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박건호 시모음 본문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69년 시집「영원의 디딤돌」을 출간했고
「모닥불」을 발표하면서 가요 작사가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회원, 한국 음악저작권협회 회원으로 활동중.
작품 및 저서로 시집「영원의 디딤돌」「타다가 남은 것들」
「물의 언어로 쓴 불의 시」「추억의 아랫목이 그립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
「나비전설」「딸랑딸랑 나귀의 방울소리 위에」등
열 권의 시집이 있고, 산문「오선지에서 빠져나온 이야기」
「너와 함께 기뻐하리라」「시간의 칼날에 베인 자국」등이 있다
1972년 발표한 '모닥불' '슬픈 인연', '단발머리', '아! 대한민국'
'잊혀진 계절' 등 1970~1980년대 여러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
3천여 편의 대중 가요 가사를 썼다.
1982년 MBC 올해의 최고인기상, KBS 가요대상 작사 부문,
가톨릭 가요대상, 1983년 KBS 제1회 가사대상,
1984년 KBS 제2회 가사대상, 1985년 ABU 가요제 그랑프리,
LA 국제 가요제 그랑프리, 국무총리 표창,
한국방송협회 주최 아름다운 노래 대상 등 수상
모자이크
- 심장병동에서
얼마 전에 가슴 뼈를 톱으로 자르고
심장으로 통하는 두
개의 관상동맥을 교체했다
옛날 같으면 벌써 죽어야 했을 목숨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어릴 때는 생각이나 했던가
팔이
부러지면 다시 붙듯
목숨은 다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사금파리를 딛어 발이 찢어졌을 때는
망초를 바르고
까닭없이
슬퍼지는 날이면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커가면서 계속 망가져 갔다
오른 쪽 수족이 마비되고
언어장애가 일어나고
아무 잘못도 없이 시신경이 막히면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설상가상
어릴 때부터 아파오던 만성신부전이 악화되어
콩팥도 남의 것으로 바꿔 달았다
누구는 나를 인간승리라고도 하지만
이건
운명에 대한 대반란이다
신이 만든 것은 이미 폐기처분되고
인간이 고쳐 만든 모자이크 인생이다
그렇다고 나를 두고
중세기 성당 벽화를 생각하지는 마라
모자이크가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지
너희들은 모른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서
톱으로 자른 가슴 뼈를 철사줄로 동여 매고
죽기보다 어렵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구소련 여군 장교같은 담당 간호사도
모른다
밤새 건너편 병실에서는
첨단의학의 힘으로 살아나던 환자가
인간의 부주의로 죽어 나갔다
나는 급한 마음에 걸어온 길을 돌아다 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바람과 깃발
깃발이 바람을 만나면
춤을 추었고
깃발이 깃발을 만나면
피가 흘렀다
끝내
어느 한 쪽은 찢어져야
안심할 수 있는
우리의 산하
하늘에는
두 개의 깃발이 있었다
별들이 펼쳐 놓은 이야기는
하나 뿐인데
사람들은 가슴속에 활화산을 숨겨 놓고
천둥소리를 숨겨 놓고
우주질서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념과 사상이
피보다 진했던 우리의 반세기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깃발이 바람을 만나면
춤을 추었고
깃발이 깃발을 만나면
피가 흘렀다
오리고기 앞에서
숯불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오리고기를 보면서
세 명의 평화주의자가 군침을 흘린다
생명의 존엄성을
얘기하면서도
속으로는 상추에 싸서 먹을까
얇게 썰어 놓은 무에 싸서 먹을까
그냥 소금에 찍어 먹을까
아주 탐욕스런
계획들을 하고 있다
그들의 양심은 고기가 익으면서 끝나고
모든 누명은 술이 뒤집어쓴다
이 거룩한 사나이들은
눈동자에
피빛 노을이 물들면
절벽에 몸을 던진 삼천궁녀를 그리워한다
목숨을 끊으면서 항거했던 울분은
강물에 씻겨갔나
한
나라가 망한 것을 천년 뒤에
슬퍼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오로지 절벽으로 몸을 던진
삼천 명의 궁녀들만
숯불 위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천 점의 고기가 되어
군침이 흐르게 할 뿐이다
게의 속살을 파먹으며
게의 속살을
파먹어 본 사람은 안다
단단한 것일 수록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을
속살을 보호하기 위한
껍질은
무엇인가에 부딪치면
균열이 생겼다
균열의 틈 사이로 들어와
누군가 나를 파먹는다
단단한 껍질을
믿었으나
단단한 껍질은 믿을 것이 아니었다
부딪치고 깨어지는 연습도 없이
나는 허물어졌다
허물어지고 허물어졌다
게의 속살을
파먹어 본 사람은 안다
단단한 것일 수록
쉽게 허물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이 아닌
어떤
제국의 힘으로도
우리의 속살은
보호할 수 없음을
왈
나는 유행가 가사를 썼다
돈이 될 것 같아서
첫사랑의 여자를 어디론가 보내버리고
쓰러지기 직전까지 골을
혹사했다
그 사이 여러 명의 신인가수가 탄생했다가 은퇴를 했고
먹고 사는 데야 지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가사를 써 준 사람들 앞에서 침을 겔겔겔 흘리다 보면
무엇인가 자꾸 더러웠다 더러워서
더럽지 않은 곳을
찾다가 그만 똥을 밟았다
그때 어떤 시인이
왈
내가 쓴 시는 요즘 쓰는 다른 시의 경향과 다르고
시대적 감각이 뒤진다고 말했다
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다시
유행가
가사를 썼다
작곡가들이 너무 시적이라고 한다
다시 시를 썼다
시인들이 너무 유행가 가사적이라고 한다 젠장
짖어라
왈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