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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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시모음 1

휘수 Hwisu 2006. 7. 20. 15:24

1929년 충남 서산 출생 '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등단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 문학상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 시인상
2001년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제주도 명예 도민증을 받음
시집 「산토끼」「녹벽」「동굴화」「이발사」「나의 부재」

「바다에 오는 이유」「자기」

「그리운 바다 성산포」「山에 오는 理由」「섬에 오는 이유」

시인의 사랑」「나를 버리고」「내 울음은 노래가 아니다」

「섬마다 그리움이」「불행한 데가 닮았다」「서울 북한산」

「동백꽃 피거든 홍도로 오라」「먼 섬에 가고 싶다」

「일요일에 아름다운 여자」「하늘에 있는 섬」「거문도」

「외로운 사람이 등대를 찾는다」「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혼자 사는 어머니」「개미와 베짱이」「그 사람 내게로 오네」

「김삿갓, 시인아 바람아」「인사동」

 

꽃처럼 살려고

 

꽃피기 어려운 계절에 쉽게 피는 동백꽃이
나보고 쉽게 살라 하네
내가 쉽게 사는 길은
쉽게 벌어서 쉽게 먹는 일
어찌하여 동백은 저런 절벽에 뿌리 박고도
쉽게 먹고 쉽게 웃는가
저 웃음에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닌지

 

'쉽게 살려고 시를 썼는데 시도 어렵고 살기도 어렵네
동백은 무슨 재미로 저런 절벽에서 웃고 사는가
시를 배우지 말고 동백을 배울 일인데’

 

이런 산조(散調)를 써놓고
이젠 죽음이나 쉬웠으면 한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나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 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죽는 일을 못 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사람도 더 태어나는 일을 못 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에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을 좋아했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한 짝 놓아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60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바다의 오후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 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 놓고
돌아간 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 보고 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 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벌레 먹은 나뭇잎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낚시꾼과 시인


그들은 만재도에 와서 재미를 못 보았다고 한다

낚싯대와 얼음통을 지고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그 말만 되풀이했다.

날보고 재미 봤냐고 묻기에

나는 낚시꾼이 아니고 시인이라고 헸더니

시는 어디에서 잘 잡히느냐고 물었다

등대 쪽이라고 했더니

머리를 끄덕이며 그리로 갔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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