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스크랩] 문학 이야기 - 詩는 어떻게 쓸 것인가 8 본문
- (나) 잘못된 시
지난 겨울
남 몰래 이장한 묘구덩 속
아직 남은 뼈마디 하나.
엉겅퀴에 걸려
푸른 보라빛으로
멍이 든
컴플렉스.
'잘라 버릴거야'
낙서처럼
스쳐지나는
개울 건너 무덤까지.
이 시는 필자의 노트에 쓰여진 아직 시로서 발표되지 못한 시다.
제목은 <개울 건너>라고 되어 있다.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조차 지금은 잊어버린 상태다.
여기에는 세 개의 이미지가 나열되어 있다.
이장한 묘 자리에 남은 뼈 하나와 엉겅퀴의 보랏빛 꽃,
그리고 벽에 가위가 그려져 있고 그 옆에 쓰여진 낙서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이미지는 하나로 녹아들지 못하고 삐걱인다.
억지로 하나로 묶으려 한 흔적이 마지막 행에 드러나 있다. '
개울 건너 무덤까지'가 그것이다. 시상만 나열되었을 뿐 시가 아닌 것이다.
이 글이 시가 되려면 세 편의 시로 태어나야지 하나로는 도저히 시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억지로 하나로 묶어 보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위의 글이 시가 되지 못한 이유는 시상만 가지고 시를 억지로 쓰려했기 때문이다.
느낌과 감동이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건질 것은 구덩이에 버려진 뼈와 엉겅퀴의 푸른 빛깔이다.
지난 겨울이란 시간적 배경과 낙서는 없어져야 한다.
그래야 최초의 상황―시상을 얻었을 때의 놀라움이 표출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미 솔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러한 시상은 그대로 묵혀두거나 버려야 할 것이다.
그냥 하나의 경험으로 깊숙이 넣어두어야 한다.
언제 때를 만나면 그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리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만약 내 자신이 이것을 시라고 강변한다면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양심의 문제다.
그렇다면 시인들이 시를 쓸 때, 철저한 논리적 구성 속에 시를 쓰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시인의 의식 속에 시의 씨앗으로 잉태된 정서의 출렁임은
필연적인 인과성 위에 펼쳐지지만 느낌은 순서를 가지지 않고 한꺼번에 찾아온다.
직감적으로 찾아오는 이 정서의 이미지들은 어찌 보면 무척 무질서한 듯하지만
구조적으로 완벽한 상태이다.
다만 시인이 이 무질서해 보이는 이미지를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따라
시가 쓰여지거나 의식 속에 잠재되어 버리거나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보거나 생각할 때,
그 대상과 접하는 순간 의식 속에는 엉켜있는 생각의 덩어리가 자리를 잡게 되고,
이 생각의 덩어리를 차분하게 있는 그대로 최초의 느낌 그대로 표현해내는 작업이
바로 시쓰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최초의 느낌이 끝까지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시인들이 시작업을 하는 동안에 처음의 의도와 다른 시들을 쓴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촉발된 정서가 또 다른 정서를 일으키면서 확장되고 변형되어
최초의 생각과 다른 시들이 태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앞에 예를 든 필자의 <개울 건너>는 바로
이 확장과 변형의 과정에서 방향을 잃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 자리에서
교수는 파이프를 비스듬히 물고
내장이 나온 창으로
상아연안이 침몰하고 있는 것을
화석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조난(遭難)하는 백합 한 송이…….
라고 쓰고 그 제목을 <작품9>라고 붙여 내놓는다면,
마치 아무렇게나 괴물의 형상을 그려놓고 도깨비라고 우기면 누가 시비할 수가 없듯이
누가 뭐라고 하지야 않겠지만 저 무의미한 표상의 나열이 결코 시가 될 수는 없다." 며
앞 뒤의 논리적 상관성과 의미적 상관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구상 <현대시창작법> 105쪽)
어제 꿈을 꾸었다
예전에 소중했던 추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아
손을 뻗어 보았지만
추억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 무엇도……
다시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간다.
그리곤 다시 지나간 추억을 쫓아
잠을 청한다
다시는 놓치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위의 글은 어느 고등학교 문학동아리반 학생이 쓴 글이다.
제목의 추상성이 주제의 모호함으로 이어지면서 내용이 없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시가 되었다.
언뜻 보면 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글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언어형식이란 점에 비추어 볼 때,
글이 되지 못하고 있어 시라고 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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