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현대시작품상 추천작품 본문

OUT/詩모음

현대시작품상 추천작품

휘수 Hwisu 2006. 8. 6. 00:43

소금창고 / 강해림


-소래포구에서


 폐염전 소금창고 한쪽 구석에 디지털 피아노 한 대가 버려져 있다
 다리가 없다 나무판자 사이로 바람 숭숭 드나들 때마다 삭아 헐거워
 진 건반이 입 꾹 다문 채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저 불구의 몸으로
버려진

 

 모닥불 타다 만 흔적인 듯 검게 그은 장작개비와, 바람막이로 쳐놓았다 찢어져 떨어졌을 비닐 쪼가리와 페트병,
 지푸라기가 함부로 나뒹굴고 있다 그러나 소금창고는 유적처럼 쓸
쓸히 남아 광물성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저 오래 버려진

 

 갯벌처럼 드러낸 가슴들끼리 소로의 상처 핥아주며 온기 나누었을
것이다 오지 않는 협궤열차를 기다리며, 바람이 귀신 울음소리를 내며 윙윙대는 밤이면 너무 외롭고 막막해져서 서둘러 한 몸이 되어 엉켜버리기도 했을,
 달빛커튼아래

 

저 오래 잊혀진 세월이 빈 소금부대 같아서
또 어떤 늙은 염부가
지겹고도 지겨운 수차를 돌리는지 쓰디 쓰려서
사는 게
참 치욕 같아서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가장 낮은 음계를 밟고
겨우겨우 소리나는
몸, 폐허


-『현대시』 7월호

  현대시 8월호 수록


강해림 시인
한양대학교 국문과 수료.
1991년 ≪민족과문학≫, ≪현대시≫로 등단.
대구일보 시 당선. 시집 『구름 사원』『환한 폐가』

 

외갓집 가는 길에 폐선이 있다 / 고석종

 

내가 보기에 세상의 모든 폐선들은
지 몸 어디엔가 안락의 베개를 베고 누워 있다.
끊임없이 방부제가 새어 나오고
뱃속엔 오갈 데 없는 물들이, 우울증 환자처럼
명한 시간 속에 놓여 있다.
즐겁지 않은가?
폐선 같은 몸으로 외갓집에 들르면
형사 조카가 왔다며
유자꽃 같은 웃음으로 반겨주시던 외삼촌,
이제 언덕을 넘어가시려는 걸까,
덜거덕거리는 틀니 속에 안락의 베개가 보인다.
애달픈 나는 숨 가쁜 생의 닻줄을 부여잡고
퍼내도, 퍼내도 쉼 없이 솟는 눈물을
외삼촌 손등에 쏟아 붇는다.
외삼촌은 손으로 낡은 폐선을 가리킨다.
나는 장독대 아래
오종종 피어 있는 봉숭아꽃으로 눈을 돌린다.
마른 고구마 순처럼
곧 부서질 것 같은 외삼촌의 손끝이
내게 머물렀기 때문이다.
다 닳은 빗자루처럼
허우대만 멀쩡한 말단 형사인 나는
폐선이다, 그러므로
내 몸 어디에가 안락의 베개가 있을 것이다.
생의 막장에서부터 밀려오는 통증.
나는 왜 이 기쁨을 즐기지 않고
세파에 떠내려가지 않으려
입에다 진통제를 한 주먹씩 털어 넣고
긴 목을 빼내어 썰물 같은 신트림을 하는가


- 『시인의 눈』 ,2006년 
 

썩을 놈 / 복효근

 

푸르른 이파리가 말라비틀어지고
탱탱하던 실뿌리들 부석부석 말라 떨어지고 나서야
양파의 대가리는 완성되거니
그래, 다 자란 양파는 대가리가 있다
붉은 모기장 주머니에서
여차하면 썩으려 드는, 썩어버리는 대가리 속
메추리알만큼 남은 자궁이 얼마나 깊기에
부화하듯 푸른 싹 한 줄기 솟는다
썩은 밑둥에선 악착같은 실 뿌리가 돋는다
한 생이 끝났다 싶으면
제 수족과 제 대가리100퍼센트 다 썩혀서
제 생을 다른 생에 건네주는
눈부신 금빛 고리
부활이 있다면 저 자세 저 빛깔이겠다
혼신이 썩어서 내는 그 향기는 그래서 눈물이 솟도록 매운 것인가
이쯤에선, 죽는다는 말이
썩는다는 말이 순교처럼 아름답다
뇌의 3펴센트 밖에 쓰지 뭇하고 죽는다는 내 대가리는
양파는 하였느냐
서로 물래 생을 희롱하다 무덤 가까이 와 버린
내 수족과 대가리는 양파만큼 진화했다더냐
천상 나 또한 썩을 놈이어서
쪼글쪼글 사위어가는 저 양파는
분명 이 생에 대한 한 질문이거나 답이겠거니
어느 날은 저 비밀한 교의에 귀의하고 싶다

 

- 『시인세계 』여름호


   복효근 시인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
   1995년「편운문학상」신인상 수상.
   1997년 시와시학「젊은 시인상」수상.
    시집『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1993년)
  『버마재비 사랑』(1996년)

  『새에 대한 반성문』(2000년)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2002년)
  『목련꽃 브라자』(2005년)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OUT >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경주 시모음  (0) 2006.08.10
박판식 시모음  (0) 2006.08.07
황상순 시모음  (0) 2006.08.05
[스크랩] 2006년 현대시학 신인작품공모 당선작  (0) 2006.08.04
박이화 시모음 1  (0) 2006.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