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휘수 시모음 2 본문
『휘수 시모음 2
휘수시집 <구름 북소리> 중에서
2018년 9월 19일 출간』
사내와 구두
- 고흐의 구두
허공에서 몸을 떨며 빗금으로 치우치는
균형이 맞지 않아 위태롭게
무슨, 생각 많아 저기 허물어진다
사계절이 모두 가을인,
사내와 사내의 구두
수평을 원했으나 뒤통수까지 책임지기엔
버거웠나, 한쪽으로 모여있는
밥그릇 다섯의 무게
더러 시커먼 흙이 안주를 권하는
막소주 집 쥔장처럼 찰지게 붙어있고
마음과 달리 거절해야 하는데
사람을 거절하는 것 같아 애틋하여
콩콩, 구두를 구르기도 하는
사내 뒤에도 한때 푸른 배경이 있어
출렁거렸을 파도
계절마다 푸르렀을 나무
맑은술 위에 어른거릴 만도 한데
계산이 끝나면 야무지게 변하는 쥔장은
밥그릇 다섯의 가장임을 일깨우듯
등을 두드리고
묵직해진 몸과 무겁게 닳은 구두가
한 몸이 되어
쓸쓸한 건지 쓸쓸하지 않은 건지
갸웃, 뒤뚱거리며 간다
뼛속까지 물든 가을 속으로
보푸라기
조금씩 몸을 세우던 그들은
어디쯤에서 고개 숙이고 있을까
귀퉁이가 바스러지며 열망은 흩어지고
수첩 위에 눌러쓴 힘센 결의는
첫 글자부터 뭉개지고 있었다
일어나라, 열망이여 결의여
오래 흔들린 망설임이
여기, 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면
낯선 냄새의 바람이 분다
어깨 위로 떨어지는 비듬 같은 나날
누구의 흰 손가락이 쓰다듬을까
내 손가락은 손수건처럼 접혀 있을 텐데
동그란 귓바퀴엔 어떤 노래가
낮은 속삭임으로 머물까
내 입술은 쓴 물약을 삼킨 듯
열리지 않을 텐데
한 발자국 더 물러서면
무심하게 붉어진 노을 뒤로
이름 모를 기차역이 세워진다
어느 날은 찢어진 허무를 담고
어느 날은 무거운 일기장을 담은
허공이 기차를 기다린다
어쩌면 기차가 오지 않기를 기다린다
아이의 귀가를 재촉하는 이웃의 소리가
창을 타고 넘어오는 저녁,
오늘의 기차역에는
지치지 않는 안개가 차오르고
입술을 뜯는 손가락이 오래 머뭇거린다
말하자면, 가을
가을이 왔다는 건 20도 안팎 온도에 맞는 코트의 깃을 올리고 그리움보다 세 걸음 앞서 걷는 것이다 세 걸음 뒤에는 그리움이 따라오고 그 뒤에는 하체가 튼튼한 걱정과 시름이 따라오지만 가만가만 걸어보는 것이다
가을이 갔다는 건 10도 안팎 온도에 맞는 코트의 모자를 쓰고 먼저 달려가는 걱정과 시름 뒤를 따르는 숨 가쁜 그리움을 모른 척하는 것이다 다시 그리워하지 못한다 해도 미련 없다는 듯 씩씩하게 앞지르는 것이다
가을이란
정갈한 은행나무같이
빛나던 한때를 버려 더욱 애틋한
오래된 희망에게
따뜻한 안부를 묻는 것
말하자면, 가을이란
알게 모르게 그윽해지는
삶의 눈동자를 닮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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