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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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시모음

휘수 Hwisu 2007. 6. 6. 00:06
 

경북 경산 출생
1991년 월간 문학 등단
'포엠토피아' 편집주간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문학 수첩,2004)

           
붕어빵을 굽는 동네

 

달아오른 철판 위에서 붕어들이
몸부림칠 때쯤 귀가길의 남편들
산란의 따끈한 꿈을 한 봉투
가슴에 품어 안는다


아파트 창의 충혈된 불빛이
물풀로 일렁이고
아내들의 둥근 어항 속으로 세차게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밤의 한가운데를 직진하는 숨소리


파도소리, 비명소리, 도시는,
한여름 서해바다처럼 질척거린다


한바탕 아내들의 뜨거운 빵틀 속에서
남편들은 모두
잘 익은 붕어가 되어 또 한 번
꿈결로 숨결로 돌아눕고


붕어빵 같은 아이들의 따스한 숨소리가
높다랗게 벽지 위에 걸린다
기념사진처럼


벚꽃 핀다

 
가, 랑, 비,

비의 가랑이 사이로

꽃을 싼다

벚나무 검은 가지가

와르르

단숨에 나를 건너시는가 네

발자국에 묻어나는

젖은 화근내


시집, 절정을 복사하다(문학수첩)


술 받으러 가는 봄


물병아리 한 마리가
딱,
반 되짜리 주전자 뚜껑만한 고것이
겁없이 봄강을 끌고 가네
꼬리물살이
풍경화 속 원근법 같기도 하고
후라쉬 비추고 가는 외로운 밤길 같기도 한데
고 뚜껑이 잠시 물속으로 잠수라도 해버리면
강은
덩치 큰 아이처럼 철없이 길을 쏟아버리고 마는데
반 되가
턱없이 말술이 되기도 한다는 걸,
오래된 풍경화 속 원, 근, 어디쯤에
후라쉬 불빛 가까이 들이대고 보면 거기
쭈그러진 아버지 반되짜리 주전자
꽥꽥 혼자서 울고 있다네
술 받으러 가는 아이처럼 물병아리
달그락 달그락
추억 쪽으로 너무 멀리 가지 말거라
봄은 겉 늙어버린 덩치만 큰 아이 같으니

 

<애지> 2007년 여름호 

 

절정을 복사하다 
 
예술의 전당에서 이만 원 주고
클림트의 키쓰 복사본을 사 왔다
트윈 침대 만한 북쪽 한 벽에
햇솜 같은 할로겐 불빛을 짙게 깔고
그들을 눕혔다 이건 아니다
너무 진부했다
매양 여자가 아래에 깔리는 체위
뒤집어 여자를 위로 올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못 생긴 여자가
여성 상위에 대해 침을 튀기고 있다
못생길 수록 위로 올라가고 싶어한다고
이 시각부터 그렇게들 생각한다면
고즈넉이 남자의 입술을 먹고 있는
이 여자는 너무 아름답다
다시 일으켜 세웠다
불빛이 주르르 발 아래로 흘러내린다
나는 체위에 관해서는
그들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 입맞춤이 끝나고 그들은 눕던가
헤어져 돌아가던가 할 것이다
한국 영화처럼
끝까지 다 말해 버리지 말자 하지만
이 숨막히는 정적
한순간만은 다시 복사해
내 가장 숨막히는 시간 속에
걸어두고 싶다

 
시집, 절정을 복사하다

 

소리의 그늘 속으로

 

중이
죽은 대추나무 방망이 두들기는 소리와
딱따구리가
오동나무 쪼아내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지난 봄 한철이 쩡쩡했다는데
중이 목탁 치는 일이나
딱따구리가 나무에 구멍 파는 일이나
다 제 본업일 터
그러고 보면
중이나 딱따구리나
생업에 충실했던 노동의 한마당이었겠다
절집의 곳간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울엄니처럼
가슴 한복판에 뻥! 구멍을 안고도
주렁주렁
오동나무의 자식농사는
올해도 대풍이니
큰소리 지나간 자리에 깃들 큰 고요는
또 얼마나 깊을까
슬그머니 가을귀를 미리 당겨
소리의 그늘 속으로 미리 한발을
밀어넣네

 

       쓸쓸한 중심
 
        꽃은
        그 나무의 중심이던가
        필듯말듯
        양달개비꽃이
        꽃다운 소녀의 그것 같아
        꼭 그 중심 같아
        中心에서 나는 얼마나 멀리 흘러와 있는가
        꿈마저 시린
        변두리 잠을 깨어보니
        밤 사이 몇 겁의 세월이 피었다 졌는지
        어젯밤 그 소녀 이제는 늙어
        아무 것의 한 복판도 되지 못하는
        내 중심 쓸쓸히 거기에
        시들어
        
반말론

     
말을 섞는다는 건
혀를 섞는다는 말
말을,
반으로 잘라 서로의 몸에 바꾸어
삽입한다는 말
그래서 몸을 섞고 나면 남과 여는
서로
반말을 한다는데
반만 말해도 된다는데
싸래기 눈이
싸래기밥 먹고 지저귀는 빈 입처럼
시끄러운 겨울날
싸그락싸그락
싸래기 눈이 내 혓바닥을
긁어대는 날에는 나도
누군가와 말을 트고 싶다
혓바닥 반을 낚시 바늘처럼 꼬부려
싸그락 싸그락
벌거벗은 반말 하나 건져 올리고 싶다
심야전기가 노릇노릇
내 정사의 등짝을 구워줄
불타는 대낮의 심야 속에서


현대시학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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