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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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춘 시모음

휘수 Hwisu 2006. 10. 19. 11:28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 매산고등학교 졸업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2001년 제3회 박용래문학상 수상 
2004년 제1회 순천문학상 수상 
시집 <죽편> <봄, 파르티잔> <귀>

 

초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까지 갖고 싶어진다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돋보기만한 이슬방울이고
이슬방울 속의 살점이고 싶다
나보다 어리디 어린 이슬방울에게
나의 살점을 보태 버리고 싶다
보태버릴 수록 차고 달디단 나의 살점이
투명한 돋보기 속의 샘물이고 싶다
나는 샘물이 보일 때까지 돋보기로
이슬방울을 들어올리기도 하고 들어 내리기도 하면서
나는 이슬방울만 보면 타래박까지 갖고 싶어진다.

  

돌의 시간


 자네가 너무 많은 시간을 여의고 나서 그때 온전한 허심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지나간 시간 위로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쳐서 눈을 뜰 수 없고 온몸을 안으로 안으로 웅크리며 신음과 고통만을 삭이고 있는 그동안이 자네가 비로소 돌이 되고 있음이네

 

 자네가 돌이 되고 돌 속으로 스며서 벙어리가 된 시간을 한 뭉치 녹여 본다면 자네 마음속 고요 한 뭉치는 동굴 속의 까마득한 금이 되어 시간의 누런 여물을 되씹고 있음이네

 


 

오늘,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나는 아버지가 이끄는 말구루마 앞자리에 쭈굴쳐 타고 앉
아 아버지만큼 젊은 조랑말이 말꼬리를 쳐들고 내놓은 푸른
말똥에서 확 풍겨오는 볏집 삭은 냄새가 좀 좋았다고 말똥
이 춥고 배고픈 나에게는 따뜻한 풀빵 같았다고 1951년 하
필이면 어린 나의 생일날 일기장에 침 발린 연필 글씨로 씌
어 있었다

 

오늘, 그 푸른 말똥이 그립다

  

종소리

 

한 번을 울어서
여러 산 너머
가루 가루 울어서
여러 산 너머
돌아오지 말아라
돌아오지 말아라
어디 거기 앉아서
둥근 괄호 열고
둥근 괄호 닫고
항아리 되어 있어라
종소리들아

 

저수지에서 생긴 일 2

 

 어느 날 저수지 낚시터엘 갔었더랍니다 처음에는 저수지 물이 아주 잔잔해서 마치 잘 닦인 거울 속 마음 같아 보였는데 거기다가 길게 날숨 쉬듯 낚싯줄을 드리웠는데 때마침 저수지 물이 심각하게 들숨 날숨으로 술렁거렸고 난데없는 왜가리의 울음방울 소리엔 듯 화들짝 놀란 물고기가 저수지 전체를 들어 올렸다가 풍덩풍덩 놓쳐버렸기 때문에 나 역시 낚싯줄에 간신히 걸린 한 무게를 깜짝깜짝 놓쳐버릴 수밖에 없었더랍니다 그러자 저수지 물은 다시 잔잔해졌고 아 이렇게 한순간에 일어난 "긴장감 속에 깃든 평화"를 나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아직 맛본 일이 없었더랍니다.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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