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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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권 시모음

휘수 Hwisu 2007. 6. 7. 08:01

1949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영어교육과
1970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비를 바라보는 일곱 가지 마음의 형태』 『시편』 『허심송』
『하늘이불』 『산정묘지』 『신성한 숲』
녹원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경희사이버대학 미디어문창과 석좌대우교수

 

밑 생각 2

 

당신이 쥐고 있는 이 갈필은 비바람의 자식이었습니다 일찍이

밀과 바람과 하늘과 태양이 휘어 넘기며 기른 자식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품어 온 아주 평범한 생각이지만 이 마른 갈필로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하루 종일 수고해도 가난하기만한 探果 바구니를 이고

돌아와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그분이 먼저 입 대시도록 빵과 포도주

와 이삭 문 촛대 앞에서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문 밖에 서서 들어오

지 않는 비바람의 자식을 기다리는 일이 시쓰는 일이라고 30년을 믿

어 왔습니다 헌데 이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세상에 나올 때부터 나

와 같이 시인들은 집을 나간 자식들이었고 남편이었으며 쓰면 쓸수

록 허공에 묻히거나 못자국만 내는 모든 시들은 어머니에게로 돌아

가지 못하는 탕자의 탄식이라는 것을.


2007 시평 봄호
이 시는 2002년 시안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시를 개작한 것임

 

  근성


    배추를 뽑아 보면서 안쓰럽게 버티다가
    뽑혀져 나온 뿌리들을 살펴보면서
    나는 여지껏 뿌리들이 흙 속에서 악착스럽게 힘을 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뿌리는 결국 제 몸통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배추를 뽑아 보면서 이렇게 많은 배추들이 제각기
    제 뿌리를 데리고 나옴을 볼 때
    뿌리들이 모두 떠난 흙의 숙연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배추는 뽑히더라도 뿌리는 악착스러울이만큼 흙의 혈(血)을 물고 나온다.
    부러지거나 끊어진 배추 뿌리에 묻어 있는 피
    이놈들은 어둠 속에서도 흙의 육(肉)을 물어뜯고 있었나 보다
    이놈들은 흙 속에서 버티다가 버티다가
    독하게 제 하반신을 잘라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뽑혀지는 것은 절대로 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뽑혀지더라도 흙 속에는 아직도 뽑혀지지 않은
    그 무엇이 악착스럽게 붙어 있다
    흙의 육을 이빨로 물어뜯은 채
    
알고 웃고 만 일 
  

   웃고 있는 일도 힘들 때가 있다

   이마를 눌러도 껄걸 웃고 볼과 주름살을 간질여도 껄

 껄 웃는 하회 영감탈을 볼 때다

 

   시가 길다고 반만 실은 잡지를 '공간' 시낭송회에 들고와

   성찬경 시인은 껄껄 웃고 있다

   대大문예지에서 이럴 수가 있느냐고

 

   나도 겪은 적 있다

   굴지의 언론재벌에서 내는 주간지가 재수록하면서

   87행 되는 시 허리 부분 47행을 몽땅 잘라버린 일


 양파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여자가
모임에 나오곤 했었지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비단을 걸치고도 추워하는 조그마한 중국여자 같았지

 

옷을 잔뜩 껴입고 사는 그 여자의 남편도
모임에 가끔 나오곤 했었지
남자도 어찌나 많은 옷을 껴입고 사는지
나온 배가 더 튀어나온 똥똥한 중국남자 같았지
그 두 사람 물에서 건지던 날
옷 벗기느라 한참 걸렸다네


내천(內川)에 앉아

 

시간이 아무 데나 던져놓은 방석에 앉아

물의 송장을 내려다본다

미끼를 하도 물어 아가미가 헐어 있는 물

막대기 하나 올라온다

그 막대기가 두르고 있던 사탕맛

불어터진 물의 송장들은 저 밑을 휘젓고 몰려다니며 사나보다

빨아먹고 물어뜯으며 서로 찢어발기며 손톱 기르며

 

시집, 떠도는 몸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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