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권주열 시모음 본문
바닷가 이발소
이발하러 바닷가에 갔다. 포구 부근 그 이발소 없어지고, 날랜 가위 같은 갈매기 떼, 싹둑싹둑 구름을 자른다. 파도는 여전히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다. 의자도 없이 방파제에 앉은, 혹은 서성이던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해안 쪽으로 날리고 있다. 그는 제자리에서 꽤 오랫동안 간판을 내걸었다. 그는 성실했다. 단발머리의 해안부터 가리마 곱게 탄 수평선까지, 하지만 그가 깎아대는 것은 바다뿐 아니다. 칠 벗겨진 하늘 유리창 너머 맨대가리의 보름달도 보인다. 그 보름달 부근 기계충 같은 별에도 가끔 바리캉 들이대지만, 평생 제 머리 못 깎는 저 출렁이는 장발.
파도가 있는 우리 동네
요즘 시내에 가면 많은 가게문들이 자동이다. 자동이라? 스스로 열리고 스스로 닫히다니, 그것은 참 오래 전에 우리 동네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파도는 자동이다. 우르르 몰려 와 스르르 밀려가는 자동문이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 바다를 열고 닫는다. 그 자동문 안에서 해삼을, 물고기를, 배를, 수도 없이 들고 나오는 사이에도 시내 백화점 그 문처럼 자주 -고장중- 이거나 우리 동네 전력을 더 축내지도 않는, 그 자동 배터리는 지금쯤 동네 산 어귀에 둥그렇게 걸려 있다.
시집 <바다를 팝니다> 중에서
사과
바로 아파트 단지 앞 건널목에서 사과장수는 즉사했다. 그것도 횡단보도에서 사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오다가, 사람들은 신호 무시한 트럭이 죽일 놈이라 했지만, 아니다. 단연코 사과다. 사과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가끔 사괄 사 먹었다. 얼기설기 짠 베니아판 궤짝 위에 매직으로 삐뚜름하게 써놓은 ‘꿀 사과’라는 이름과 달리 쪼글쪼글 볼품없어 뵈던, 행색이 초란한 그와 닮은, 생의 높이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저
사과 때문이다. 그가 치워지고, 리어카가 치워지고, 교통순경이 가고, 저만치 튕겨 데굴데굴 구르다가만 사과마저 치워지면 사람들의
식탁 위에
사과는 다시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어쩌면
사과는 단 한 번도 나무에 매달린 적 없다.
그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졌다.
시향 (2006년 여름호 재수록)
1963년 울산에서 출생
솟대문학에 추천
<울산문학 신인상>과 솟대문학」이 제정한 제7회 솟대문학상 본상 수상
현재 수요시 포럼 동인으로 있으며 울산 북구 바닷가에서 약국을 운영
시집 <바다를 팝니다> 2003년 솟대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