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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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대학교 제1회 사이버문학상

휘수 Hwisu 2007. 2. 22. 11:13

서울디지털대학교 제1회 사이버문학상

 

 6000여 편이 응모한 서울디지털대학교 제1회 사이버문학상이 막을 내렸다. 심사위원인 고은 시인, 이재무 시인, 유성호 문학평론가, 오봉옥 시인, 손택수 시인, 길상호 시인 등은 당선작으로 최란주의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을, 가작으로 정상조의 ‘등 푸른 추억’ 외 5편을 선정했다. 2007년 서울디지털대학교 제 1 회 사이버문학상은 응모자가 848명, 응모작품은 6000여 편에 달했다. 이는 서울권 일간지 신문의 신춘문예를 상회한 수치이다. 뜨거운 관심에 감사 드린다. 당선작은 500만원의 상금과 함께 계간 <시작>에 작품게재, 등단 시인으로 인정되며, 가작은 200만원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시상식은 2월 22일(목) 오후 6시 서울디지털대학교 2층 회의실에서 열린다. 

 

당선작 - 최란주 ‘줄장미 붉은 손바닥’ 외 4편
가작 - 정상조 ‘등 푸른 추억’ 외 5편

 

당선작

 

 줄장미 붉은 손바닥  / 최란주


 초여름 아침 등촌동 자동차공업사 옆 담벼락을 지나는데 줄장미 붉은 가시가 홑겹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출근길 발걸음이 함부로 뻗친 가시에 걸려 잠시 허둥거렸다. 제 毒手에 찔린 줄장미 꽃모가지들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옷깃을 움켜 쥔 줄장미 독 오른 손바닥들이 옛 애인을 붙잡고 늘어지던 내 넝쿨손 같아 도망치듯 전철역까지 줄행랑을 쳤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이 십년 전처럼 까칠했다. 젠장, 외로움에 긁히고 그리움에 긁히는 게 사랑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은 조금씩 긁힌 손바닥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쉽사리 상처를 보여주지 않는다. 악수가 따듯한 건 상처가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던 손바닥을 펴면 아직도 털어지지 않는 붉은 가시들, 종일 손바닥이 따가웠다. 태양의 모가지가 뭉툭뭉툭 지고 있었다.

 

카페 라 캄파넬라 / 최란주

 

 큐빅이 박힌 하이힐을 신고 표범무늬 미니스커트에 엉덩이를 걸친 女子 살갗이 슬쩍 보이는 반라의 시스루를 두르고 알 듯 모를 듯 미소를 흘리며 서 있는 女子 얇고 가느다란 시선만 던져도 울퉁불퉁 심장이 뜨거운 사내들이 침 삼키며 눈독을 들이는 女子 뒤로 다가가 허리를 덥석 안아 버릴까 얇은 시스루를 확 벗겨 버릴까 이런, 그 女子의 입술에서 따듯한 영혼이 실핏줄처럼 퍼져 나가게 돌려버릴까 젠장, 숨 막히게 맑은 투명한 에스라인 허리를 손가락 끝으로 간질여볼까 혀끝으로 꼭지가 짓무르도록 핥아 볼까 아아, 女子의 입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는다면 배가 부풀어오를까 아니면 스커트가 벌렁거릴까 사내들이 동공이 커진 눈동자를 번뜩이며 다가온다 이런, 스커트 밑으로 밀고 들어오는 이 부드러움은 무엇인가 이봐, 눈 큰 겁쟁이, 축제 준비는 다 됐니? 자, 그럼 실컷 만져 봐, 뇌쇄적인 女子의 몸매, 이런 와인 잔은 아마 처음일 걸?

 

늦겨울 / 최란주

 

 느그들은 나 죽기 전에 시집들 안 갈래 요새 아그들은 참말로 애인들도 잘 사귀드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저 시랭이 마을 사는 끝자는 아들을 셋이나 낳고도 그 머이메와 끝내뿔고 딴 서방을 꿰차고서 딸 하나를 낳아서 알콩달콩 잘도 키우고 살드그만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넘들은 시방 손주를 장개보낸다고 청첩장을 뿌리고 난린디 나는 딸 셋 중 하나도 못 치워서 복장이 터져뿔것다 참말로, 근디 시방 어디여, 여즉 사무실이라고, 그놈에 사무실은 매미맹키로 붙어서 끄륵끄륵 일만 해싸면 무슨 똑바라진 사내자식 하나 엮어준다디 인제 그만 일을 끝내뿔고 싸게싸게 나와서 술 한 잔 먹어제끼고 맘에 든 사내가 있거던 거그서 그냥 모른척 자빠져쁘러 지도 사람인디 나 몰라라 하것냐 뽀뽀는 안 허더라도 업어다 이불에는 눕히지 않겄냐 그렇게 갈켜줘싸도 그노메 좋은 머리는 어따가 쓰는겨 초등핵교도 안 댕긴 명옥이도 남재 만나서 잘만 살더그만 대학까정 나온 느그들은 여태 뭣했냐 잔소리라 생각허들 말고 퍼득 정신차려 시간이 없당께 고놈이 고놈잉께 인제 고만 고르고 화딱 소매를 끌던지 바지가랑이를 잡아댕기든지 하랑께 술 몽땅 묵고 자빠져쁘러 고것이 최고여 그라고 나중 지가 안 그러고 고놈의 술땀시 그랗게 되야부렀서야 하면 그만이랑께

 

땡볕 법정 / 최란주

 

 나는 당신의 마음을 홀린 죄로 땡볕 법정에 불려나와 재판을 받게 되었으니 그리움을 방사한 죄가 크다. 이에 법정구속을 명한다. 청포도 푸른 그늘 아래 남아있는 키스자국에 대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이 다른 이에게 도주할 우려가 있기에 오늘 이 시간부터 나를 추억 속에 감금하니 내가 가야할 장소는 후박나무가 내려다보이는 당신의 창문이다. 넓은 잎사귀 갈피마다 채워진 당신이란 책장을 넘기며 나는, 사랑이란 누구를 홀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 사랑하는 이를 위해 미소를 머금는 것임을 알 때까지 나는, 당신이란 글자의 행간 사이로 쏟아져 들어오는 땡볕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네모난 겨울  / 최란주

 

   -법원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육법전서 너머로 보이는 거리에는 실어증에 걸린 사람들로 북적인다. 한 장 남은 달력 위로 다급하게 달려드는 발자국 밑으로 마른 햇볕이 끼어든다. 오후 네 시의 아찔한 구멍 속으로 비둘기들이 들락거린다. 법원입구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툰드라꽃배추가 미색의 소환장을 던진다. 덜컹 내려앉는 사람들의 놀란 가슴을 짓누르는 판결문 낭독소리. 판결문은 양자 누구에게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돌아서는 고소인의 뒷모습과 구속된 피고인의 뒷모습은 동전의 양면처럼 닮아 있다. 완벽한 증거들로 가득 찬 네모난 형사공판조서 속에서 각진 얼굴들이 빠져나오려고 아우성이다. 법원사무실에서 바라본 풍경 속에서 태극기는 여전히 높이높이 바람에 펄럭인다.

                   

가작

 

등 푸른 추억 / 정상조

 

 여기가 어딘지 몰라, 눈만 휘둥그레져 있는 고등어. 쭈그리고 앉아 있는 어머니의 뱃살처럼 켜켜이 쌓인 고등어는 시장바닥에 피어오르는 한기와 사람들의 흥정 소리에 대가리 없이도 그 사이를 헤엄쳐 나갔다. 대야에 남은 고등어는 그래도 대가리는 갖은 채, 밥상 위에서 지 몸 타는 줄 모르고 백열등만 응시했다.‘또 고등어야’등 푸른 연기에 침묵은 소금처럼 스며들었다. 침묵의 수평선이 눈을 뜨자, 고등어는 아이의 입을 헤엄쳐 갔다. 목구멍에 잔가시가 걸려 아파하는 울음소리에 어머니는 맨밥을 밀어 넣으셨다. 고등어는 그 많은 가시를 삼키고도 아프지 않았을까. 아이가 남기고 간 상처들의 잔해를 어머니는 도둑고양이처럼 맨밥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셨다. 밤마다 파도치는 어머니의 뱃속에 고등어는 커가고 있었다. 다음 해, 간인지 쓸개인지 알 수 없을 커다란 어항이 어머니 몸속에서 나왔다. 그 곳에 고등어는 없었다. 다만 대형 고등어가 살았다는 붉은 흔적뿐. 퇴원 후에도 어머니는 뱃속에 고등어를 키우신다. 가끔, 내뿜는 담배연기 사이로 헤엄치는 등 푸른 추억이 떠오르곤 한다

 

마녀 / 정상조

 

4층 금강극장에 한 마녀가 살았다
그녀의 이름은 순자
마법에 빠진 동네 총각들은
TV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극장에서 봤다
사내들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받쳤던
순정 한 방울, 주머니 속 먼지 두 스푼에 속눈썹 말아 올라간
그녀는 빗자루를 타고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사내들의 마음을 쓸어 담았다
마녀가 황금 빗자루를 쫓아
스크린 속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자
탈색된 머리카락을 엮던 영식이 형은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털을 부여잡고 울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꼬여버린 빗질 따라 마녀사냥꾼들이 동네로 들어왔다
붉은 부적딱지에 집이 불타오르자
마녀의 어머니는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도착한 것은 구급차였다
이듬해 병실에 마귀할멈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면제 4알, 한숨 세 스푼이 만들어낸
층층 계단이 놓여 있었다 금강극장 계단보다 높았다
그녀의 손에는 회한(悔恨)에 젖은 대걸레가 쥐여져 있었다
스크린의 턱을 넘다가 남자 발에 걸려
빗자루는 걸레가 되었다고 했다
부적 딱지를 많이 삼켜
굽어진 그림자 얼룩으로 가득 찬 병실.
그녀는 오늘도 잘 닦기지 않는 얼룩을 어루만지고 있다
젖은 걸레가 마르는 날,
나는 순자에게 소박한 빗자루를 선물하고 싶다

 

단단한 붕어빵 / 정상조

 

좁아터진 붕어빵틀 속에
밀가루 반죽처럼 길게 늘인 콧물 단
꼬마 하나 이리저리 뛰어 다녔죠
코가 막혀 숨을 몰아쉬니
한숨쉬면 복 달아난다는 말에 꼬마는 숨을 참으며 살았죠
넘실거리는 소주에 그날 번 일당 띄우고
큰소리로 항해하신 아빠 이름은 마도로스 김
밤마다 암고양이 울음소리가 꼬마 귓등을 간지럼 태우면
어김없이 다음날에는 얼어버린 붕어빵 몇 개 놓였지요
아가미까지 말라버린 붕어빵을 꼬마는 먹지 않았어요
킁킁거리는 소리에 소주 뚜껑으로
꼬마 주머니는 아빠 술배처럼 불룩해졌죠
꼬마는 붉은 해가 뜨는 밤보다
잠들 무렵에
암고양이 울음소리가 안 들릴까 걱정했죠
울음소리 들리지 않으면 아침이 오지 않았을라나,

 

더 이상 탈 배가 없어 대낮부터 들어온 아빠가
엄마 가슴에 술 붓자, 푸른곰팡이 찍히는 소리 들리네요
꼬마는 답답해 아궁이 뒤에서 몰래 한숨을 내쉬자
푸른곰팡이 집 전체에 퍼져, 꼬마 몸까지 피워 오르네요
꼬마는 101마리 달마시안 그린다고 수많은 푸른 점에
개 그림 그리는데 한마리가 부족하네요
집나간 개새끼, ‘멍멍’ 동네방네 짖어대는 소리가 정겹네요
그 날 밤 암고양이 울음소리 사라져 꼬마는 무서웠어요
한숨 소리에 암고양이 제 새끼 놔두고 달아난 줄 안
꼬마는 한숨을 감추기 위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어요
마을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며 꼬마는 붕어빵을 굽네요
암고양이가 먹어본 건 단단한 붕어빵이라
후후 불어가면서요

 

최후의 만찬 / 정상조


맨주먹으로 세상을 주무르겠다고 하던 시절
공장 앞 부동산 화투판에서 공갈빵을 맛 본 아버지는
도너츠 구멍으로 보이는 세상이 작아 보였다
도너츠에 이스트를 넣으신 아버지
부풀다 부풀다 터져버린 그 날,
도너츠는 설탕 옷 대신
붉은 차압딱지로 포장되어 나왔다
그 해 공장은 붉은 시럽에 빠져 익사했다
아버지는 직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기 위해
도너츠 구멍처럼 작아져 버린 방에
직원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둥글게 앉았다
반죽은 여자가슴 주무르듯 해야 한다는 김씨 아저씨
세상 모든 것은 구멍 없이는 살수 없다고 소리치던 최씨 아저씨
모두들 채울 수 없는 목구멍에 술잔을 부었다
술에 불어버린 방에서는 한숨만이 여기저기서 피어올랐다
아버지는 도너츠가 불던 휘파람소리가 듣고 싶어했지만
더 이상 만들 손이 없어 입으로 도너츠를 만들었다
집안 가득 흰 도너츠는 우주선처럼 날아오르며
매캐한 설탕 가루를 집안 가득 뿌렸다
긴 한숨을 타고 우주선이 내 머리 위로 착륙하려 하자,
아버지는 우주선을 향해 재떨이를 날리셨다
휭 휭 날아오르다 내 이마밖에 닿지 못한 무능함에
더욱 커진 우주선이
시럽처럼 붉어져가는 방을 졸라매자,
사람들은 울음 섞인 휘파람을 내쉬었다

 

면도 / 정상조

 

무딘 주름살 꺼내놓은 채
이젠 날도 서지 않은 면도기로
사내는 면도를 해본다
칼날 사이에 켜켜이 쌓인
사내의 모진 인생을 면도기는 안고 살았다
탁탁 털어내지만,
사내의 매끄러운 인생에 잘려나간
아버지의 두개의 손가락만이 세면대 위에 떨어진다
턱 주위에 거품을 바르자, 거울에 아버지 얼굴 보인다
제 숨 다 쉰 거품들
‘지 애비 닮아가네’ 소리에 사라지고
욕실에 던져진 구멍 난 양말에서
아버지 배꼼 얼굴을 내민다
무딘 면도날에 베인 상처 틈으로 흐르는
시간은 뚝 뚝 끊어진다
상처를 막자, 사내의 그림자에서 걸어 나오는 아버지
무딘 칼날로 그림자를 깎으려는 사내는
깎이지 않자 면도기를 버린다
혼자 면도를 할 수 있는 사내에게
아버지는 일회용이었다
팽팽한 면도기로 난도질을 해봐도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
불을 끄자
사내가 없고 아버지도 없다
섞이지 못한 채 고여 있는 침묵뿐.

 

숨바꼭질 / 정상조


달빛 속으로 적막마저 숨은 밤
달동네에서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도둑고양이가 품고 있던 바람은
술래의 주먹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술래는 무너진 담벼락 따라 숨은 사람을 찾아 나선다

 

처음으로 잡혀 나온 사람은 ‘늘봄상회’할아버지
달동네에 뿌리내린 수염을 술래는 송두리째 뽑아간다
폐지를 덮고 자던 박스아줌마는
식어버린 아궁이에 숨어있다, 연탄집게에 엉켜 나온다
일찌감치 몇 푼의 보상금을 받고
숨바꼭질을 끝내는 사람들이 더러 나타난다
달빛 파편이 시퍼렇게 빛난 집에는
아버지가 버리고 간 소주병에 갇힌 채
숨어있는 남매 하나 깨져 나온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수묵화를 그렸던 집에
아무개 할아버지가 주검이 된 채 실려 나온다
모두 발견됐지만 끝끝내 한 소녀가 발견되지 않았다
숨바꼭질의 주도권은 술래에게 있으리라.
술래는 단단한 이빨을 드러내며 한 입 한 입 달을 집어 삼킨다
게걸스럽게 씹어대던 빛나는 잇몸에 흘러내린 핏줄기는
도둑고양이일까
이빨 틈에서 떨어져나간 이름표가
신문 하단 미아 찾기에 얼굴 없이 내려앉는다

 

달빛 찢어
마디마디에 붙인 대숲에서는
못 찾겠다, 꾀꼬리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본심 심사평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와 계간 『시작』에서 주관하는 제1회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에는 실로 많은 예비 시인들이 응모해주었다. 오랜 시간의 고심과 노력이 녹아 있는 가작(佳作)들 덕분에, 심사위원들은 매우 즐겁고도 보람있는 시 읽기를 경험했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현상은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이 이제 첫 발을 내딛는 데도 불구하고 우리 문단에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아직도 시를 향한 열망이 우리 시대에도 마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실물적 사례라고 생각된다. 또한 이는 경제적 효율성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우리 ! 사회의 풍토에 대한 반성적 거점을 여러 모로 보여준 긍정적 결과라고 할 것이다.

 

 응모자들의 시편은, 담론적 집중성을 보이는 어떤 경향이나 세태에 편승하기보다는, 각자의 경험적 구체성을 바탕으로 언어 미학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욕을 두루 보여주었다. 편차가 심하기는 했으나, 읽을 만한 시편들이 많았음을 기록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개성과 완결성의 황금분할을 통해 우리 시의 미래를 개척해가려는 젊은 언어들의 긍정적 면모라고 생각된다.

 

 예심을 통해 올라온 분들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김재현, 김혜영, 이점순, 정상조, 조정숙, 최란주 씨(가나다 순) 등 여섯 분의 작품에 특별히 주목하였다. 이분들의 시편은 안정감과 패기, 익숙함과 낯섦, 산문 지향과 운문 지향, 서정의 구심과 원심 등 우리 시의 다양한 미학적 충동과 방향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주어, 심사위원들로서는 어느 분이 당선자로 뽑히더라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만큼 작품적 성취가 균질적이고, 충분한 습작 시간을 담고 있었다. 그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안정된 언어 구사나 주제의 진중함보다는, 시적 언어의 활력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내장하고 있는 언어를 높이 사서, 최란주 씨의 작품을 전원 합의하여 당선작으로 뽑기로 하였다.

 

 최란주 씨의 작품들은, 비록 줄글 형식의 시편들이라 운율적 고려에서는 다소 취약하였으나, 활자의 안쪽에 만만찮은 시적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삶의 만화경(萬華鏡)을 두루 보여주는 활달한 역량을 보여주었다. 또한 일상의 활력 속에서 가장 근원적인 생의 상처며, 부드러움이며, 사랑을 노래하는 품과 격이 매우 미더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적 구체성 속에 심미적 감각을 살려 재생하고 배열하는 언어적 힘이 밀도 있게 관찰되었다. 신뢰와 축하를 얹어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위원들로서는, 앞으로 더욱 젊고 패기에 찬 젊은 언어들이 우리 서울디지털대학교 사이버문학상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해오기를 바란다. 이번에 당선되지 않은 분들도 더욱 정진하기를 바라고, 거듭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린다.

 

예심 심사위원-오봉옥(시인,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손택수(시인), 길상호(시인)

본심 심사위원-고은(시인, 심사위원장), 이재무(시인, 『시작』주간)

유성호(문학평론가, 한국교원대 교수)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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