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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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웅 시모음

휘수 Hwisu 2006. 6. 15. 10:56
충북 옥천 출생
동국대 문예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현재 고려대 언론대학원에 재학중
200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자신 없는 것들은 걸려있다> 2003년 문학동네

 

 

옹이

 

기어다니는 삶들은
제 가슴 근처에 옹이를 만든다
옹이는 나무의 긴 꿈틀거림과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이 진액으로 모아진 것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빛나고 있으나
가만히 쓰다듬어보면
한 덩어리 슬픔으로 저마다 옹골지게 뭉쳐 있다
그렇게 고집으로 움츠려 있다가
누구도 외면할 때면 폭발하듯 튀어오르리라
불룩 튀어나온 말 발목처럼
어느 날 몸을 가르고 뛰쳐나올 것이다
용기는 늘 시공을 초월하여 있는 법
움츠려든 속을 모두 꺼내 보여주려 할 것이다
안으로만 뭉쳐진 그를 그려낼 수 있다면
아침 산에 주저앉아 침묵을 삼키지 않아도 되리라
깊게 갈라터진 가슴 근처에
몇 방울의 눈물들이 다시 고여드는 것을 본다

 

 

  
 
하반신이 뻐근해지도록 강을 걷다보면
몸은 물을 실컷 들이켜고 길 위에 뜨게 된다
아침이슬들도 껍질 벗은 작은 들콩처럼
아직 초록빛 남아 잇는 풀들만을 골라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그러나 이미 물기 다 말라버린 억새들은 아무리 뜯어말려도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낯선 사람들을 향해
허연 머리털을 미친 듯 뽑아 내던지고 있다
바싹 마른 산으로 떠난다는 너의 떨리는 목소리는
수면 위로 머리 내밀고 힘껏 물 뿜어내는
저 입 큰 붕어의 몸놀림과 어쩌면 그리 닮았는가
오늘 너의 다짐들은 또 물기 말라 단단해진 네 속을 빠져나와
저무는 이 세계를 온통 휘저어놓고 있다

 

공중에 달린 목숨들 2

- 능소화
 
  
나무 아래쪽에서 보름 내내 입 다물고 있던 그가
무슨 이유로 저 높은 곳까지 기어올라
제 몸을 온통 긁히며 아픈 수행을 하려는가

 

오늘도 기다리던 전갈은오지 않는다
소식 대신 저 담홍색 꽃들이 가슴속 뚫고 나와
길고 긴 여행길을 알려주려 하는가
어제까지도 분명히 나무 중간쯤 머물러 있던 그가
오늘은 우듬지에서 몸뚱어리를 모두 열고 있다
활활 태우고 있다
기다림은 쉽게 멈춰지지 않는 법
우리가 상처받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저 꽃의 몸부림처럼
쉬운 해법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어둡고 힘든 길을 밤새 기어오를 때
말없이 등판을 내주었던 소나무는
혹시 그가 바늘에 찔려 떨어지지 않을까
한밤 내내 한쪽으로 비켜서서 기다렸을 것이다

 

얼음공원 1 
 
그곳은 지금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바람에 잘린 갈대들 사이사이에서
서로 온몸 껴안고 가쁜 숨 쉬고 있다
그 뜨거웠던 긴 시간들을 잠시 묶어놓은 채
갈수록 견고히 자리잡는 그 공원은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도록 두터운 셔터들을 내리고 있다
한때 즐거웠던 일들을 마음껏 품어보기도 했겠으나
지금은 입구를 완고히 닫아걸고
폐품이 된 생각들을 문 밖으로 봉투째 내다놓고 있다
내 슬픈 기억들도 그의 내부에서 받아준다면
한쪽 구석이라도 좋으니 그곳에 보관하고 싶다
가슴속 한동안 담아두었던 희망들
내 쓸쓸한 눈물 방울방울들이 저 혼자 흘러내리지 않게
은밀한 내부 속 깊이 받아주었으면 싶다
짓밟혀 문드러지더라도
절대로 깨지지 않도록 꼭꼭 저장해두고 싶다
                                                                  

   
 
 
낡은 아파트 담장 장미 가득 핀 옆으로
어린아이 하나 울며 지나간다
두 눈에서 질금질금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쳐내느라
꽃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끝내 가까이 다가가서
왜 슬피 우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못했다
길가에 가만히 서 있는 내 옆을 그애가 지나간다
시인의 똥은 메마르고 다 썩어서 개도 안 먹는다는데
저 어린 작은 슬픔도 달래주지 못하는 주제에
시를 써서 도대체 무얼 어쩌자는 것인가
그저 남의 슬픔을 구경만 하고 다니며
아픈 현실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것이
고작 시를 쓴다는 자의 할 일인지
시정잡배만도 못한 자신이 슬퍼 운다
나도 그 나이 때쯤 무척이도 울었던가
배고파서 울었고
중학교 정문 게시판에 철 따라 등록금 미납자로 올려진
이름 석 자를 보면서 울음을 삼킨 적이 있다
자세히 보면 장미처럼 화사한 꽃들도
하나같이 검은 벌레들로 깊은 병이 들어 있다
오늘 아무에게도 나눠주지 못하고
허상들을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는 나를 반성한다

 

 

출처, 네블,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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