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수 Hwisu, 구름 북소리

마경덕 시모음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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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덕 시모음 3

휘수 Hwisu 2006. 9. 3. 09:43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로 등단
2006년 시집 <신발론>

 

동전 몇 닢
                                             

  머리맡 자리끼가 얼던 밤, 종란이 아부지가 죽었다. 밥상을 엎고 장독을 깨부수던 종란이 아부지, 호롱불 아래 설빔을 짓던 엄마가 혀를 찼다. "하필 정월 초하루에 출상이라니…" 나는 자다 깨어 요강에 오줌을 누고 있었다.

 


  까치소리 차고 맑은 날. 홀아비 지게꾼 학출이 아부지가 관을 지고 나왔다. 황달에 부황에 누렇게 뜬 학출이 아부지, 북어처럼 깡마른 팔뚝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나왔다. 주르르 관에서 물이 흘렀다. 등이 흥건히 젖었다. 요란한 꽃상여도, 펄럭이던 만장도 요령소리도, 구슬픈 상두꾼도 없었다. 배에 물이 차올라 좋아하던 술 한 모금 못하고 세상을 뜬 종란이 아부지, 베옷을 걸친 종란이 엄마는 꺽꺽 목이 쉬었고 빡빡머리 종기오빠, 종란이. 찔찔이 종애가 울면서 장지로 떠나는 지게를 따라갔다. 때때옷 입은 아이들 몇 졸졸 따라붙었다.

 


 울고 있는 종란이에게 언니가 동전 몇 닢을 쥐어 주었다. 종란이는 뚝 울음을 그쳤다. 종란이는 둘도 없는 내 라이벌인데 언니가 세뱃값으로 받은 동전을 몽땅 털어 주었다. 울음을 따라가는데 자꾸 동전이 맴돌았다. 언니가 건네준 동전이 눈앞에 짤랑거렸다. 눈부신 설날 아침이었다.

 

  <학산문학> 2006년 가을호


사각의 링

                                              

  끝까지 버틴 놈들, 맷집이 좋다. 눈이 쏠린 넙치, 얼마나 바닥을 기었는지 뱃가죽이 헐었다. 게임에 능한 주인 잔머리를 굴린다. 전시용을 함부로 다루는 바보는 없다.

 


  눈치 빠른 주인 선수를 독려한다. 항생제를 먹여 발딱 일으켜 세운다. 활기차고 평화로운 사각의 링. 약물복용이 발각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넙치가 뜰채에 끌려나온다. 목덜미를 후려치는 횟집 사내. 바다의 목이 파르르 떤다. 도마에 노을이 흥건하다. 등뼈를 드러내고 파닥파닥 뛰던 파도는 잠잠하다. 할딱이는 활어들, 알 수 없는 말들 중얼중얼 수면으로 흩어지고 '위하여!'를 외치는 퇴근길 광화문이 숨찬 하루를 내려놓는다. 만년대리 X가 단칼에 잘리고 노련한 O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O에게 서로 술을 따르겠다고  A, B, C,가 氣싸움을 하는 중, 신입사원 D가 넙죽 엎드린다. 


    불교뮨예 (2006년 가을호)

 

넝쿨장미

                                               

  봄볕이 등 기대고 간 담벼락, 만삭의 오월 산모들, 설핏 젖꽃판 비치더니 발그레 젖가슴 벌어진다. 휘늘어진 치맛자락 땅에 젖는다. 한나절 벽을 잡고 몸을 뒤튼, 벌겋게 달아오른 앙다문 신음소리, 미끈 불끈 양수가 터진다. 지나가던 바람이 아이를 받아낸다. 산파의 손을 찌르는 가시 탯줄, 좁은 골목에 줄줄이 아이들이 태어난다. 설익은 풋배꼽들, 투명한 햇살에 배꼽이 익는다. 배내똥 묻은 기저귀 담벼락에 널린다.

 


  까치발을 한 젊은 여자, 장바구니에 장미 한 송이를 담아간다. 입양가는 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다산(多産)으로 요란한 골목. 눈부신 출산이다.

 

     우이시  (2006년 9월호)

출처, 내영혼의깊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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