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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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 시모음

휘수 Hwisu 2006. 6. 4. 09:29
 

                                                    

1960년 충남 서천 출생
경기대학교 국문과 졸업
1995년 문예중앙 신인상에 「나의 새」외 9편 시가 당선 문단에 등단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1999년 창작과비평사

현재 강원도 영월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

 

 

침묵

 

 골바람 속에 내가 있었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려하지 않았으므로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골짜기 외딴집 툇마루에 앉아 한 아낙이 부쳐주는 파전과 호박전을 씹으며 산등성이 너머에서 십년 묵언에 들어 가 있다는 한 사람을 생각했으나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바람 속에 내가 있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기의 여름

 

 파릇한 골짜기, 고기들이 비상이다
 피라미는 히히번뜩, 곰퉁이 꺽지도 쌩쌩, 물살을 가르고 느림보 퉁가리도 우당탕탕, 모양새를 구경하기 어렵다 모래무지는 모래 속에, 파묻혀 나오지도 않는다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마라 곳곳에 그물이 걸려 있다 향기에 유혹당하지 마라 어항이 기다린다 투망이 덮친다 돌 밑에서 나오지 마라 야한 빛으로 잡아끄는 살코기를 조심하라 바늘이 목을 찌르면 목을 버려라 혹시 살지도 모른다.

 여름이 왔다 인간들이 몰려온다.
 해머질과 전기찜질에 대비해 두 개의 바위를 거처로 삼고 살아가라 햇살 속으로 나아가 삶을 즐기려 하지 말고, 구름에 잠겨 날아가는 꿈을 꾸며 세월을 보내라 가루약은 예고 없이 급습한다 그때는 도피처가 없으니 당당히 죽어라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마라 지은 죄가 없다

 

 고기들은 자꾸만 여위어 간다
 하나의 바위 밑에서 또 다른 바위 밑으로 사람의 눈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그림자들의 행렬

 

         나의 새

 

내가 인간세계에서 승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듯이
새의 세계에서 새들이 너를 부르는 이름을 알고 싶다
새들이 너를 부르듯 나도 너만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

 

오래도록 마음의 문을 닫고 세상을 멀리하며 나는 살아왔다

아침이야 아침이야 네가 햇살보다 먼저 찾아와 창문 앞에서

나를 불러 아침을 안겨주었듯 저기 저 산, 네가 사는

숲에 들어가 나도 너의 둥지 옆에서 너의 이름을 불러, 막

잠에서 깬 너의 눈이 나를 보는 것을 보고 싶다

그때 너는 놀라며 나의 이름을 부르겠지......승도야

 

 

 

절벽 밑을 지나며

 

 계곡의 절벽엔 물소리가 붙어 산다 소리를 키워서 돌려보내는 마음

 물안개도 잠시 매달아 놓았다 하늘로 올려보내고 지나가는 새소리도

담아 두었다 스치는 바람에 안긴다

 

 절벽은 골짜기와 숲, 저 하늘로 가는 길을 내게 이른다

 

 

바람 부는 날

 

 숲에 바람이 부는 날은 나뭇잎들이 야단이다
 바람이 몰려온다고, 바람이 몰려간다고, 그 푸른 몸맵시도 잊은채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놀라게 저리 야단이다
 이번엔 내 몸이 날아갈지 몰라요 가지째 꺾어져 숲 저 너머로 사라질지 몰라요 이제 당신을 못 볼지도 몰라요

 

 바람이 부는 날엔 숲을 떠나 숲을 본다 조그만 사람들이 우우 일어났다 가라앉듯 숲은 바람 따라 몸을 누이고 바람 따라 일어선다
 바람이 부는 날, 멀리서 숲을 보면 숲은 생의 환희에 넘쳐 바쁠 뿐이다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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