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2007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당선작 / 김현욱 본문
보이저氏 / 김현욱
1.
보이저* 氏의 돌잔치는 지구 밖에서 열렸다
보름달 위에 차린 돌상을 받아
홀로 돌잡이를 하였는데
웬일인지 보이저氏는 아무 것도 집지 않았다
돌상 너머 파랗게 빛나던 구슬은 이미 멀리 있다는 걸
보이저氏는 운명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주의 품속으로 무작정
엉금엉금 기어 들어가기 시작한 건
그 때부터였다
2.
보이저氏는 이제 서른이다
서른 해 동안 한 일이라곤 고작
두리번두리번 걸어간 것뿐이다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 보이저氏를 외우며 지나갔다
사춘기와 입시의 블랙홀을 간신히 건넜으나
무한진공의 우주 어디에도
제 몸 하나 붙박아 둘 중력의 직장은 보이지 않았다
우울증이라는 소행성과 부딪칠 뻔 했을 때
보이저氏는 비로소 깨달았다
우주에 취직했다는 걸
죽을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걸
이태백이니 삼팔선이니 이상기후의 지구에서도
용케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대범하게 아이까지 낳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보이저氏는 애오라지 걸어가기만 했다
내 직장은 우주다 내 일은 나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해도 보이저氏는
조금씩 잊혀져 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지구에서 유행하던 주문을 되뇌이며
무소의 뿔처럼 성큼성큼 나아가기만 했다
아직도 보이저氏는
우주 어딘가를 뚜벅뚜벅 걷고 있다
너무 멀리 가버려서
이제는 아무도 보이저氏를 놀릴 수도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걸
보이저氏 조차 모른 채 우주 밖의 지구를 향해
시원(始原)의 자궁을 향해
뚜벅 뚜벅
* NASA에서 1977년 발사한 무인우주탐사선.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고 있다.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
김현욱 시인
경북 포항 출생
대구교대 졸업
‘2007년 해양문학상’ 동시부문에 당선
‘포항문학’과 ‘푸른시’ 회원
시 본심을 맡았던 김언희 시인은 시 당선작에 대해 “무엇보다 우리 시에 차고 넘치는 시적 포즈나 제스처가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우리 시도 이제 ‘뚜벅뚜벅, 성큼성큼’ 걸을 때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을 선별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은 자신의 시 세계를 일괄할 만한 안목을 갖추었다는 말이다”고 평가.
‘진주신문 가을문예’는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에서 기금을 출연해 1995년부터 시·소설에 걸쳐 운영해 오고 있다. 2000년 <1995~1999년 가을문예 수상작품집>을 펴냈으며, 2002년 소설 부문에 당선한 김언수씨가 지난해 11월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는 등 진주신문 가을문예 수상자들이 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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