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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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 / 송찬호

휘수 Hwisu 2007. 6. 13. 01:41

 

1959년 충북 보은

경북대 독문과를 졸업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6호에 <금호강> <변비> 등을 발표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

 

 오동나무 / 송찬호


  나는 아직도 오동나무를 찾아갔던 그때의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그때 나는 너무도 시를 쓰고 싶었다

  그리하여 오동나무와의 인사는 아름드리 그 허리를 한 번 안아보는 것

 

  근처에서는 딸기나무 관리인인 검은 염소가
  청동의 고삐를 잃어버린 것일까,
  온통 딸기나무밭을 헤집어놓고 있었다

 

  오동나무는 말했다 나무 위쪽으론 빠끔한 하늘을
  그냥 흑판으로 쓰는 작은 산비둘기 학교가 있고 발 아래
  뿌리가 뻗어나간 곳까지 일궈놓은 십여평의 그늘이 그의 삶의 전부라고

 

  그 말을 들어서일까 나무 아래 앉아 먹는
  청태의 그늘을 뜯어 누른 오동나무 막국수가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리고 오동나무 따님이 내온 냉차는 얼마나 시원하던가

 

  그때 계절은 참으로 치열했었다
  염소의 두 뿔과 붉은 딸기가 얼마나 범벅이었는지
  냇가에서는 돌과 잉어의 배가 얼마나 딴딴해 졌는지

 

  지금도 나는 언덕 위 그 오동나무를 기억하고 있다
  다리 건너 입구의 오동나무 우체통, 현관 앞 오분씩 늦게 가는 오래된 오동나무 괘종시계
  진흙이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던 오동나무 구두, 부엌 쪽 오동나무 도마소리……

 

                                       

 송찬호의 이 시는 동화처럼 재미있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오동나무라는 시의 대상을 친근하고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는 데서

서정성을 한 차원 높이고 있다.

특히 이 시가 아름다운 것은 2연과 3연. 관리인인 검은 염소, 하늘을 흑판으로 쓰는 산비둘기 학교.

십여평의 작은 공간이 오동나무의 삶의 전부라는 것. 그

리고 오동나무 따님이 내온 시원한 냉차도 동화적인 감미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 딱한 시어 하나가 못내 밥 먹다가 씹히는 돌처럼 주춤거리게 한다.

'딸기나무',  '딸기나무밭'이라니. 배추, 배추밭과 마찬가지로 '딸기', '딸기밭'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흔히 배나무밭, 사과나무밭이라고 말하듯 시인은 단순히 딸기나무밭이라고 쓴 건지.
비록 하나의 시어가 독자를 잠깐 주춤거리게 만들지라도

이 시의 전체적인 즐거움과 감동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 엽기적인 환상의 시들, 소통을 거부하는 독선적인 시들이 범람하고 있는 마당에

느긋하고 구수한 이런 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강인한 시인 )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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