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하재청 시모음 / 2004년 시와 사상 하반기 등단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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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청 시모음 / 2004년 시와 사상 하반기 등단작

휘수 Hwisu 2006. 5. 21. 01:28

 

유폐된 바다

감포 앞바다 지척에 두고
길을 잃어버린 바다 속 대게
설익은 까만 눈 두리번거리며
다리를 꼼지락거릴 때마다
푸른 바다가 신기루로 활짝 웃는다
투명 유리벽 너머 바다로 가는 길
껌벅대는 눈 속에 떠 있고
투명 유리 속 다리
벌써 유폐된 고통 잊어버린 채
텅 빈 하늘 건너는 꿈을 꾸고 있다
수족관 물결 따라 파란 이끼가 출렁인다
감포 바다 떠나 바다를 헤매는 대게
출렁이는 수평선 끝을 바라보며 뒤척이자
흩어진 유품처럼 둥둥 떠도는
새로 치장된 분비물,
바다의 끝은 유리 속에 잠자고
뒤엉킨 폐선의 꿈이 꿈틀거린다
단단한 각질 위로 일어서는 문신들
산소 주입구에서 수시로 주입되는
푸른 기억을 더듬는 것인가
뽀글뽀글 솟아오르는 하늘사다리에 매달려
유리벽을 타고 눈앞에 성큼 다가선
감포 바다를 잡아당긴다

감포 바다와 수족관 사이에
실타래처럼 뒤엉킨 꿈들이 흔들리며
하얀 수증기로 솟아 하늘무덤을 건너고 있다

Dios, 빙하시대

냉동실에 고기 한 토막
오래 방치되어
동공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나는 언 고기토막처럼 일그러진다
냉동된 기억의 문을 열어
애인의 가슴을 뚫어 굴뚝을 하나 낸다
가슴 한가운데 톱밥난로를 지펴
붉은 불꽃을 피운다

가슴에 구멍 하나 뚫어
톱밥을 툭툭 던져 넣고
하늘을 힐끔거리다 굴뚝으로
사라지는 나,
굴뚝은 늘 하늘 속으로 박혀 있지
피 흘리며 사라지지

냉장고 문을 열면 애인은
탱탱하게 몸을 당겨 튀어 올라
밥상으로 사라진다

냉동실 하얀 수초 사이에서
핏자국도 말라버린
고기 한 토막

바늘귀에 꽂힌 남자

오래된 그림자를 두고 나왔다
옷감에서 솟아오르는 하얀 입김,
세월의 바람이 아내의 등을 할퀸다
가파른 저 길목에서
깃털을 비비적거리며
모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비둘기 부부
굽은 목덜미 사이로 눈이 내리고
곪은 백열등 아래 식어 가는 밤
하얀 눈이 드문드문 날린다
눈발이 잦아진 삼천포 거리에
깃털 모양의 발자국을 찍으며
두터운 코트를 걸친다
골목으로 사라지는 등 굽은 그림자
아내는 바늘귀에 지친 나를 꽂는다
실과 바늘처럼 걸어간다
저 하얀 눈발 속으로
저 하얀 그림자 속으로

탈진 하루

상대동 산1번지 고층아파트 1503호
거실바닥에는 나른한 웃음이 흐르고
늙은 페인트공 허리에 줄을 감고
지붕 도색을 하고 있다
빨간 페인트를 칠하면서
텅 빈 하늘, 팽팽한 줄을 잡고
지붕 끝 모서리에 매달려
거실의 웃음소리를 꿰매고 있다
텅 빈 사각의 모퉁이에서
살아온 날보다 무겁게 점점
사선으로 기울어지는 몸,
비탈진 하루의 중심을 잡고
직립으로 서서 자꾸만 기울어진다
하늘에선 낮은 구름이
루핑 날리던 신나는 기억 더듬으며
빙긋이 웃는다 그 순간 늙은 페인트공
허리를 삐걱거리며 흔들린다
늘 미끄러지기만 했던 발바닥이
기울어지는 허리를 일으킨다

쓰레기 하치장으로 실려간
루핑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토요일 오후가 비스듬히 일어선다

달, 우물, 수세식 변기통


내가 빼 던진 눈알이
하늘에 매달렸네

하늘로 가는 징검다리가
집집마다 뻥 뚫려 웃고 있네

차 오른 변기통 물 속에서
어제 거꾸로 몸을 던진
옆집 남자가 웃고 있네

하늘로 가는 징검다리는
허공에 떠 있기 위해
가벼워지고
잠시
가벼워진 군살을 위해
부서지며 차오르는 달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건지려 긴 밧줄을 내린다
어, 낚시줄에 걸려 올라오는
두레박 안에서 웃는
아버지의 얼굴

달은 아버지의 얼굴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