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이건청 시모음 본문
1942년 경기 이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문학과 문학석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196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시집, 「이건청 시집」「목마른 자는 잠들고」「망초꽃 하나」「청동시대를 위하여」
「하이에나」「코뿔소를 찾아서」「석탄형성에 관한 관찰 기록」
「푸른말들에 대한 기억」「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연구서, 「문학개론」(공저)「나의 별에도 봄이오면」(윤동주 평전)「초월의 양식」
「한국전원시 연구」「윤동주-신념의 길과 수난의 인간상」「해방후 한국 시인 연구」
「한국 현대 시인 탐구」
녹원문학상 수상
현대문학상 수상
한국시협상 수상
현재 한양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소금창고에서 날아가는 노고지리
한때, 나는 소금창고에 쌓인 흰 소금 속에 푹 묻히고 싶은 때가 있었다. 소금 속에 묻혀 피도 살도 다 내어주고 몇 마디 가벼운 말로 떠오르고 싶은 때가 있었다.
마지막엔 '또르르 또르르' 목을 울리는, 한 마리 노고지리 되어 푸른 보리밭 쪽으로 날아가고 싶은 때가 있었다
무서운 풀
토굴에서 발각된 패잔병의 허벅지에 흰 벌레들이 기어다녔다. 집에 가고 싶어요, 검푸른 얼굴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가 완장을 찬 사람들의 들것에 실려 갔다. 멀찍이 아이들이 따라갔다. 나는 혼자 남아 뭉게구름 속 매미소리를 들었다. 매미소리에 섞여 총소리가 울렸다. 산굽이였다.
사람들이 죽은 그를 벌레와 함께 묻었다. 땅도 파지 않은 채 그냥 흙으로 덮었다. 학교길 옆이었다.
쇠똥구리의 생각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고 가다가 잠시 멈춘다. 지금 내가 거꾸서 서서 굴리고 가는 저것은 풀밭이다. 이슬에 젖은 새벽 풀밭위로 흐린 새 몇 마리 떠갔던가. 그 풀밭을 지나 종일을 가면 저물녘 노을에 물든 이포나루*에 닿을까. 거기 묶인 배 풀어 밤새도록 흐르면 이 짐 벗은 채, 해 뜨는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남한강 지류에 있는 옛 나루터
멸치
내가 멸치였을 때,
바다 속 다시마 숲을 스쳐 다니며
멸치 떼로 사는 것이 좋았다.
멸치 옆에 멸치, 그 옆에 또 멸치,
세상은 멸치로 이룬 우주였다.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며
붉은 산호, 치밀한 뿌리 속을 스미는
바다 속 노을을 보는 게 좋았었다.
내가 멸치였을 땐
은빛 비늘이 시리게 빛났었다.
파르르 꼬리를 치며
날쌔게 달리곤 하였다.
싱싱한 날들의 어느 한 끝에서
별이 되리라 믿었다.
핏빛 동백꽃이 되리라 믿었었다.
멸치가 그물에 걸려 뭍으로 올려지고,
끓는 물에 담겼다가
채반에 건저져 건조장에 놓이고
어느 날, 멸치는 말라 비틀어진 건어물로 쌓였다.
그리고, 멸치는 실존의 식탁에서
머리가 뜯긴 채 고추장에 찍히거나,
끓는 냄비 속에서 우려내진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내가 멸치였을 때,
별이 되리라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싶었다
그 배를 타고 싶어
새벽 바다에 가면
검고 흐린 배들이 떠 있었다
닻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배 뒤에서 다른 배가
돛을 올리고 있었다
뱃사람들이 뱃사람들끼리
배를 타고 있었다
검고 흐린 배들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새벽 바다에 배들이 떠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수평선을 넘고 싶었다
그 배를 타고 싶어 새벽바다에 가면
뱃사람들이 뱃사람들끼리 만
출렁이고 있었다
그 배를 타고
수평선을 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시인의 산문' 중에서
기억이 살아있는 한 그루 자연
나는 시인이 되지않았더라면 아마, 산불 감시원이 되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해요.
산꼭대기에 올라서 망연히 산등성이를 살펴보며 어디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없나,
불길이 번지는 데는 없나 살펴보는 사람 말이예요.
산불 감시초소에 올라 하루 종일 산을 바라보는 삶, 괜찮지 않겠어요?
화재가 없으면 그냥 산꼭대기에 남아 초소지기로 늙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다 산등성이로 불길이 번지는 때,
팽팽한 긴장에 떨며 워키토키를 열어 산불진화를 지휘하면서 소방용헬기를 부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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