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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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인을 죽였는가, 시인 박정만

휘수 Hwisu 2006. 12. 19. 00:59
나는 사라진다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

 

 (시인의 종시)

 

[해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해 지는 쪽으로 가고 싶다
들판에 꽃잎은 시들고.
나마저 없는 저 쪽 산마루.

 

[차라리]

내 목숨이 차라리
냇가의 개밥풀 꽃으로 하얗게 피어나
한철만 살다가 핑그르르 꽃바람에
모가지를 툭 꺾고 사라졌으면.

뉘우침은 이제 한 잎도 안 남았어

  

그리하여 저물도록 새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안개 짙은 봄밤에 새벽을 꿈꾸는 것은 헛된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상의 모든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애초부터 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어쩌면 날아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1987년 2월 첫 시집 재판을 내놓고, '자서 ' 

 

안개 짙은 우기(雨期)의 새벽에 누군가 나를 찾아와 

오래오래 창문을 흔든 것은 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몽상이거나 헛된 꿈이었다‥‥

꿈꾸고 쓰러지는 피투성이의 모반,
나는 보다가 바라보이는 어떤 그루터기에 앉아서 

깊이도 모를 어둠 속으로 절망의 돌팔매 질만 수없이 

해대다 돌아왔다. 

비수, 이것을 한 번만 쓰고 싶었다.
‥‥ 

여기에 수록한 시들은 (1987년 8월부터 9월까지) 

내가 어느 한 시기에 접신(接神)의 경지에서 쓴 

시들임을 감히 밝혀 둔다.

‥1987년 가을, '어느 시집의 머리말'에서

 

내게 있어서 1985년은 절망과 고통의 올로 죽음의 
피륙 을 짜던 한해였다. 바깥 출입이라곤 거의 금하다시피 
하고 날이면 날마다 방구석에 처박혀 미친 놈처럼 
소줏잔만 기울였다. 
작년 한해 동안에 내가 쳐죽인 술병의 숫자가 1천 병을 
훨씬 웃돈다면 누가 곧이들을까? 
그리고 거의 같은 양으로 지난 20여 년 간 하루같이 
그래오고도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살아 있다면 
누가 곧이들을까?

‥1986년 3월 둘째 시집을 내놓고, '시작 노트'에서
 
 
1987년 6월과 8월 사이에 나는 500병 정도의 술을 
쳐죽였다. 그 속에는 꺼져 가는 불티처럼 겨우 명맥만 
붙어 있는 나의 목숨도 묻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겨우 술로써 생명을 지탱하고 있었다. 몸은 거의 
완벽한 탈진 상태였고,정신은 기화하는 액체와도 같이 
제풀에 풀어져 흐물거렸다. 
새삼 사는 일이 눈물겹게 생각되었지만, 
일어나기는 고사하고 이제 자살조차 꿈꿀 힘이 내게는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마침내 내 손이 
나를 배반하기 시작 한 것이었다. . 
온 몸이 불같이 뜨거워지더니 때없이 구토 
가 나고 방안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릿속에서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한꺼번에 난마(亂麻)처럼 얼크러져서
빛보다도 빠른 속도로 밀려왔다가 밀려나갔다. 
그 많은 생각들을 하는 데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게 이상했다.
 
나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린 채 원고지를 앞에 놓고 
펜대를 잡았다. 
그리하여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에 따라 머릿속에서 
들끓는 시어의 화젓가락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을 쓰고 나면 또 한 편의 시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1987년 8월 20일 경부터 9월 10일까지 
사이에 나는 물경 300편 가까운 시를 얻었다.
 
 
(1988년 2월 '그 처절했던 고통의 시간들'에서) 
 
*********
 
 
누가 시인을 죽였는가, 시인 박정만
  
 
1. 박정만은 누구인가?

박정만은 1981년 5월 이른바 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돼
가혹한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이다.
그는 시인 김소월의 계보를 이어 한국서정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순수한 시세계를 노래했던
인물이다.
 
그는 개성있는 시를 통해 민중의
한과 슬픔을 남도의 유장한 가락으로 담아낸 천부적인
서정시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는 자유를 갈망하던 서정시인마저
죽음으로 몰아갔던 시대였다.

 
2. 그는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나?


정만은 자신이 사회운동을 한것도 아니고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던 인물도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밝혀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시인의 양심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너무나 결백한 시인의 마음은 시대의 모순을 견딜 수 없었고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한 시인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와의
불화라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것은 죽음이라는 극단의 길이었다.
그는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3. 박정만의 죽음은 그 시대의 죽음이었다.



박정만과 작가 한수산은 책을 출판하려는 목적으로 한두번
만난 일밖에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박정만은 소위 '한수산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고문과 함께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그것이 우연에 불과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힘에 의해 권력을 잡은 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이 이 사회를
억압하던 시절.
그의 죽음은 그 시대를 살던 모든 이들이 겪을 수 있는
일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그 시대의 죽음이었다.
 
4. 시인의 전설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겪은 후 그는 알콜중독으로 망신창이가 된다.
그러나 죽음을 맞기 1년 전 단 20여일 동안 무려 300여편의
시를 쏟아내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인다.
이때 그는 기존의 허무주의를 넘어 현실비판과 참여의
의지를 거침없는 시어로 보여준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의 생명이 마지막으로 용솟음치는 절명의 순간에
接神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러 그 일을 치러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이미 전설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올림픽 폐막식날인 88년 10월 2일,
그는 자신의 봉천동 셋집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 

 

                                            헤매는 벌판

 

누이여, 벌판에서는 새소리 들리고
수수밭머리에서는
아직도 바람소리 끝나지 않았다
바람을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너는 너의 무게로 고개를 숙이고
철새마저 다 떠나가고 말면
세상(世上)에는 무엇이 남아 벌판을 흔드랴.


땅거미 짙어가는 어둠을 골라 짚고
끝없는 벌판길을 걸어가며
누이여, 나는 수수모가지에 매달린
작은 씨앗의 촛불 같은 것을 생각하였다.
가고 가는 우리들 생(生)의 벌판길에는
문드러진 살점이 하나, 피가 하나,


버린 대로 자라나서
이제 벌판을 흔들고 지나가는
무풍(無風)의 바람이 되려고 한다.
마지막 네 뒷모습을 비추는
작은 촛불의 그림자가 되려고 한다.
저무는 십이월의 저녁답,
자지러진 꿈, 꿈 밖의 누이여.

 

장소-군 수사기관 지하실-군정보원에게

한수산과 박정만이 고문을 당하고 있다)

 

군정보원 : 야, 한수산. <<욕망의 거리>>는 누구 지시로 쓴

거야? 엉? 박정만이야? 정규웅?, 아니면 권영빈?  빨리

바른대로 대지 못해!

 

한수산 : 그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소. 대한 민국엔 표현의

자유도 없단 말입니까? ..으악!

 

군정보원 : 박정만, 네가 시켰지?  소설나부랭이를 쓰려면

거 근사한 거 있잖아. 연애 소설이나 쓰지 않고, 왜 고위층을

비난하고 그러냐구.. 에잇!

 

박정만 : 헉, 으으... 우리는 어떤 일도 모의하지 않았소.

단지 편집장과 작가로 만나는 사이란 말이오.

 

진행자 : 당시 군정보부는 이들에게서 아무런 혐의를 발견할

수 없자, 3일 만에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후로 한수산 씨는 일본행을 택했고, 박정만의 생활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정만 : (비틀거리며 걸으면서 독백) 여보..난 대한민국처럼

짓이겨졌어.

내 딸 송이야...세상이 사람을 이렇게도 다치게 하는구나.

으흑흑..

 

진행자 :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그를

몸져눕게 했으며, 가정적인 불행이 이어졌습니다.

부인과의 이혼 후, 건강은 극심하게 악화되었고,

고통을 이기기 위해 하루에 소주를 2병씩 마셔야만 했습니다. 자, 다시 문인들이 자주 모이는 술집으로 그를 찾아가 볼까요?

 

평론가 3 : 그런데 정만이가 요즈음 전화를 자주 해요.

전화를 해서 자기가 그 날 쓴 시를 읽어주지 뭐요.

소설가1 : 아이구, 말도 말아요. 하루에 시를 몇 십 편이나

쏟아내는지 어떤 날은 아침에 1시간 이상을 읽어주는

바람에 내가 밥도 못 먹었다우.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수화기를 들고) 여보세요. 아, 정만 형!

박정만 : (전화선을 타고 목소리만 들린다)

김형, 시가 겁나게 나와부러 미치겠다. 들어봐. 

 

      산 아래 앉아  

 

메아리도 살지 않는 산 아래 앉아
그리운 이름 하나 불러 봅니다.
먼 산이 물 소리에 녹을 때까지
입속말로 입속말로 불러 봅니다.
내 귀가 산보다 더 깊어집니다.

 

시인1 : (전화를 향해 큰 소리로)

야, 정만아!  오늘은 쓴 시들 중에서 대표작만  읽어라.

 

진행자 : (평론가2에게) 한수산 필화 사건 이후 그의 시세계에 변화가 있다고 보십니까?

평론가 2 : 예전의 시풍과는 좀 달라졌지요. 전에는 삶의 고통과 슬픔을 한스럽게 노래했는데, 요즈음의 시에선 사회의식도 느껴지고, 삶의 고통을, 죽음까지도 끌어안고 일어서려는 의지가 보입니다.

그는 삶을 비극으로 보지만, 비극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는 이미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픈 의지가 숨어있지 않습니까.

필화 사건 이후 어떤 대결의식도 생기고, 고통을 내면화시키는 관조와 화해의 세계도 엿보입니다.

 

평론가 3 : 저기 정만 형이 오는군요.

 

진행자 : 박정만 씨, 드디어 만났군요. 시의 비밀 좀 털어놓으시죠.

박정만 : 체질적으로 내 몸 속에는 전라도 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어휘나 운율도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생래적으로 타고난 것 같으니까. 뭐랄까,

진흙탕 속에서 나뒹군다고 할까. 아득하기 짝이 없고,

유장하고…… 전라도 같은 황토지대나 평야가 많은 곳에서는 그냥 뭔가 흘러나오는 것 같단 말야.  판소리 가락도 그게 아니겠어요?

 

진행자 : 1987년 8월 20일부터 9월 10일까지 겨우 20일 동안 300여 편의 시를 쓰셨다는 유례 없는 기록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총 8권의 시집 중 6권을 그때 쓴 시로 내셨다는데요.

설명 좀 해 주시지요.

 

박정만 : 그 전 세 달 동안 나는 500병 정도의 술을 쳐죽었지요. 새삼 사는 일이 눈물겹게 생각되었지만, 일어나기는 고사하고 이제 자살조차 꿈꿀 힘이 내게는 없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내 손이 나를 배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에 따라 머릿속에서 들끓는

시어의 화젓가락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 편을 쓰고 나면 또 한 편의 시가 미리 대기하고 있었지요.

그 무렵 나는 접신(接神)의 경지 속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사라진다 / 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88년 10월2일
서울올림픽 폐막식이 화려하게 진행될 때 변기를 타고 42세로 외롭게 죽어간
박정만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다. 죽기전 25일간 朴시인은 두문불출, 소주만 마셔대며 사경(死境)의, 접신(接神)의 경지에서 시를 썼다.
 
 
속된 세상살이와 도저히 협상할 수 없는 시인의 순수를
죽음으로 지켜낸 우리시대 대표적 「절명시」다.
 
시인은, 시는 항상 죽음을 함께 사는 것일까.최근 나온
작가세계』여름호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두 죽음을 위해」에서 자살과 병마로
각각 생을 마감한 이연주·진이정 시인을,『현대시』7월호는
지난 5월19일 교통사고로 타계한 정의홍 시인의 시세계를 그의 대표시와 시인 홍신선씨의 평론을 통해 쓰면서 시와 죽음의 함수관계를 살피고 있다.
 
출처, 네블, 치앙마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