
우체부 아저씬 기웃거려도 되겠네
탱자나무 울타리 가에 서서 나도
색연필 한주먹 쥐고 상상하겠네
언덕 위 저 화려한 포옹
포옹이 불러내다 숨기는 것들을
개처럼 하루도 어슬렁어슬렁 거리겠네.
실천문학 (2007 봄호)
가을 파로호
저 호수, 호주머니가 없다
호주머니 없으니 불편하다
뭔가 넣어 맡겨둘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덜너덜한 생각도 거두고 싶은데
심플 젠틀 모던 이런 단어들이 지나간다
내가, 호주머니 되어보기로 한다
호주머니가 되어 호수의 거추장스런 손들을
모두 한번 거두어주기로 한다
갑자기 호수가 사라진다
거기에 나는 맡겨본다
윤동주 시구 하나
노자의 역성(易性)
장자의 제물론(齊物論)
내게 누가 쪽배를 띄운다.
신생 (2007 봄호)
저 고천암호 가창오리떼 가창오리떼
날아오르는 저 가창오리떼는 욕망이다.
일시에 일어났다가 일시에 가라앉는다, 마치 성욕처럼. 가창오리의 군무란 그런 욕망의 발기이며, 이동이며, 사라짐이다. 일어날 땐 장엄하고 화려하지만 수그러질 땐 한없이 초라하고 허망하다. 거기에서 욕망이라는 이 추상명사도 철새떼라는 자못 구체적인 이름을 갖는다. 어두운 갈대숲에 보이지 않게 깃들어야 하며, 모르는 사람이 다가오면 깜짝 놀라야 한다. 놀라지 않으려면 자세를 더 깊이 낮추고 어두운 숲에 형체를 은밀히 숨겨야 한다, 성욕보다 더 고상한 현상으로.
숨겨진 욕망, 욕망이 너무 은밀히 숨겨져 있으면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런 욕망에 총질하는 자들도 생기게 된다. 노출이 심해 위험하다 싶으면 욕망도 급히 부풀어 올라 이동을 시작해야 하고 다른 욕망과 섞이면서 더 크게 또는 더 작게 군무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남의 눈에 더 잘 적응해보려는 또 다른 욕망이다. 그러다가 낯선 욕망과 너무 자주 섞이다보면 욕망도 병이 된다. 병은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아 일시에 떼죽음을 부른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도 욕망은 순수하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래, 품위 있는 욕망이란 해질 무렵 눈 내리는 풍경을 수놓는 저 가창오리의 군무이다. 나의 소망이다. 그 군무 아래에서 나는 사람들을 만나 위로하고 그리워한다. 그리고 누굴 도와야겠다고 오래오래 다짐해 본다, 여기 해남의 고천암호 철새 도래지에서.
신생 (2007 봄호)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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