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조정권 시모음 본문
1949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영어교육과
197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문창과 석좌대우교수
밑 생각 2
당신이 쥐고 있는 이 갈필은 비바람의 자식이었습니다 일찍이
밀과 바람과 하늘과 태양이 휘어 넘기며 기른 자식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품어 온 아주 평범한 생각이지만 이 마른 갈필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하루 종일 수고해도 가난하기만한 探果 바구니를 이고
돌아와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그분이 먼저 입 대시도록 빵과 포도주
와 이삭 문 촛대 앞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문 밖에 서서 들어오
지 않는 비바람의 자식을 기다리는 일이 시쓰는 일이라고 30년을 믿
어 왔습니다 헌데 이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나
와 같이 시인들은 집을 나간 자식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쓰면 쓸수
록 허공에 묻히거나 못자국만 내는 모든 시들은 어머니에게로 돌아
가지 못하는 탕자의 탄식이라는 것을.
2007 시평 봄호
이 시는 2002년 시안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시를 개작한 것임
근성
배추를 뽑아 보면서 안쓰럽게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뿌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여지껏 뿌리들이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뽑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배추들이 제각기
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
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배추는 뽑히더라도 뿌리는 악착스러울이만큼 흙의 혈(血)을 물고 나온다.
부러지거나 끊어진 배추 뿌리에 묻어 있는 피
이놈들은 어둠 속에서도 흙의 육(肉)을 물어뜯고 있었나 보다
이놈들은 흙 속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독하게 제 하반신을 잘라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도 뽑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 있다
흙의 육을 이빨로 물어뜯은 채
알고 웃고 만 일
웃고 있는 일도 힘들 때가 있다
이마를 눌러도 껄걸 웃고 볼과 주름살을 간질여도 껄
껄 웃는 하회 영감탈을 볼 때다
시가 길다고 반만 실은 잡지를 '공간' 시낭송회에 들고와
성찬경 시인은 껄껄 웃고 있다
대大문예지에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나도 겪은 적 있다
굴지의 언론재벌에서 내는 주간지가 재수록하면서
87행 되는 시 허리 부분 47행을 몽땅 잘라버린 일
양파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여자가
모임에 나오곤 했었지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비단을 걸치고도 추워하는 조그마한 중국여자 같았지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그 여자의 남편도
모임에 가끔 나오곤 했었지
남자도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나온 배가 더 튀어나온 똥똥한 중국남자 같았지
그 두 사람 물에서 건지던 날
옷 벗기느라 한참 걸렸다네
내천(內川)에 앉아
시간이 아무 데나 던져놓은 방석에 앉아
물의 송장을 내려다본다
미끼를 하도 물어 아가미가 헐어 있는 물
막대기 하나 올라온다
그 막대기가 두르고 있던 사탕맛
불어터진 물의 송장들은 저 밑을 휘젓고 몰려다니며 사나보다
빨아먹고 물어뜯으며 서로 찢어발기며 손톱 기르며
시집, 떠도는 몸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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