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이성선 시모음 본문
강원도 고성 출생 (1941)
고려대 농학과 및 교육대학원 졸업 (1967)
문화비평에 시 시인의 병풍 외 4편으로 등단 (1982)
22회 한국시인협회상 수상 (1990)
6회 정지용 문학상 수상 (1994)
1회 시와 시학상 수상 (1996)
시집,
나의 나무가 너의 나무에게 (1985)
하늘문을 두드리며 (1987)
별이 비치는 지붕 (1987)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2000)
산사 (2003)
노을 무덤
아내여 내가 죽거던
흙으로 덮지는 말아 달라
언덕 위 풀잎에 뉘여
붉게 타는 저녁놀이나 내려
이불처럼 나를 덮어다오
그리고 가끔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보게 하라
여기 쓸모없는 일에 매달린
시대와는 상관없는 사람
흙으로 묻을 가치가 없어
피 묻은 놀이나 한 장 내려
덮어 두었노라고
살아서 좋아하던 풀잎과 함께 누워
죽어서도 별이나 바라보라고
바람 속에서
산에게 가는 길이
나에게 가는 길이다.
바다로 가는 길이
나에게 가는 길이다.
나무에게 가는 길이
별에게 가는 길이
나에게 가는 길이다.
나의 길에 바람이 분다.
바람은 늘 산에 있고
바람은 늘 바다에 가득하고
바람은 나무 끝에 먼저 와
그 곳에 서 있다.
나의 길은 바람 속에 있다.
잎새 끝에는 언제나
새벽 별이 차갑게 떨고
바람은 길에서 나를 울렸다.
별의 아픔
내가 지금 아픈 것은
어느 별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밤늦게 괴로운 것은
지상의 어느 풀잎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토록 외로운 것은
이 땅의 누가 또 고독으로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하늘의 외로운 별과 나무와
이 땅의 가난한 시인과 고독한 한 사람이
이 밤에 보이지 않은 끈으로나
서로 통화하여 앓고 지새는
병으로 아름다운 시간이여.
빈산이 젖고 있다
등잔 앞에서
하늘의 목소리를 듣는다.
누가 하늘까지
아픈 지상의 일을 시로 옮겨
새벽 눈동자를 젖게 하는가
너무나 무거운 허공
산과 신이 눈뜨는 밤
핏물처럼 젖물처럼
내 육신을 적시며 뿌려지는
별의 무리
죽음의 눈동자보다 골짜기 깊나
한 강물이 내려눕고
흔들리는 등잔 뒤에
빈 산이 젖고 있다.
큰 노래
큰 산이 큰 영혼을 가른다.
우주 속에
대붕(大鵬)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설악산 나무
너는 밤마다 별 속에 떠 있다.
산정(山頂)을 바라보며
몸이 바위처럼 부드럽게 열리어
동서로 드리운 구름 가지가
바람을 실었다. 굽이굽이 긴 능선
울음을 실었다.
해지는 산 깊은 시간을 어깨에 싣고
춤 없는 춤을 추느니
말없이 말을 하느니
아, 설악산 나무
나는 너를 본 일이 없다.
전신이 거문고로 통곡하는
너의 번뇌를 들은 바 없다.
밤에 길을 떠나 우주 어느 분을
만나고 돌아오는지 본 일이 없다.
그러나 파문도 없는 밤의 허공에 홀로
절정을 노래하는
너를 보았다.
다 타고 스러진 잿빛 하늘을 딛고
거인처럼 서서 우는 너를 보았다.
너는 내 안에 있다.
별을 보며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별아, 어찌하랴.
이 세상 무엇을 쳐다보리.
흔들리며 흔들리며 걸어가던 거리
엉망으로 술에 취해 쓰러지던 골목에서
바라보면 너 눈물 같은 빛남
가슴 어지러움 황홀히 헹구어 비치는
이 찬란함마저 가질 수 없다면
나는 무엇으로 가난하랴.
나무에게
내 귀를 네게 묻는다.
듣는 사람아
하늘을 듣는 사람아
그대 시인이여.
너의 가슴에서 플룻을 듣는다.
내 안으로 깨어오는
또 한 사람이 들린다.
진실한 언어의 발소리
나무야
이 저문 땅의 빈자여
함께 걸어가다오.
네 안의 아름다운 자가
별이 이고 춤추는 자가
나를 걸어가는 동안
나는 너의 세계를 가고 있다.
나무야
함께 걷는 시간에
나는 문득
너의 뒤에서
알 수 없는 강물을 건너고 있다.
'OUT > 詩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원 시모음 2 (0) | 2007.06.18 |
---|---|
흘러 다니는 그림자들 / 신지혜 (0) | 2007.06.17 |
조연호 시모음 (0) | 2007.06.15 |
2007 '시와 세계' 여름호 신인상 당선작 / 안수아 (0) | 2007.06.14 |
오동나무 / 송찬호 (0) | 2007.06.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