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이상호 시인(펌) 본문

OUT/요것조것수납장

이상호 시인(펌)

휘수 Hwisu 2006. 2. 10. 09:29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서울캠퍼스에 자리한 박목월 시비의 이전이 확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문단의 굳건한 거목으로 자리했던 故 박목월 선생. 이 교수가 애송하는 김춘수 시인의 역작 '꽃'의 한 구절과도 같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불러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의 파편들을 모아 꽃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시인(詩人)이라 부른다.

목월(木月), 불러도 불러도 그리운 이름이여!

1983년 '심상(心想)'지에 '금환식'이라는 시로 등단한 이상호 교수는 벌써 5번째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떠밀려 나간 백일장에서 장원을 받은 후, 시인이자 국문학자의 삶이 시작된 것 같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 후 본교에 입학한 이 교수는 그가 걸어야 할 문학인의 길에 큰 영향을 미친, 당시 본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거목(巨木) 박목월 시인을 만난다. 박목월 시인에 대한 그의 열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인터뷰가 시작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였다.

"목월 선생님은 당시 시단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거목이셨습니다. 당시 목월 선생님을, 마치 여고생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처럼 따르고 존경했습니다. 제 자신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착각을 가지게 된 것도 선생님의 수업시간 때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제 작품이 선생님께 선택되어, 당신의 목소리로 읽혀졌던 그 영광스런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저를 지금까지 이끈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분을 모시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목월 시인에 대한 이 교수의 애정은 때로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크고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 상호에이! 하고 부르시는 당신 / 목소리는 차라리 수묵빛 하늘 / 나는 그만 가슴이 콱 막혔다(광나루에 앉아서-목월생각 中).' 스승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그 빛을 바래고 있는 시절에 아직도 스승 생각에 가슴 두근거려 하는 이 교수는 지금도 목월 선생에 대한 신열을 내리지 못한 영원한 제자다. 이 교수는 현재 자신의 나이에 이미 한국 시단의 독보적인 존재이셨던 스승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너무도 초라해진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

시인으로서, 국문학자로서, 스승으로서 목월 선생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 교수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이른바 시인의 요람으로 그 명성을 날렸던 본교 국문과에서 매년 고작 한 명 정도만이 등단을 통해 창작의 길에 오르는 작금의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그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을 꼽는다. 매스미디어 발달이 독서 습관을 밀어내어 작품을 쓰기 위한 기본적 소양이 사라졌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게다가 취업이라는 현실적 장애에 부딪혀 국문학과가 비인기 학과로 전락해 가는 것도 그러한 현상을 가속화시켰다고 이 교수는 덧붙인다. 하지만 인문학이야말로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열쇠라고 이 교수는 자신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과 진실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쉽게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오랜 시간에 걸려 나타나게 되지요. 반면 자본을 거름으로 자라난 기술의 발달은 짧은 시간에 큰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문명은 파괴 쪽으로만 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 인류의 삶을 행복하고 기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밀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물질적 가치가 중요해질수록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정신 발달을 위해 인문학이 고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두 가치는 반비례 선상에 있다. 따라서 물질만능주의의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이상 인문학의 변화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자신의 저서 '디지털 문화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있다.

"과거 산업사회가 위계적이라면 디지털 시대는 비위계적이며, 일탈적입니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시대의 속성과 그 토대를 같이하는 것이 바로 시적 상상력입니다. 전통의 시가 정신속의 디지털이라면, 현대의 디지털 시대는 기계 문명 속에서 풀어낸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미 경험한 시적 상상력이야 말로 디지털 문화를 발달시키는 핵심 인자로서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적 상상력에 대한 현대적 맥락의 해석을 제시하면서도 이 교수는 전통적 의미에서 시가 지닌 기능들 역시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처음 인류가 발화한 언어라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시라고 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단언한다. 따라서 인간의 근원적인 순수성과 가장 가까운 것이 '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를 읽는 행위는 공자가 언급한 '사무사(思無邪)'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찾아가는 시인학교

시인으로서, 스승으로서 이 교수는 시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항상 분주하다. 작년까지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전국 광역시들을 돌아다니며 '시 낭송회'와 '시 창작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그리 썩 좋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어둡다.

"모 방송매체의 게릴라 콘서트라는 것이 하루 홍보해서 5000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시 낭송회를 위해 두 달동안 홍보한 우리는 겨우 100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제 시집 사보기를 기다리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시인의 직접 찾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시에 대한 참 맛을 느끼게 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악하게 만들어지고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시 아닌 시들을 식별해 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이제 시인들이 직접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시인은 물론 예술인들의 작품 활동은 그 속성 자체가 워낙 개인적이긴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대중 앞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비록 대중의 물결과 시대적 조류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세간에 팽배한 아류문학의 거품들을 거두어 내는데 예술인들이 앞장서고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러한 행동의 일환으로 이 교수는 이른바 '찾아가는 시인학교'를 계획 중이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감히 시인으로서의 삶과 선생으로서의 삶에 양자 택일을 해야한다면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냐는 당돌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 교수는 망설임 없이 시인의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은 가장 감성적인 작업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가장 이성적인 작업임에 서로 다른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면서도 서로의 세계를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현실의 모든 제반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야 할 터인데, 그러한 것은 일찌감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번진다.

"당연히 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빈한한 삶이 될런지도 모르겠군요.(웃음) 하지만 창작만큼이나 가르치는 일도 제게는 중요합니다. 제가 목월 선생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저도 새로운 세대를 가르쳐 재목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창작과 가르치는 일. 그것도 인문학을 기반으로 해야하는 두 가지 일이 과연 지금으로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먼 미래에 우리나라를, 지구를, 우주를,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상호 교수는 1954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본교 국문과에서 학사를 마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월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 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안산캠퍼스 국제문화대학 국문화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작품집으로 『금환식』,『그림자도 버리고』,『그리운 아버지』, 『웅덩이를 파다』 등이 있으며 『한국현대시의 의식분석적 연구』,『희곡원론』, 『디지털 문화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