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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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만 시인의 어록

휘수 Hwisu 2006. 12. 18. 13:54

박정만 어록

  
  그리하여 저물도록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안개 짙
은 봄밤에 새벽을 꿈꾸는 것은 헛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애초부터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어쩌면 날아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7년 2월 첫 시집 재판을 내놓고, '자서 '
 

 

  내게 있어서 1985년은 절망과 고통의 올로 죽음의 피륙
을 짜던 한해였다. 바깥 출입이라곤 거의 금하다시피 하고
날이면 날마다 방구석에 처박혀 미친 놈처럼 소줏잔만 기
울였다. 작년 한해 동안에 내가 쳐죽인 술병의 숫자가 1천
병을 훨씬 웃돈다면 누가 곧이들을까? 그리고 거의 같은
양으로 지난 20여 년 간 하루같이 그래오고도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살아 있다면 누가 곧이들을까?

 

1986년 3월 둘째 시집을 내놓고, '시작 노트'에서


 

  안개 짙은 우기(雨期)의 새벽에 누군가 나를 찾아와 오
래오래 창문을 흔든 것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몽상이거
나 헛된 꿈이었다‥‥꿈꾸고 쓰러지는 피투성이의 모반,
나는 보다가 바라보이는 어떤 그루터기에 앉아서 깊이도
모를 어둠 속으로 절망의 돌팔매 질만 수없이 해대다 돌아
왔다. 비수, 이것을 한 번만 쓰고 싶었다.
‥‥ 여기에 수록한 시들은 (1987년 8월부터 9월까지) 내
가 어느 한 시기에 접신(接神)의 경지에서 쓴 시들임을 감
히 밝혀 둔다.

 

1987년 가을, '어느 시집의 머리말'에서


 

  1987년 6월과 8월 사이에 나는 500병 정도의 술을 쳐죽였
다. 그 속에는 꺼져 가는 불티처럼 겨우 명맥만 붙어 있는
나의 목숨도 묻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겨우 술로써 생
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몸은 거의 완벽한 탈진 상태였고,
정신은 기화하는 액체와도 같이 제풀에 풀어져 흐물거렸
다. 새삼 사는 일이 눈물겹게 생각되었지만, 일어나기는 고
사하고 이제 자살조차 꿈꿀 힘이 내게는 없었다. 그런데 이
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마침내 내 손이 나를 배반하기 시작
한 것이었다. .

 

온 몸이 불같이 뜨거워지더니 때없이 구토
가 나고 방안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난마(亂麻)처럼 얼크러져서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밀려왔다가 밀려나갔다. 그 많은 생각들을 하
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나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원고지를 앞에 놓고
펜대를 잡았다. 그리하여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에 따
라 머릿속에서 들끓는 시어의 화젓가락으로 시를 쓰기 시
작했다. 한 편을 쓰고 나면 또 한 편의 시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1987년 8월 20일 경부터 9월 10일까지
사이에 나는 물경 300편 가까운 시를 얻었다.

 

1988년 2월 '그 처절했던 고통의 시간들'에서

 

출처,시사랑시의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